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과 사(死), 그리고 픽션과 논픽션의 갈림길에서

등록일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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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과 사(死), 그리고 픽션과 논픽션의 갈림길에서

이영환(신성해운 1항사)

 

 

2013년 10월 2일 현지시각 21시경.

우지직~~!!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충격에 휘청이며 흔들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대체 무슨 일인가?’ 후다닥 브리지로 올라가 보니 당직 중이던 3등 항해사와 조타수는 이미 패닉 상태에 가까워 말을 잊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옆 윙 브리지를 쳐다보니 산덩이만한 큰 배의 선수가 본선 브리지 좌측을 강타하고 바로 옆까지 들어와 있다.

아! 큰일 났구나!! 이제 정말 끝장이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과 상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지나간다.

함께 올라온 CAPT’에게 “아래쪽, 피해 상황을 빨리 파악해봐야겠습니다.”하고 침실로 황급히 내려와 Life Jacket과 헬멧을 걸치고 손전등을 챙겨 계단을 내려오자 복도에서 COOK과 ABA가 Life Jacket과 가방을 하나씩 챙겨든 채 나보고 어떡하면 되느냐고 묻는다.

브리지 Order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현장 확인부터 해야겠다며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보니 벌써 침수가 시작되었는지 배가 좌현 측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2번창 해치 맨홀을 열고 내려가며 손전등을 비추어보니 다행히 HOLD에는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천만다행이다 생각하며 좀 더 주의 깊게 화물을 살펴보니 외관상 멀쩡해 보인다.

얼른 다시 올라와 ABB에게 좌현 측 밸러스트 탱크를 전부 Sounding해 Check하고 보고하도록 지시하고, 1번창 해치 맨홀을 열고 내려가 확인해보니 아무 이상이 없다. 다소 안심이 된다.

밸러스트 탱크 사운딩을 하던 ABB가 달려와 1/2/3/4/5번은 이상이 없고 6번 탱크가 7m50이란다. 7번 탱크도 확인하라고 지시하니 잠시 후에 2m60이라고 보고한다.

‘아!! 그럼 6번, 7번 쪽이 손상을 입고 파공이 생겼구나!’ 추측이 된다.

Upper Deck/ Poop Deck/ B-Deck/ A-Deck를 차례로 둘러보며 브리지로 올라가 보니 선미에 Life Boat Davit가 심하게 휘어져 뒤틀려 있고 Boat가 간신히 매달려 있다.

저건 퇴선 시 쓸 수가 없겠구나 생각하며, 좌현 윙 브리지 쪽을 보니 뭔가 허전하다. 돌출된 Wing과 Hand Rail이 보이질 않는다. 심하게 구겨지고 찌그러져 형체가 거의 없다.

브리지에 있는 CAPT’에게 Hold는 이상이 없고 6번, 7번 밸러스트 탱크가 손상되어 해수가 거의 Full로 차올라 좌측으로 계속 기운다고 보고하고 나니 기관장도 기관실과 각 연료탱크 확인 결과 이상이 없다고 보고한다.

‘천만다행이다···. 죽지는 않겠구나!’하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브리지는 전쟁 중이다. 2항사는 VHF로 충돌 상대 선과 교신하고 또 옆에서는 CAPT’이 회사 측과 위성전화로 한참 통화를 하며 현재 상황을 설명 중이다. 그제야 정신을 좀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충돌 상대선은 1.5마일가량 떨어져 투묘를 해놓은 상태다.

일본 해상 보안청과 교신하며 사고 상황을 보고하니 약 30분쯤 지나 보안청 순시선이 접근해 우현 측에 접선하여 조사관 5~6명이 승선한다.

브리지에서 CAPT’과 당직 중이던 3항사에게 충돌사고 상황을 전해 들으며 여러 가지 사항을 물어온다.

충돌 전의 양 선박의 조우 상황, VHF 교신내용, 이후의 조치내용, 충돌 당시의 상황, 피해의 규모 및 손상 개소, 자력으로 항해의 가능 여부 등등. 이 사람 저 사람 한도 끝도 없이 반복해가며 묻고 또 묻고······.

슬슬 피곤해지며 졸음이 몰려온다. 시간을 보니 23시30분. 벌써 2시간 반이 지났건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현재 위치는 항행선박이 빈번하고 해상상태도 좋지 않으니 우선 선박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 투묘하고 내일 아침 다시 와서 조사하기로 하고 해상 보안청 조사관들이 철수한다.

우리도 자력 항해를 위하여 좌현으로 5도가량 기운 선체를 바로 잡기 위해 우측 6번 밸러스트 탱크에 해수를 주입하여 경사를 맞추기로 했다. 약 70%가량 채우자 어느 정도 경사가 잡혀 엔진준비, 시동하여 순시선의 인도 하에 인근 투묘지로 이동하고 나니 새벽 2시40분. 이런 런 상황에서도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은 살아있나 보다. 배고픔과 졸음에 대한 강한 욕구가 느껴진다.

잠시 침실로 돌아와 냉장고에 있는 빵 몇 조각과 우유로 허기를 채우고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드러눕는다. ‘아~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삐비빅—삐비빅--”

‘이건 무슨 소리지?’

3시40분, 당직 교대하라는 알림 시계가 울린다. 정신이 멍하고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찬물로 세수하고 브리지에 올라가 2항사에게 당직 및 주변 상황을 인계받고 내려가 쉬라고 하니 “Thank you Sir!”하며 얼른 내려간다.

그래 모두 피곤했을 텐데, 또 얼마나 크게 놀랐을까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문뜩문뜩 스쳐 지나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교대 날짜를 받아놓고 마지막 항차에 정말 생의 마지막이 될 뻔했다’ 등등….

소파에 앉아 잠시 졸았나 보다. ABA가 “Good morning Sir!”하고 인사를 한다.

시계를 보니 6시, 벌써 그렇게 됐나. 녀석이 청수 Sounding 후 잔량을 흑판에 적어놓고 브리지 청소를 시작한다.

참 저놈들은 자기 맡은 일과는 착실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어젯밤 복도에서 러닝셔츠 바람에 Life Jacket을 걸쳐 입고 나보고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던 모습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너도 얼마 남지 않는 만기일까지 몸 건강히 지내다 가족과 만나야지···.’

7시가 되자 어제 철수한 해상 보안청 조사관들이 다시 승선한다.

6명이 승선하여 또다시 처음부터 묻기 시작한다. 3항사, 조타수, CAPT’에게 어제 물어본 사항을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확인 또 확인···. 몇 명은 손상부위 사진을 열심히 찍고 필요 서류도 복사해달란다.

몇 시간 북새통을 치르고 나서 선체 좌측에 생긴 파공과 손상 정도를 확인하려면 Diver가 수중에 들어가 확인해야 하는데 조류가 세서 위험하니 인근 KOMATSUSHIMA항으로 입항해 접안 후에 조사해야 한단다.

그런데 현재 Draft로는 수심이 얕아 입항이 어려우니 본선에서 최대한 Trim을 줄여 최대 흘수 7m 이내로 조정하란다.

현재 상태는 6번, 7번 밸러스트 탱크 파공으로 침수되어 선미 Draft가 7m 90까지 내려가 있다.

CAPT’과 여러 가지 방안을 계산, 협의 끝에 선미 Trim을 줄이기 위해 FPT를 채우고 6번 우측은 밸러스트를 비우고 Helling은 2번 우측 밸러스트를 채워서 맞춘 다음 7번은 펌핑을 계속하면 계산상 선수 Draft 6m75, 선미 Draft 6m95가 된다고 설명하니, PILOT이 항내 수심이 7m50 이내여서 선저 여유수심이 60cm 이상 되어야 한다고 하며 선미 Draft가 최대 6m 90이면 승선하겠다고 한다.

‘아, 산 넘어 산이로구나···. 그래 한번 해보자!’

기관장, 1기사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최대한 협조를 당부했다.

차근차근 진행하며 확인해 나가는데 도저히 6m90까지는 안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청수 50톤을 퍼내 버리기로 하고 최소량 15톤만 남기기로 했다.

갑판장에게 Jacob's Ladder를 선미에 설치할 것을 지시하고 내가 직접 Life Jacket을 입고 내려가 확인해 보니 6m 85쯤 되는 것 같다.

“오케이!”

우여곡절 끝에 도선사가 승선하여 KOMATSUSHIMA 동쪽 부두에 접안하고, 뒤이어 K.R검사관, 해상 보안청 조사관들, 보험회사 Surveyor, 일본 교통 안전국 조사관, PSC 검사관들이 연이어 방선하여 각각 심문 · 조사하고, 상황 등을 묻고, 적고, 수집하며 북새통을 치른다.

충돌 상대 선박은 5만 톤급의 컨테이너선으로 세계 굴지의 선사 소속으로 일본 오사카를 출항하여 부산으로 항해하던 중이었고, 우리 3항사의 진술에 의하면 본선과 3마일 떨어진 지점에서부터 상대 선박에 VHF로 호출하여 본선 선미로 통과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상호 동의하였으나 계속 CPA에 변화가 없자 재차 우변침하여 선미로 통과할 것을 교신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대각도로 변침하지 않고 소각도만 변침하여 상황이 급박해지자 본선은 급우 전타하였고 그제야 상대선도 같이 급우전타 하여 결국 본선 좌현 선미부를 들이받고 말았다.

이 사고로 인해 본선은 서두에 말한 바와 같이 좌현 측 6/7번 밸러스트 탱크 파공 침수, 선원 거주구역 내 2/3기사 침실 반파, 구명정과 Davit 및 Provision Davit 파손, Wing 브리지 및 Top 브리지 좌측 파손 및 인근 Hand-Rail 파손 등 상당한 피해와 손상을 입었다.

선박의 안전과 자력 항해를 위해 선체 및 파공부위를 조사한 Diver가 수중 카메라로 손상부위를 촬영해온 사진을 확인해보니 예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약 4m가량 폭 5~20cm로 찢어진 곳과 작은 파공 부위가 12곳가량 된다.

K.R검사관, PSC검사관, Diver와 본선 측이 협의한 끝에 파공부위를 나무쐐기로 막고 그 주변을 특수 Cement로 메우고 Crack이 간 부위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끝 부분에 구멍을 뚫고 나서 다시 Cement와 나무쐐기를 박는 작업 형태로 진행됐다.

2일간의 작업 후 밸러스트 탱크의 맨홀 커버를 개방하고, 나와 K.R 검사관이 확인 차 밸러스트 탱크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파공부위 이외에도 Bulk Head가 손상되어 심하게 곡직파손 되어있고 군데군데 Frame 및 Beam의 손상도 눈에 띈다.

파공부위는 쐐기로 잘 막아진 것 같으나 몇 군데에서 물이 새어 들어온다.

재협의 결과 누수 되는 부위를 재시공하고 Cement로 보수한 다음 그 위에 철판을 용접하여 덧붙이기로 했다.

이곳 현장 상황을 회사 측과 통화 설명하고 TOYOHASHI에서 화물 양하 후 부산으로 입항하여 상가 수리를 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하루 동안의 보강 수리가 끝나고 K.R검사관과 재차 확인한 결과 누수 부위가 거의 잡혔다. 사진 촬영 후 PSC 검사관들에게 수리 후 사진과 누수 부위 재시공 사진들을 보여주고 임시 항행허가서를 받아 항해 가능하다는 판정과 부산입항 후 상가 수리를 하는 조건으로 출항이 허락되었다.

2013년 10월 6일 오후 3시12분 드디어 본선 자력 출항하여 선적된 화물 양하를 위해 지친 몸과 찢긴 상처를 여미고 힘찬 기적을 부우웅~~!!! 울리며 TOYOHASHI로 항해를 시작했다.

기나긴 생과 사의 갈림길, 픽션과 논픽션의 혼재 속에서 오늘도 나는 파도를 가른다.

 

□ 자료출처 : <월간 海바라기> 2013년 12월 호 '회원 리포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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