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1)

등록일20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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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목길 형님들이 조폭이 됐다

 

‘캐리비안의 해적’ 주인공 조니 뎁. 섹시한 해적에게 여성 관객이 꽤 열광했다. 17, 18세기 바다를 주름잡았던 해적, 그들은 지금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해적을 피부에 와 닿게 한 사건이 있었다. 2011년 석해균 선장의 삼호주얼리호 구출 작전. 필자는 실제로 해적을 만난 선장을 만난 적이 있다. 1980년대 중반 일본 어느 항구에 닻을 내린 선박에 승선했는데, 선장은 지난 항해에서 해적을 만나 선상금(배에서 선원에게 지급하려 준비한 돈)을 모두 빼앗겼다고 흥분했다. 싱가포르 인근 말라카 해협에서다.

바다가 좁기 때문에 여기를 지날 때는 속력을 늦춰서 10노트(시속 약 18.5km) 정도로 거북이 운항을 한다. 육지 가까운 곳에서 접근한 해적들은 초쾌속선을 타고 뱃전에 붙어서 갈고리를 던진다. 선박 쇠붙이에 걸린 갈고리에 연결된 밧줄을 타고 곡예를 하듯이 배에 오른다. 수만 t에 이르는 ‘고래’만 한 배들도 이 ‘벼룩’만 한 갈고리에 걸리면 꼼짝없이 당한다.

배에 오른 해적은 선원을 인질로 잡아 칼을 겨누고 선장실로 간다. 선장의 손을 묶고 선상금을 금고에서 꺼내라고 윽박지르고 가방에 돈을 담는다. 그러고는 선장을 인질로 데리고 가 배에 올라탄다. 일단 해적들이 선박에 올라 선원 한 명이라도 인질로 잡으면 속수무책이다. 몇천 달러의 돈을 다 털리고 만다. 해적을 만나면 돈도 돈이지만 배에서 절대 권위인 선장 체면이 말이 아니다. 팬티 바람으로 꽁꽁 묶여…. 선박 회사에서는 해적 방지책을 내놨다. 하나는 갑판에 설치된 소화용 물대포로 선박에 오르려는 해적을 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해협을 지날 때 갑판 당직을 세우는 방법이다. 당직자는 방망이를 들고 있다가 해적이 수면에서 뱃전 위로 올라올 때를 대비한다. 당시 말라카 해적은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나마 싸워 볼 만했다. 이들은 가난한 인도네시아인이 많았는데, 이들을 만나는 일은 학창 시절 골목길에서 ‘껌 좀 씹는’ 선배들에게 돈을 뜯기는 정도랄까.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해적이 달라졌다. AK 소총으로 무장한 소말리아 해적은 ‘골목길 깡패’가 아니다. 선박을 통째로 항구로 끌고 가고, 선박과 선원의 석방을 위해 보석금을 요구한다. 총기를 선장이 가지고 있으면 도움이 되지만, 총기 보유는 고립된 배에서 위험한 일이라 허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 소말리아를 지날 때 무장한 청원경찰을 배에 모시고 항해한다. 곤혹스러운 것은 인질로 잡힌 선원을 구하기 위해 석방금을 해적에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유엔과 미국의 입장이다.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이런 엄정함이 필요하지만 인질 가족이나 회사는 난감하다. 그나마 영국 법원이 석방금도 보험회사가 지급해야 할 사안이라고 판결해 돈을 구할 길은 열렸다.
 
김인현 l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자료출처 : 동아일보 2018년 10월 5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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