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우리는 변하는 것일까?

등록일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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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우리는 변하는 것일까?

 

 

승선해기사들의 문예창작 연구 모임인 '해양문학교실'을 운영하면서 책을 내게 되었다. 첫 번째 책은 시, 수필, 콩트, 서간문 등의 순수 문예 작품, 두 번째 책은 해기사의 정체성을 다룬 에세이와 대담, 그리고 승선생활 논픽션 작품을 담았는데 두 번 다 부제만 다를 뿐 책명은 동일하게 '바다에서'였다. 책을 내게 된 데에는 회원들의 왕성한 창작열과 발표 욕구가 가장 컸다. 결코 수월하지 않은 승선생활이 오히려 그들을 예술과 창작의 세계로 들어서게 했다. 첫 번째 책은 감히 작품집이라 말하기에는 좀 민망할 만큼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여러 가지 부족한 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후원금을 내어 준 몇 분의 정성에 콧등이 시큰했다. '바다에서' 2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격려의 힘이 컸다.

책의 집필진 가운데는 학창 시절 필자의 문예창작 지도를 받은 문학청년이 있다. 지금은 국적선사에서 이등항해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는 글쓰기가 생활화되어 있는 젊은 해기사이다. 배는 육상과 달리 직업 환경이 특별하다. 육상의 자동차나 기차와 같이 교통수단이지만 장기간 거주하는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바다 위에 떠다니는 선박이 일터이자 휴식을 제공하는 집이 된다. 항해를 하면서, 그는 바다 생활을 그의 글감으로 삼는다.

인간의 바다에서의 활동은 선박의 운항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오늘날 선박 운항의 주목적은 물류의 이행이다. 전 지구적 물류의 진행이 대양을 건너는 화물선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먼 바다의 선박들은 밤낮없이 항해를 계속한다. 그들은 항해 요원들은 항해 요원대로, 주간 작업조는 주간 작업조대로 다수의 인원이 공동체를 이루고 나름대로 인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매일 매일 보수 정비를 하며 선교와 기관실에서는 하루 4시간씩 두 차례 당직을 서며 운항되는 매커니즘이다. 입출항, 운하나 협수로 통과 시에는 모든 승무원이 자기 부서에서 자리를 지키며 기계와 인간이 일사분란 통합체를 이루게 되는데, 이와 같은 '부서 대기 및 작업 수행' 상황 하에서는 어떤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재화의 보존과 인명의 안전을 위하여 '인간의 기계화'는 오직 미덕이다. 그러나 복잡한 항내 조선과 항해선이 빈번하게 출몰하는 연안 항해를 벗어나 먼 바다로 나가게 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먼 바다, 거기에는 인간의 심성을 일깨워주는 심원한 우주가 있다.

무엇이 우리를 바다로 나가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바다에서 돌아서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육지와 바다 사이에서 이처럼 갈등하게 하는가? 바다는 운명인가, 선택인가? 바다는 사랑인가, 원망인가? 바다는 과연 땅인가, 아니면 영영 바다인가?

지금은 다소 색 바랜 면이 있지만, 해기지-물론, 지금은 해바라기지-를 생각하면 그때 풍기던 은은한 잉크 내음과 다양한 생활수기의 풋풋함에 지금도 가끔 향수에 젖는다. 그때 읽은 글 중에 '노랑 부리저어새의 천이'라는 글이 있다.

노랑부리저어새는 황새의 일종으로서 부리 끝이 노랗다. 글의 필자는 자기 자신을, 또는 바다의 선원을 노랑부리저어새로 비유하고 있었다.

생물학 사전을 찾아보면 천이는 대략 이런 의미를 지닌다. 식물이 살아가는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 식물 군락의 천이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홍수가 일어나 수류가 지나가면서 기존의 식물이 쓸려간 진흙 맨땅의 자리에는 몇 년 후 기존의 식물 대신 새로운 초본류가 군락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산불이 난 자리에도 마찬가지이다. 뜨거운 용암이 흐르다가 식은 자리에도 어려운 여건이지만 천이가 일어난다. 이런 지대는 용암이 식은 속돌과 화산재 등이 퇴적된 지질이어서 보수성(保水性)이 약해 물이 잘 빠지고 염류도 없는 상태이어서 식물이 자랄 수 없어 바람에 날려 온 포자식물이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여 고사하고 만다. 이런 일을 반복하게 되면 빈약한 생육환경 속에서도 식물이 자라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이끼류가 자라게 되고 차츰 차츰 초본류도 참여하면서 나중에는 군락을 형성하게 된다. 생명체들의 생명력은 참으로 질기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생명의 섭리는 절대적이다.

노랑부리저어새는 주로 강가나 물에서 가까운 땅이나 습지대에서 서식한다. 만약 이 새로 하여금 사막이나 물이 없는 내륙의 벌판에서 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잘 살 수 있을까? 만약 땅에서 사는 데에 익숙한 사람으로 하여금 물 위에서 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잘 살 수 있을까?

물론, 이런 물음은 우문(愚問)에 속한다. 현실적으로 바다가 좋아서 선택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외의 이유로 바다로 나가기 때문이다.

좋아서 선택했건, 그 외의 이유로 선택했건, 바다는 바다를 찾아온 사람에게 인심 좋은 장날 국밥집 주모처럼 󰡐어서 오세요󰡑하고 반기지 않는다. 바다는 언제나 만만치 않다. 차갑고 낯설다. 그런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적 환경은 어떠한가? 그들은 과연 살갑고 친절한가? 장기간 가족처럼 서로를 보듬으면서 주거를 함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바다에서, 과연 우리는 변하는 것일까? 바다에서 우리는 무엇을 겪게 되는 것일까? 바다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보게 되는 것일까? 바람 불고, 비 내리고, 안개 끼고, 다시 하늘 푸르고 별 빛나는 밤에 별똥별 지면서 우주는 심원한데 기계와 시름하는 인간들은 서로 형제처럼 잘 지내는지?

글을 쓰다가, 물음을 던지다가, 어느새 편지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젊은 문학청년 이등항해사야, 잘 있니?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니?

 

심 호 섭 | 시인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12년 7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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