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은 어디에 있습니까?

등록일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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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은 어디에 있습니까?

천종영ㅣ부산해사고등학교 교사

 

 

“이제 내일이면 나도 실습이네.”

2009년 2월의 어느 날. 내 생애 처음으로 먼 바다로 나가는, 그러니깐 상선의 기관사가 되기 위하여 승선 실습을 하루 앞둔 지금, 나의 마음은 지금까지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마치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치르기 전의 압박감이라든지, 가파르게 오르막 정점까지 치솟아 오르고 내려가기 직전 의 롤러코스터 위에서 느끼는 그런 아득함과 같은 또 하나의 두근거림이고 떨림이었다.

출항 전 날 밤, 마지막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바다로 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는 짐 가방에 수건을 챙겨 넣으시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너무 걱정 마세요, 어머니. 학교 다니면서 2년이나 객지 생활도 잘 보냈는데 이번에는 6개월이잖아요. 실습 잘 하고 올게요.”

그렇게 늦은 밤, 한 짐 가득 커다란 캐리어 속 정리를 마무리한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웠다. 나는 내일이면 육상과 이별하고 화물선의 기관실에서 분주하게 업무를 배우고 있을 실습기관사가 된 나의 모습을 생각하며 엎치락뒤치락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일어나거라.”

이른 아침, 어머니의 음성이 들린다. 긴장 속에서 잠을 설쳤지만, 나는 벌떡 침상에서 일어났다. 집에서 울산까지는 5시간 이상을 가야하기에 서둘러야 한다. 내가 실습할 배는 컨테이너 신조선으로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건조되어 처녀항해를 위해 대기 중에 있다. 버스터미널에서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하자 이내 버스가 출발한다.

“3시간 남았구나. 이제 얼마 안 남았네.”

버스 안에서,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간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택시를 탄다. 점점 배에 가까워지자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갓 입학했을 때의 일들이 머리에 스쳐갔다. 그때는 일요일마다 떨리고 긴장된 마음을 붙들고 학교 기숙사로 귀교했었는데. 언제나 일요일 저녁은 귀교 집합과 함께 인원보고 후 체력 단련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래서 8번 버스를 타고 영도구청을 지나 먼발치에서 학교가 보이면 그 순간부터 초조해지고 왠지 싫었었는데 지금 택시 안에서 그런 비슷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있다.

이윽고 조선소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조선소를 다니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잠시 후 큰 배 한 척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우뚝 서 있다. 나는 반갑게 배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래 기다렸지? 반갑다. 근데 말로만 듣던 너는 정말 크고 대단해 보인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큰 배의 위용을 보며 다소 위축되고 있는데 배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설치된 긴 사다리 하나가 보인다. 그 곳으로 다가가니 주황색 안전모와 작업복을 입은 외국 선원 한 명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는 나의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직접 들고 계단 위를 성큼성큼 올라간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따라 계단을 올라 갑판 위에 서는 순간, 지금부터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드디어 내가 승선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거주구역 문을 들어서자 ‘DECK OFFICE’라는 큰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서둘러 그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새로 올라온 실기사 천종영입니다”

그렇게 인사를 드렸다. 그렇지만 다들 작업복을 입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여기가 ‘DECK OFFICE’임을 미루어 보아 그 분들은 선장님을 비롯한 항해사관들일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배의 출입구 즉, 갱웨이에서 만난 외국 선원의 안내를 받아 실습생인 내가 쓸 방으로 이동하였다.

‘어라, 엘리베이터가 있네?’

신기하다. 배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니.

‘2nd’라고 쓰인 층부터 F층까지 영어로 표시된 층별 안내판에는 빼곡하게 뭔가가 쓰여져 있다. 아마도 각 층별마다 설치된 시설이 쓰인 것으로 보이는데 낯설기만 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D층을 누르는데 내 방이 D층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이동 속도는 육상의 그것과 비교할 때 다소 느린 편이었다. 얼마 후 D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바로 눈앞에 내가 지낼 방이 보인다.

“우와, 침대 화장실 냉장고 옷장에 책상도 있고. 소파까지-!”

방문을 그냥 열어 둔 채, 감탄사를 멈추지 않고 서 있던 나는 캐리어 가방을 열고 작업복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작업화를 신은 나는 거울 앞에 섰다. 나는 거울의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 낯선 길가에서 길을 찾는 어린 아이를 보고 있는 듯하다.

“기관실은 ‘2ND 층’이라고 했지?”

엘리베이터 안이다. 2ND 층의 버튼을 눌렀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면 기관실로 간다. 나는 지금 말할 수 없는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마침내 기관실, 선박 기관 작업의 현장이다. 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배전반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기관사관님들의 모습이 내가 맞은 기관실의 첫 풍경이다. 가서 인사를 드려야지, 하고 생각을 하는 순간 한 분이 내게 다가오신다.

“실기사니?”

“......”

그는 내가 미처 대답도하기 전에 바쁘게 기관실을 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게 인사를 건넨 분은 3등기관사였다. 그리고 기관실 안에서 또 한 분이 서서 뭔가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 분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곧바로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올라온 실기사 천종영입니다.”

너무 젊어 보이셔서 누구신가 했는데 기관부를 총 책임지고 있는 기관장님이다. 나는 기관장님의 지시에 따라 3등기관사를 보조하기 위해 안전모와 귀마개를 주섬주섬 들고서 3등기관사의 뒤를 따른다.

“으아 – !?”

내 눈앞에 거대한 기기 하나가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도 크고 작은 기기들로 가득하며 각자의 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소리가 매우 거칠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게도 친근하게, 아니 내 가슴을 마구 설레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계들은 모두 바쁘게, 저마다 자기의 소리를 내며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해 내고 있었고, 사람들 또한 그러하였다. 그리고 아무도 실습생인 나에게 아직까지 무엇을 하라고 설명도 지시도 하지 않고 있다. 다들 분주하게 자기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을 보니 아, 정말 나는 실습의 현장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등기관사님을 부지런히 따라다니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그를 좇는 일이 여간 쉽지 않다. 기관실 계단은 폭이 좁고 간격은 생각보다 높아 빨리 오르내리는 게 어렵다.

“왜케 빠른거야.”

서둘러 따라가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콜록 콜록.....”

자꾸 기침이 나온다. 기관실 내부에 있는 미세한 먼지와 가스 냄새 같은 것이 기침과 함께 내 코끝을 간질거리며 괴롭힌다.

3등기관사를 떠나 지금 청정기실이라고 하는 곳에서 이등기관사님 옆에 서 있다.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검은 뭔가가 뿜어져 나온다. 기름이다.

“난방 불러와!”

다급한 2등기관사의 음성에 내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있다. 난방? 난방이 무엇인가? 누구인가?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 서둘러 찾아보려고 누구에게 물어보려고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그 큰 기관실을 다 찾아 헤매었지만 왜 그 순간만큼은 단 한명도 보이질 않은지...... 너무나 답답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난방이라고 하는 것은 ‘NO.1 OILER’, 우리말로는 조기장이라고 불리는 기관부원들 중 직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찾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보니 어떤 나이 드신 분이 그곳에서 흘러내린 기름을 열심히 닦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는 바로 2등기관사가 찾고 있던 ‘NO.1 OILER’였다. 나도 그와 함께 흘러내린 기름을 닦는데 끈적거리는 기름은 잘 닦이지가 않아 무척 힘들다. 나와는 달리 ‘난방’은 숙련된 솜씨로 쓱쓱 잘 닦고 있지만, 뭔가 계속 투덜대는 모습이 지금 나의 심사와 별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지금 나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정신이 없다. 그리고 처음에는 기관실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든지 몰랐지만 지하 4층 정도와 맞먹는 기관실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나니 발이 아프다. 기관실이 덥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시원한 기관제어실로 들어오고 나서였다.

실습 중에는 무엇보다도 기관실 내 기기들이 배치된 곳의 위치를 잘 확인해서 기억해 둬야 한다는 말이 떠올라 불편함을 참고 층계를 오르내리면서 열심히 위치도를 머릿속에 그리며 외웠다. 얼마나 오르내리면서 되새겼는지 거의 80% 정도는 그 위치를 떠올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출항 준비 시간이다. 다시 3등기관사를 따라 기관실 여기저기를 다니며 출항 준비를 한다.

“여기서는 이 밸브를 열어서 안에 있는 수분을 빼줘야 돼.”

​나는 설명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세심하게 메모를 한다. 자세한 이론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그저 알려주는 대로 내 귀에 들리는 대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적는다. 이를 위하여 시끄러운 곳에서는 더욱 더 집중한다. 3등기관사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함께 해 나가야 할 것들이라고 말하였기에 나중에 그렇게 하지 않아 혼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임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나의 주어진 역할이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기본적인 출항 준비를 위한 일들이 끝나고 나자 엔진 앞에 3등기관사가 선다. 나도 덩달아 옆에 섰다. 3등기관사는 가슴에 꽂혀 있던 커다란 무전기로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하더니 어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곧 얼마 후 큰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어떤 구멍을 통해 연기 같은 것들이 뿜어져 나온다.

“와, 이건 뭔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더니 3등기관사는 나에게 공기가 나왔던 엔진에 설치된 밸브들을 모두 잠그라고 한다. 밸브를 잠그고 나서 모든 기관사관들이 기관실 안에 모였다. 출항 전의 대기 자세처럼 보인다. 그제 서야 뭔가 여유를 찾은 것 같다. 나는 모든 기관사관님들께 정식으로 다시 인사를 드린다. 아, 인사 한번 드리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니.

“Stand by, all stations.”

모든 부서 준비 자세. 출항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드디어 출항인 것이다.

무전기를 통해 뭔가 이야기가 오가더니 아까 엔진 앞에서 들었던 큰소리가 몇 번 들린다. 엔진사용을 위한 테스트 과정이라고 한다. 그러고는 배를 부두에 잡고 있던 계선줄을 푸는 과정이 기관실 무전기를 통해서 들려 나온다. 바깥의 선수루갑판, 선미갑판과 선교에서는 선장님과 항해사관들이 제각각 서로 교신을 하며 출항작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그 교신 소리와 내용이 엄청 리얼하다.

“Dead Slow Astern!”

​큰 소리와 함께 커다란 엔진이 움직인다. 기관이 작동되자 기관제어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관사관들은 모두 기관실로 내려가고 있다. 그들은 모두 손전등을 들고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나도 내가 들고 온 손전등을 들고 그들을 흉내 내기라도 하는 듯 기기들을 불을 비추며 살펴본다.

펑, 펑, 펑...... 기관이 큰 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있다. 실린더 안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실런더를 때리고 있다. 그 소리는 마치 뻥튀기 장수가 터뜨리는 뻥튀기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오래된 사원의 큰 종이 울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펑, 펑’ 하는 소리는 간격이 짧아지더니 이제는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로 바뀌었고, 나는 그 소리에 덩달아 리듬을 맞추어 고개를 살짝 끄떡여 보았다. 기관의 소음과 그 리듬과 내가 자아내는 장단이 실내에 흐르는 무겁고도 역동적인 긴장과 함께 우리가 속한 선박의 기관실이라는 작은 세계가 지금 이 순간 고요에 젖어들었다는 착각이 들게 하면서, 그렇게 배는 힘차게 항진하고 있는 것이다.

출항작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 뎅그러니 열려 있는 캐리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정신없이 흘러간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본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혼돈스럽기만 하다. 앞으로 남은 나의 실습기간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지만, 그러나 기대도 된다. 이제 시작이다. 빨리 이곳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낯선 학교생활도 잘 적응했던 것처럼 실습생활도 그러하리라. 또 기관사로 성장해 나갈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나를 격려한다. 짐 정리를 마친 나는 아직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벌써부터 첫 주인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잘 단장한 침대 위에 살며시 누워 눈을 감는다. 둥근 스커틀 창밖으로 부터 은은하게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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