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해양인문 컨텐츠 감상' 우수원고 채택

등록일20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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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추상(抽象)

조남숙

 

 세계는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일상으로 끌어들이고 인공지능 영역 확대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다양하게 변화한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일상은 과거에서 미래로 변하는 인간에 대한 탐구이며 일상과 일상이 모여 하나의 현상이 되는 것을 놀라면서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세계는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고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말하여질까. 흐르고 달라지고 말해지는 상태를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주의 시공간의 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인간 세계의 변화는 어디까지 확장될지 모르지만, 그 무엇을 탐구한다. 연구하고 실행하고 기록하는 인간의 탯줄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인터넷한국해양문학관에서 소개된 콘텐츠 ‘바다에서 만난 인문학’에서 조우한 유럽 서쪽 작은 나라, 포르투갈.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게 된 원동력은 바다로 향한 열망이었다. 어둡고 복잡한 상황에서도 방향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알게 했다. 삶의 극진함을 바다에서 실현한 사람들, 바다로 향한 열망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 그것을 기록한 사람들의 정신은 지금 우주로 향하는 궁금증과 일맥상통한다.

 바다로 떠나는 사람들과 육지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별. 막다른 현실에서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은 혼자서는 힘든 일. 무리를 이루며 힘을 보태고 생각을 모았던 사람 이야기.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을 하는 것. 해본 적이 없는 일이 한 번이면 족한 것. 한 번, 두 번이 여러 번이 되어 역사가 되는 것. 역사는 작고 크며, 수동적이고 능동적이며, 가변적인 사건의 응집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항해는 삶의 애착에서 시작되었다. 모르는 미래는 모르는 곳이다.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모르는 곳을 가는 것이다. 모르는 곳을 가는 것은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것은 떠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다로 향하는 마음은 삶을 사랑하는 일이다. 모르는 것을 모르고 지나기에는 어두운 지금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알기에.

 모르지만 떠났던 사람들. 떠났기에 알 수 있었던 것들. 그래서 알게 된 것들은 신기루였다. 처음 보고 느끼고 먹고 만지고 스친 것 중, 그들에게 후각을 자극한 후추처럼, 매캐하고 짜릿한 맛도 있었다. 그 맛은 모르던 것을 알게 했다. 후추를 사고, 팔다가 사람을 팔게 될 줄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탐험은 약탈로 변질한 후였다.

 사라지지 않는 바다처럼 사람의 욕망도 사라지지 않았다. 욕망의 끝이 없다는 것을,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을 잠재우기 어려웠다. 바다는 모르는 것을 알게 했지만, 아는 것을 모르게 하지는 못했다. 탐험이 약탈로 변질하지 말아야 했지만, 애처로운 일이 생기는 것을 멈추어야 했지만, 사람들은 알면서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태초부터 바다는 많은 것을 추상하는 곳이다. 친숙한 듯, 낯선 것들이 지천이다. 물과 육지의 만남은 사람이 교류하는 기회이지만 욕망을 극대화하는 시간과 장소가 된다. 바다를 길처럼 다니게 되자 선과 악, 그 중간에서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는 욕망으로 혼란스러웠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살아가기에는 이미 많은 것을 알게 된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

 바다로 간 선원들을 바다에서 많이 죽었다. 항해자였으며 과학자였으며 예술가였지만 죽음은 어쩌지 못했다. 하늘의 변화를 살피는 천문학자였으며 하늘의 기운을 느끼는 점술가였지만 바다의 깊은 속성을 다 알지는 못했다. 그들은 죽음으로 바다의 문장(文章)과 시(詩)를 낚았다. 가슴에 담긴 만물의 생성을 가득 가지고 거점에 정박하며 인문학으로 삶을 달랬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르네상스의 꽃을 활짝 피우게 했다. 죽음을 각오한 탐험은 세계사의 한 획이 되었다. 그것은 역사의 명과 암이다. 암흑의 시간을 푸른 바다와 반짝이는 햇빛으로 소독하곤 했던 사람 이야기.

 

 K 문화 강국 대한민국.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 강대국 사이에서 우방국이 많아야 장래가 밝은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무엇을 탐험해야 할까. 바다의 추상력으로 힘을 회복했던 포르투갈처럼, 보이지 않는 문화의 상상력으로 신화 같은 문화의 창고가 된 대한민국. 그 힘을 팽팽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매만지면서 한 번 생각하고 두 번 생각하고 매일 생각해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 일상이 달라지는 경로의 예지는 신의 영역이 아닌 우주의 무한한 영역이 아닐까. 이 모든 변화의 물결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에서, 바다의 추상력처럼 문화의 상상력이 미래로 이어질 인간의 유전이라면, 우리는 어디로 눈을 돌리고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유영해야 할까.

 인터넷한국해양문학관의 영상에서 바다의 아침 파도와 저녁 너울, 바다가 품고 있는 감성과 이성, 바다가 밀어낸 상처를 바다가 품었던 이유, 깊고 깊을수록 맑아지는 바다의 속성을 만났다. 바다의 생애는 모든 만물의 생애이며, 지구를 품은 바다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을 궁금한 것으로 소통하게 했다. 바다는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었고 불연속적인 생각의 틀을 해체하고 통합했으며 망각한 것을 기억하게 했다.

 언젠가 포르투갈의 최서단, 호카곶(CABO DA ROCA)에서 마주한 바다가 생각난다. ‘여기 땅끝과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구를 말해주는 비석에서 죽음을 생각했다. 죽음을 각오하며 떠났던 사람들의 죽음과 죽었으나 썩을 수 없는 정신이 그려졌다. 낭떠러지를 연상하게 하는 바다 절벽으로 다가가 망망하게 던졌던 먼 시선. 저 바다를 건넌 이들의 삶과 기록된 이야기 저편에 기록되지 않은 서사와 경계와 세계, 천변만화했던 사람들의 웅숭그림의 그림자들과 사멸되어버린 숨결 뒤에 다시 살아난 정신들이 보이는 듯했다.

 

 삶은 추상한다. 땅과 바다, 그리고 온 우주의 속성과 특성을 모아 극복한 두려움이 있다면 망각하면 안 되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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