마한(Mahan)의 해양사상이 끼친 영향

등록일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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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Mahan)의 해양사상이 끼친 영향

 

마한(Mahan)의 사상은 해군대학의 학생 장교들에게 계속되었다. 오늘날 미국 해군에서 전쟁 계획을 수립하거나 토론하는 모든 장교가 마한의 사상을 상기하고 그 방법을 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해군들은 미군 해군보다 먼저 마한의 이론을 받아들임으로써 세계적 해군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 실례로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의 밑에서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한 계획을 수립한 참모 아키야마 사네유키 중령을 들 수 있다. 이 참모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마한에게 직접 배웠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또한 일본은 태평양전쟁 이전까지 마한의 서적을 필독서로 간주했다. 오늘날 해상자위대의 간부학교에서는 마한의 이론에 대한 강의가 지속되고 있다.

 

마한은 평범한 해군장교로 생활하면서 틈틈이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가 45세 이후에 본격적으로 역사라는 학문 세계에 뛰어들어 대해군주의자, 선전가, 팽창주의자, 해군역사가, 해군 전기작가, 에세이스트, 해군전략이론의 창시자 들으로 불릴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또한 그는 역사학도에게 필요한 정규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해양사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적인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이론적 기초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모든 국가의 현대사에까지 결코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겼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마한 자신이 독학으로 이룬 업적이자 세계에 미친 영향이었음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마한의 저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김주식 번역)의 해설에서 옮김)

 

김주식 번역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책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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