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 해설 : "어느 선장의 폭풍 속의 조난자 구출일지"

등록일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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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외항선 선장 이상만 님이 작성한 '폭풍 속의 조난자 구출일지'를 일반인이 알기 쉽게 부분적으로 고쳐 쓴 전문이다. 일지의 원문은 글 말미에 부기하였다.

 

어느 선장의 폭풍 속의 조난자 구출일지

이 상 만 | 동진해무 선장

 

본선 'KOHJU 호'는 2011년 7월 20일 호주 '달림플 베이'에서 석탄 161,226톤을 싣고, 양하항인 영국의 레드카를 향해 타스마니아 섬 호주 남서부를 지나 인도양에 들어서고 있었다. 2011년 8월 1일 아침 오전 8시, 벌써 4일째, 본선은 지긋지긋한 황천 항해 중이었다(풍속 43-48노트, 풍력계급 10-11, 파고 7-9m로, 횡요 종요가 심한 상태였다). 선장인 본인은 선교로 올라와 갑판장비 상태와 기상도를 확인하고 선교 당직자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한 후, 선장 방에 내려와 아침 이메일을 체크하려고 컴퓨터를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8시 40분경에 '국제해사인공위성통신' 전화가 띠리릭 띠리릭, 하고 울렸다. 호주 구조본부(Rescue coordinate Center) 에서 온 긴급한 조난선 구조에 관한 전화였다.

 

1. 인도양 황천항해 중 조난신호 접수

 

현재 조난선은 본선에서 57마일 남쪽에 있는데, 가서 구조하라는 내용이었다. 현재 본선의 위치는 남위 35도 21.8분, 동경 112도 27.6분. 나는 우선 선주에게 국제해사인공위성통신 전화로 현 상황을 보고하고, 이메일로 선주, MOL operator, 용선주, 인력관리회사, 영국 지역 대리점 등에게 조난선 구조로 인한 항로 이로 보고를 한 후, 선교로 올라온 전 선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조난선 구조를 위한 준비 및 이에 대한 본선 선원의 주의 사항 (특히 황천으로 인한 본선 선원의 안전대책 및 구조시의 위험성)을 숙지시킨 다음, 일등 항해사에게 본선 사무실에서 이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지시하였다.

 

나는 처음 마주친 상황이라 이런 무지막지한 황천항해에 구조작업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인가 더욱이 솔직히 겁도 났고,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조난선에서 절실하게 생명을 위협받는 조난자를 생각할 때 어렵지만 구조작업을 하러 가야만 했다. 현재 풍속은 45-48노트, 풍향은 서북서, 파고 7-9m였다. 09시 05분, 곧바로 배를 자이로 침로 280도에서 123도로 선회시겨 조난선을 향하여 항로를 이로하여 출발하였다. 현재 엔진 64RPM에서 본선 선속은 3.2에서 3.5노트, 조난선까지 도착하려면 57마일을 가야 하는데 적어도 16시간 이상 소요될 것 같았다. 기관제어실의 기관장(김수배 씨)에게 연락하여 가능한 한 안전 범위에서 RPM을 최대로 올려 전속력으로 항진토록 메시지를 보냈다. (선속 5.5노트로 올림)

 

배를 선회하자 심한 횡요와 함께 갑판상에 엄청난 파도가 올라와 갑판장비, 특히 도선사용 사다리의 손상이 걱정되면서도 항해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10시 30분경 호주 구조본부에서 구조 헬리콥터 1대와 수색구조용 항공기 두 대를 보내어 본선과 VHF(고주파 무선전화) 채널 16번(채널 16번은 조난 또는 긴급 시 사용되는 채널임)으로 조난선의 현재위치 및 상황을 매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서로 교신하면서 조난선을 향해 계속 항진하였다. 18시 30분경 일등항해사는 선교에 기관실 당직자를 제외한 전 선원을 소집하여 선장의 지시에 따라 조난선 구조작업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스탠바이' 상태를 하고 있었다. (사용준비된 장구들 : 줄 발사총, 20밀리 로프 200m, 구명환과 자기점화등이 딸린 코일 넷, 식량적양기, 연료 수급용 데빗, 구조용 네트, 송수신 무전기, 안전 벨트, 신호 라이트, 여분 잠수복 등)

 

2등 항해사는 수색구조 항공기와의 고주파 무선전화 채널 16번 교신 및 해사위성통신 교신을, 3등 항해사는 현 상황을 기록하면서 계속 항해하였다. 조난선 주위에서는 수색 구조 헬기에서 구명벌, 비상통신용 송수신기, 비상구조용 조끼 등을 조난선에 투하하여 주었다. 도착 약 30분 전에 기관을 '스탠 바이' 상태로 했다.

 

2. 구조 10시간만에 조난선 요트 초인(처음으로 발견했다는 해사용어)

 

19시 20분. 드디어 선수 쪽, 약 1 마일 밖 12시 방향에 조난선(요트)의 불빛이 보였다. 선속을 최대한 낮추어 서서히 조난선에 접근하였다. 나의 계획은 조난선을 풍하측(바람이 불어가는 쪽)에 두고 서서히 접근하여 줄발사총이나 '당김줄'에 연결된 20mm 나일론 로프를 3-4개 던져, 조난선과 본선의 현측(선체의 측면)에 걸어 연결하고 고박한(고정한) 후에 안전벨트를 조난자에게 채운 뒤 구조용 로프 네트에 태우거나, 도선사용 사다리를 타고 선원들이 끌어 당겨 올릴 계획이었다. 횡요, 종요가 심한 황천이어서 너무 위험하여 구명보트를 내리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다. 선수쪽에 있던 조난선(요트)이 본선 좌현 측으로 접근하는가 했지만, 본선에서 약 50미터의 거리를 두고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해상의 풍속이 너무 세고 파도가 높아 배의 조종이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선회도 잘 되지 않았다. 바다 위에서는 헬기와 수색구조 항공기가 조난 요트 주변을 선회하면서 본선과 교신하며 조난선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첫번째 구조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다시 배를 선회시겨 조난 요트를 찾으러 했지만 워낙 깜깜한 밤중이라 조난요트는 잘 보이지 않았다. 레이다에도 파도 때문에 희미하게만 나타날 뿐, 조난선은 잘 찾을 수 없어서 구조 항공기 및 조난선에게 현재의 위치를 물어가며 요트 쪽으로 다시 접근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헬기와 수색구조 항공기가 연료부족과 기상악화로 호주 Perth 항공본부로 돌아가야만 한단다. 어,어, 큰일인데…. (본선시각 8월 1일 23시 10분)

 

이번에는 조난선에 접근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요트를 풍상(바람이 불어 오는 쪽)에 두고 접근한 뒤에 요트가 선수에 근접하면 조난선이 풍향에 의해 떠밀려 본선에 접근토록 하고 배를 정선 상태로 유지해 볼 계획이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야 한다. 다행히, 이 방법은 성공적인 듯 했다. 드디어 요트가 본선에 붙었고, 구명환과 자기점화 등이 연결된 나일론 로프 3개를 연결했다. (8월 1일 23시 50분)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파고가 높고(6-7m) 바람이 너무 강해서 요트의 스텐레스 핸드레일과 비트가 뽑히고 로프가 전부 터져 버렸다. 아, 아, 설상가상이다. 헬기, 구조비행기도 가 버려서 이제는 우리 선원들이 스스로 구조작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깜깜한 밤에다가 파고는 높고, 벌써 4시간 반째 거의 사투를 벌이다시피 했는데 선원들도 모두 지칠 대로 지쳤다. 얼마나 더 걸려야 구조 작업이 끝날 것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정말 이 지독한 황천에 인명구조작업을 한다는 것이 보도 뉴스에서나 보았지 실제로 해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만일 내가, 저기의 구조자 입장이 되었다면 생사를 넘나드는 이 상황에서 얼마나 얼마나 애타게 간절하게 구조되기를 기다리고 있겠는가를 생각해보니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눈물이 찔끔 나올려고 했다. 다시 배를 돌려 구조를 시도 했다. 이번에는 요트를 시야에서 놓치면 안 된다. 꼭 성공해야지! 이번에는 와이어로프를 준비하여 요트와 연결하도록 지시하고, (지난 번처럼 로프가 안 터지게) 본선의 12시10분 정도의 방향에서 요트에 접근하여, 풍하측으로 요트가 있도록 조선한 후 요트가 본선의 중앙부에 오면 본선이 요트에 서서히 접근하는 방법을 썼다. 파고가 높아 현측에서 본선에 올라올 때 조난자가 위험하지 않을까도 고려하였다. 본선과 요트 사이에서 거의 정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마침내 요트를 본선 우현측에 접근시겨 와이어로프와 나일론 로프 2개도 연결하였다. (사실 이때도 아찔한 순간이 두세 번 있었다. 구조자를 안전벨트에 채우고, 도선사용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려는 순간, 요트가 요동치며 높게 솟구쳐 오르는 위기 상황이 있었다. 만약 구조자가 본선 현측과 요트 사이에 끼인다면 심한 부상 또는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3. 구조 17시간만에 피구조자 본선에 안착

 

구조자는 드디어 본선에 다행히 아무 부상 없이 선원들에 의해 끌어올려져 구조되었다. (2일 02시 12분) 그의 중요 소지품 가방도 몇 개 같이 올려졌다. 초로의 피구조자, 그는 극도의 피로감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듯 선원들의 안내로 여분의 선실로 안내되어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 입은 후 안정을 취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조난 생존자는 잠시 후 조리장이 미리 준비한 닭 스프를 우리 선원들과 함께 정말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사실 우리 선원들도 구조 작업하느라고 이때까지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고 고맙고 기뻤다. 피구조자나 우리 선원들 모두 아무 부상 없이 구조작업을 마칠 수 있어서! 이제, 다시 항해를 재개해야 한다. 뒷정리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 (라스팔마스, 레드카)를 향해 출발했다.

 

구조작업에 사용되었던 각 로프류, 줄발사총, 들것, 구명환, 식량 적양기, 연료 수급용 데빗, 구조 네트 등을 제 위치에 고정시키고 난 후, 구조작업에 성공했음을 이메일과 해사위성통신 전화로 호주의 구조 관련 단체 및 선주, MOL operator, 용선주, 지역 대리점 등에 보고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배 전 승조원(특히 기관장) 분들, 황천 중에 조난자 구조에 전력을 다해 주신 수고에 마음속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 뒷이야기

 

피구조 생존자 'Paul Lim'은 나이 62세의 캐나다인 남자로서 영국 리버풀 출생인데 약 4년전, 캐나다 뱅쿠버 대학의 교수직(물리학자 겸 수학자)을 은퇴하고, 세계일주를 계획하고 요트에 혼자 승선하여 2008년 2월 26일 캐나다 빅토리아를 출발하여 태평양 여러 섬과, 칠레, 이르헨티나, 페루, 남미 각 지역, 그리고 정글 탐험, 남아프리카 등을 거쳐, 약 87일 동안 호주를 향해 항해하던 중, 강풍과 높은 파도로 인하여 기관고장 및 선체 파손 등으로 조난 을 당했다. 또 이 노 교수의 누이가가 며칠 전 본선에 이메일로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이 구조 소식이 호주 'Perth' 지역 신문과 TV, 캐나다 CBS 방송국, 뱅쿠버 지역 신문에 보도되었다고 합니다.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11년 9월 호

 

본 구조일지의 원문 읽기

http://oceanis.co.kr/records/activity_list.asp?mode=view&page=1&pageSize=10&seritemidx=&artistidx=&serboardsort=&search=0&searchStr=&idx=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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