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선원 이야기

등록일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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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원 이야기

 

 

본선은 3천 톤급의 국내 연안을 항해하는 일반화물선이다.

배에서 조리장을 통칭 주자(廚者)라 부른다. 본선 주자 김 씨는 올해 68세이다.

몇 해 전에 승선 중 중풍 끼가 있어 병가(病暇)로 하선했다. 입과 오른발의 마비증상으로 입을 다물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 중풍 초기이니 수술을 하든지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고 전문의사가 진단 내렸다. 어느 쪽이든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아내가 느닷없이 이혼을 요구했다. 위자료나 재산분할(이랬자 변변치 못한 액수지만)을 일체 요구치 않을 테니 이혼서류에 도장만 찍어 달라는 거였다.

김 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평생을 거친 파도에 시달려가며 생활비를 벌어 보내줬더니 이 무슨 날 벼락같은 소린가 싶었다. 이런 걸 두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말하는가 보다.

그의 아내는 종교에 미친 여자였다. 남편이 중병이 걸려 집에 돌아와 절에 마음대로 갈 수 없으니 속된 말로 '서로 째지자'는 것이다. 그럴 게다. 남편 병수발로 행동에 제약이 오니 자유스러웠던 자신의 신앙생활에 제동이 걸렸다. 게다가 그가 더 이상 배타며 돈 벌 수가 없으니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김 씨는 말없이 이혼서류에 도장 찍어줬다. 불행 중 다행으로 김 씨는 수술 없이 약물로 중풍을 치유했다. 김 씨의 요리 실력은 명장(名匠) 반열에 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이런 그의 손맛을 잊지 못한 본선 선장이 회사에 강력하게 요구하여 그를 다시 본선에 승선 근무하도록 했다.

그는 배에서 내리면 갈 곳이 없다. 하나뿐인 아들이 캐나다로 이민 갔으므로 돌아갈 집이 없다. 웃음을 잃은 그는 가끔씩 자기 선실에서 깡 소주를 마신다. 중풍에 소주는 독약이나 다름없음에도.

갑판장 이 씨는 올해 64세이다. 70~80년대에 한창 수출선원 몸값이 상한가를 칠 때 VLCC(초대형 유조선)를 20여 년간 승선하여 재산을 꽤 모았다. 배에서 내려 경북 대구에서 섬유사업을 했다. 사업은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로웠다. 하나 호사다마인지 10여 년 전에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 당시에 40대 후반이던 아내가 지금까지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 몸의 절반을 쓰지 못하는 중증환자이다.

섬유사업도 사양 산업이 돼서 적자만 늘어났다.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배를 탔다.

그의 월급은 200만 원이다. 근로소득세 포함하여 이것저것 공제하고 나면 실 수령액은 190여 만 원. 매달 아내의 전속 간병인 월급 150만 원에 병원비 빼고 나면 적자다. 그는 국민연금 38만 원에 온 보드 페이(on-board pay, 승선 중에 봉급 외에 회사에서 선원에게 지급하는 교통비 등의 용돈 정도의 수당)로 매달 근근이 버티고 있다.

갑판장은 작고한 서부영화의 명배우 캐리쿠퍼처럼 후리후리한 키에 성품이 온화하다. 아무리 속상하는 일이 있어도 좀처럼 내색하는 법이 없다. 그런 그도 아내의 오랜 병고로 인하여 입성이 초라한 건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자기 순번의 상륙하는 날이 찾아오면 늘 그랬듯이 아내의 병실을 찾는다. 아내는 이미 폐인이나 다름없었다. 곁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말하는 것도 어린아이가 다 됐다고 한다.

호기심 많은 동료선원 누군가가 농담 삼아 갑판장에게 이런 걸 물었다.

"마누라가 그렇게 됐으니 거시기는 어떻게 해결하나? 세상에 쎄고 쎈게 여잔데 혹시 숨겨둔 여잔 없나?"

쓸데없는 말을 잘 안하는 그이나 이때만큼은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난들 날 따르는 여자가 왜 없었겠나. (옷을) 홀딱 벗고 덤비는 여자도 있더라. 내가 딱 부러지게 싫다했다. 아픈 조강지처 놔두고 어찌 그런 추접한 짓을 하겠나. 그거 우째(어떻게) 해결하느냐고? 집사람이 입원하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굶었다 굶었어. 허허허..."

 

-에필로그-

배가 입항해도 갈 곳이 마땅찮은 주자는 산나물을 뜯으러 산에 갔다.

그에게 음식 만들기는 천직이자 마지막 보람이었다. 산나물 마다 언제 뜯어야 제 맛을 내는지 훤히 꿰고 있다. 어떡하면 선원들에게 맛 나는 반찬을 만들어 줄까 그것만 생각하며 여생을 사는 것 같았다.

 

갑판장이 며칠 전에 병원에 갔더니

"여보, 왜 얼굴이 새까매요?"하고 아내가 울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내가 검은가? 갑판 상의 페인팅 작업할 때 햇볕에 탔었나. 다음에 갈 땐 얼굴에 뭔가 바르고 가야겠네."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12년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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