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일지를 펼치면(1)

등록일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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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일지를 펼치면(1)

장일경 ㅣ 수필가, 해기사

 

 

지난해 2회에 걸쳐 연재된 <라스팔마스, 그 섬에 가고 싶다>가 필자의 과거 원양어선 시절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글은 외항선을 타면서 겪은 실화를 기억나는 대로 엮어보았다.

원양어선 항해사를 끝내고 필자는 그토록 타고 싶었던 외항선에 우여곡절 끝에 타게 되었다. 제1회 교류면허 시험을 치르고 일반 상선면허를 취득했음에도 어서 오라고 찾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당시부터 비해양계 출신이 겪었던 설움은 당한 사람들만이 알 것이다.

필자가 맨 처음 승선한 상선은 케미컬탱커였다. 탱커가 뭔지 벌크선이 뭔지 오로지 어선밖에 모르던 필자에게 케미컬이란 그저 화공약품 정도의 개념뿐이었다. 총톤수 3,500톤이라니, 350톤 트롤선을 타던 필자에겐 제2차 세계대전 시절 일본의 불침전함 야마토호나 독일의 무적전함 비스마르크호보다도 더 큰 배라고 여겨졌다. 미국, 어릴 때부터 하얀 비행운을 뿌리며 창공을 날아가던 비행기를 우러러보며 미국이란 나라에 갖던 꿈도 드디어 실현됐다. LA에서 비행기로 휴스턴까지 횡단하는데도 몇 시간이 걸린다. 역시 대단한 나라다. 휴스턴에 도착, 부두에 붙어 있는 배를 보는 순간 속으로 무척 놀랬다. 배 전체가 파이프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그 복잡함이란. 액체와 기체는 파이프를 통해서 이동을 하고 밸브로 개폐를 할 수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비로소 배에서 알았다.

당시는 외국선주의 배에 일본인 또는 유럽인 선기장 사관 밑에서 배를 타던 시절이었다. 올 멤버라고 불리는 말 그대로 전 선원이 한국사람으로 구성된 배도 있었다. 필자가 승선한 S호도 그 중의 하나였다. 송출선 한국선원들이 8만명이니 10만명이니 하던 시절이다. 그 시절 중앙동은 외항선 선원들로 넘쳐났다. 지금 용두산공원 장기판 주변에 모여선 어르신들 대부분 왕년에 바다를 누빈 뱃사내들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력서와 면허, 선원수첩이 담긴 노란 봉투를 든 사람은 전부 선원이고 출국을 하는 선원들이 회사에 집결할 때면 트렁크를 단체로 끌고 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식당, 숙박시설 모든 업종이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대형 송출선사들이 100척 이상씩 관리를 할 때였으니 말이다. 또한 바다에서 한국선원들의 위세가 대단했다. 오대양 어디서든 “한국 배, 감도 있습니까?” VHL 16번에서 부르면 “예, 감도 좋습니다.” 사방에서 한국 배들이 끼어든다. 채널 06번으로 모두 모여 한국 소식 등을 듣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한국선원들의 실력 또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부원들이 대개 어선에서 기본기를 배우고 갑견으로 시작, 갑판원을 거쳐 조타수로 몇 년씩 단계를 밟고 올라온 사람들이라 제대로 일머리를 배운 사람들이었다. 필리핀 선원들은 아카데미 같은 전문 선원양성학원에서 기숙하며 기본 소양을 연마한 뒤 승선하게 되어 그나마 기본은 갖추어져 있는데 요즘 미얀마 선원들은 아예 처음부터 배에 와서 배우는 판이다. 경력이 그나마 있다는 갑판장이나 사관들이 정확한 선체 구조나 기기에 대한 명칭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외국 선주들은 신조선에 필리핀 선원들을 태우다 몇 년 후 정비를 안 해 배가 급격히 노후되면 한국선원들로 교체한다. 노후된 배를 금세 새 배로 만들어버리는 그 우수성이 인정을 받았지만 그 놈의 도깨비 국물이 뭔지 그 놈만 들어갔다 하면 화기애애하던 술판이 끝내는 싸움판으로 변해버리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따지고 보면 선원이란 직업이 참 불쌍한 직업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배우 박노식처럼 마도로스 파이프를 물고 멋진 폼 잡는 줄 알지만 그게 아니다. 사회와 격리되고 가족과 떨어져 맨날 보는 얼굴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반복되는 과업에 쳇바퀴 돌다 보면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뿐이랴, 날씨가 나쁜 날이면 파도밭에서 며칠씩 좌우, 앞뒤로 엎어졌다, 뒤집어졌다를 반복하면 정말 죽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더구나 공황에 가까운 공포감은 배를 타본, 황천의 바다를 건너본 선원들만이 아는 끔찍한 고통의 기억이다. 육지의 직장에서는 퇴근 후 동료나 친구를 만나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 걸치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지만 직장과 구내식당과 기숙사가 한 공간에 있는 선박이란 특수한 공간에서 매일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에서 건전하게 이겨내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요즘에야 개인 컴퓨터가 있어 각종 오락물을 시청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그때는 술과 담배로 무료한 시간을 잊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배 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해난을 당해본 경험이 있으리라. 심할 경우 죽을 뻔했다고 하는데 이 경우는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뛰어들었거나 구조를 받아 본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결코 선상생활을 하는 중에 훈련 외에는 입어서는 안 될 조끼다. 보온복 역시 입어서는 안 될 옷이다.

필자가 동남아 원목선을 탈 때 파푸아뉴기니에서 적재하고 주로 한국 또는 일본에서 하역을 했다. 한번은 파푸아뉴기니에서 출항하여 섬의 동쪽 끝 못 미쳐 라벤 채널을 통과하기로 했다. 여태껏 한 번도 지나가 본 적이 없었지만 해도도 있고 약 이틀 정도 거리도 단축되어 겸사겸사 좋아 내해 항해를 했다. 기상이 불순하여 스콜이 밤새 쏟아졌다가 개었다가 변덕이 아주 심했다. 새벽에 당직을 인계받고 위치를 내면서 채널 입구까지 오니 날이 새긴 새는데 안개가 심하게 끼어 시정이 좋지 않았다. 가시거리 30~40미터 정도로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GPS가 있긴 해도 24시간 현 위치가 표시되는 게 아니라 초창기에는 하루에 몇 번 정도 알려주는 성능이었을 때니 오로지 레이더에 의존해야 했다. 캡틴이 올라오더니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채곤 직접 레이더 위치를 구하는데 여기 나왔다 저기 나왔다 도무지 어디가 맞는지 혼란스럽다. 차라리 지금까지 그나마 물표가 좋았을 때 잡아온 필자의 위치를 신뢰하고 정침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위급 상황일 때 본인 자신만을 믿고 싶은지 몇 번 변침 지시를 한다. 초고층 유리 닦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옥상에서 자기가 타고 내려갈 줄을 고정시킬 때 절대 동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 묶는다는데, 자기 생명에 대한 담보를 자기 손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때 선장의 판단으로 이게 아니다 싶으면 후진을 하여 다시 돌아나가든지 했어야 하는데 다들 요행을 바라고 배는 데드 슬로우로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1분 후 얼핏 안개가 살짝 개면서 등주가 얼핏 보였다가 사라진다. 우현 쪽 등주가 녹등이어야만 하는데 무슨 색인지 확인을 하지 못했다. 너무나 짧은 순간에 보였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마조마하면서 숨을 죽이고 긴장하기를 한 30초쯤 후였을까? 덜커덕 발밑에서 충격이 온다. 그 충격과 거의 동시에 캡틴이 “아이코” 하면서 펄쩍 뛴다. 좌초다. ‘우째 이런 일이!’ 선수 좌현 쪽이 수심 약 4미터 정도 되는 산호초 바닥에 얹혔다. 1번 홀드에서는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 시퍼렇다 못해 암청색으로 컴컴하다. 산호초 바위 덩어리 사이로 알록달록 수족관에서나 볼 수 있는 열대어들이 떼로 유영을 하고 있다. 잠시 좌초가 된 위급사태를 잊어버리게 할 만한 황홀한 풍경이다. 전체 밸러스트 탱크를 측심했다. 다행히 이상이 없다.

회사에 보고를 하니 그때부터 회사에서도 해도를 긴급 구입했는지 육해상 비상대응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지시가 내려온다. 본선에서 벌써 다해보고 난 방법을 해보라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거의 없는 해역이다. 1번 해치 카바위의 원목을 뒤편으로 이동적재를 시도해 보았지만 고작 10~20개 정도 옮겨서는 트림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포기하고, 죽자 사자 전속 후진 엔진만 딱아 돌리니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이판사판이다. 배를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 무슨 낯짝으로 회사에 들어간단 말인가. 차라리 이대로 가라앉아버리면 아닌 말로 칭찬이라도 들을 텐데, 하면서 하루 밤낮을 자이로 컴퍼스 리피터대를 잡고 밤바다를 보니 빌어먹을 등주는 청천암야에 용용 죽겠지 하는 식으로 명료하게 깜빡거리고 있다. 간격이 100미터나 되는 저 사이를 통과 못했다니 한심스러운 후회가 든다. 참 졸립다. 너무 자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다. 이틀 밤낮을 눈꺼풀 한번 덮어보지 못하고 이 지경이다. 어쩌다 순간 잠에 꼴깍 빠지면 다리 무릎 관절이 순간 풀리면서 풀썩 주저앉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깨고 보면 배는 꼼짝하지를 않는다. 그때 순간 컴퍼스 방위가 살짝 1, 2도 떨리는 것을 보았다. 잘못 보았나. 이제 헛것마저 보이니 이러다 순직하는 거나 아닌지. 마침 캡틴이 올라와 괜찮으냐고 묻는다. 가서 쉬라고 하는데 자기나 나나 죄인이 된 이상 서로가 괴롭다. 철없는 필리핀 선원들은 천하태평이다. 하루에 한 번씩 수도 포트모즈르비에서 자기 나라 항구로 오가는 화물선이 지나간다. 얹혀 있는 우리 배를 보며 웃고 지나가는데 부끄럽기 그지없다.

다시 밤이 돌아왔다. 오늘은 뭔가 예감이 좋다. 어제 그 시간 무렵 방위가 변하는지 유심히 관찰하면서 한 번씩 엔진을 써보기도 한다. 어렵쇼, 방위가 2~3도 변한다. 이때다 싶어 풀 어스턴을 당겼다. 5도 정도 방위가 변한다. 방위가 변한다는 말은 배가 움직인다는 증거다. 전속후진으로 한 5분 정도 지났을까 입안이 바싹바싹 탄다. 배가 꿈틀꿈틀 몸부림을 치더니 쑥 뒤로 빠진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잘 빠져나오던 배가 흡사 자석에 끌리듯 좌현 선체가 산호초 밭으로 밀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안돼!’ 키를 쓰며 배를 멀어지게 만든 뒤 정확히 양 등주의 한 가운데를 통과했다. 선미가 완전 빠진 걸 확인한 뒤 전속으로 주기 회전수를 올리고 코스를 잡고 캡틴과 하이파이브를 힘차게 나눴다. ‘해냈다!’ 즉시 회사에 보고를 하자 그동안 대단히 수고했다는 답신과 함께 차후 유류와 시간 절감에 신경을 안 써도 좋으니 안전하게 돌아서 다니라고 한다.

 

□ 자료출처 : <월간 海바라기> 2015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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