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해항해 <제1회>

등록일202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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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우의 ‘빙해 항해(Ice Navigation)’는 약 40여 년 전 모 해운회사(대한해운이라 추정됨)의 사보에 소개된 항해 경험담이다. 이 진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해양활동 기록물’이며 동시에 읽는 이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하는 ‘문학작품’이다. 부디 본 작품을 통하여 일반인에게는 해양활동에 관한 폭넓은 관심을, 해양 전문인에게는 빙해항해의 간접경험과 항해자들의 치열한 직무의식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참고로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본문의 전문용어에 대해서는 괄호 속에 약간의 보조설명을 첨기하였고, 맞춤법 또는 어법상 어색한 몇 부분에 대해서는 본문의 주제 전개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약간의 수정이 있었음을 밝혀 둔다.(심호섭, 편집부)▮

 

빙해항해 <제1회>

 

 

누가 나에게 해상생활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을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바닷물이 얼어서 바다 전체가 30cm에서 1m 이상 얼어붙었던 세인트 로렌스 만에서의 항해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때에 승선한 선박은 아제리아 호였다. 44860 총톤, 78571 재화중량톤, 만재흘수 12.63m, 전장 248m, 폭 36.6m이며 엔진 최대마력은 15,000HP(122rpm), 선령 16년 된 광석전용선이었다. 서독의 모 제철회사에 장기 용선이 되어 서독의 웨서포트(Waserport)를 모항으로 캐나다, 노르웨이, 아프리카, 베네주엘라, 호주에서 광석을 운반하고 있었다.

 

세인트 로렌스 만은 북위 49도 51분 , 동경 55도 65분으로 캐나다 동남부에 위치해 있는 오대호의 입구에 있다 . 조물주의 장난인지 아니면 자연의 변덕인지 모르겠지만 세인트 로렌스 만은 유에스 걸프 (US Gulf)와 적도 부근에서 북동쪽으로 노르웨이 북쪽까지 흐르는 난류가 닿을 수 없는 곳이다. 북극과 그린랜드에서 캐나다 동안 쪽으로 흐르는 한류의 영향을 받으므로 여름철에는 산덩어리 같은 많은 빙산이 출몰하고 겨울철에는 바다가 얼어 붙는 지역이다. 세계 각국의 해상보험 회사에서는 12월 21일부터 4월 30일까지 세인트 로렌스는 결빙기간이므로 보험 약관 상 보험 담보구역(I.W.L) 밖으로 선정한 지역이다.

 

나는 이곳을 결빙 시기 중에서도 가장 심한 2월말과 3월말에 만 안에 위치한 포트 카티어(Port Cartier)항에 광석 적재를 위해 항해하였다 . 바다 전체가 두꺼운 얼음으로 빙판이 된 지역을 썰매를 타고 가는 것은 제격이지만 쇄빙선도 아닌 아제리아 호로 항해하기란 무척 어려웠으며 특히 발라스트(ballast) 상태로 항해할 때에는 어려움이 상상을 초월하고 생지옥 같았다.1

 

호주 담피아에서 광석을 만재하고 웨서포트를 향해서 아프리카의 북서단을 지나던 중 1986년 1월 30일경, 용선주로부터 다음 항은 포트 카티어와 웨서포트 간의 광석을 운송하라는 전문을 수신하고부터 선장으로서의 어려움은 시작되었다. 결빙지역의 최초 항해에 대한 책임자로서의 두려움과 번민, 그리고 외로움이 엄습하였다. 나는 선원 생활 15 년 중에서 결빙 지역 항해 경험은 전혀 없었다. 경험담을 들은 적도 없고 상상한 적도 없는 상태였다. 선원들도 모두 나와 같았다 .

 

“쇄빙선이 얼음을 깨면서 선단을 이끌고 항해할 것이다.”, “쇄빙선이 결빙 지역 안에 선박이 통항할 수 있는 항로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라는 등의 억측만 난무할 뿐이었다. 대리점도 아무 경험과 지식이 없으며 외국에서 조언자를 찾기란 불가능하였고 오직 홀로 번민하고 두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해야 했다.

 

2월 10일, 웨서포트를 출항하기 전과 2월 22일 빙해지역에 들어가기 전의 선장의 심정을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빙해지역 항해를 준비하던 시기에는 본선에 비치된 도서 중 ‘ICE’ 자(字 )만 나와도 골라서 읽어보는 실정이었다.

 

세인트 로렌스 만의 상세한 아이스(ice) 상태와 빙해항해에 관한 지식이 수로지 항해안내서 (marine hand boook)에 기록되었으나 모두 영어와 프랑스어로 되어 있었다 . 생소하고 전문적인 용어인 관계로 어린 아이가 말을 배우는 식으로 사전과 씨름을 해야 했다. 웨서포트에 입항해서 대리점을 통하여 오션 루트(ocean route)사에 해당 지역에 대한 상세한 결빙 상태와 루트를 요청하였다.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어봐도 오션 루트 사의 전신문을 보아도 빙해 지역에 대한 개념이 떠오르지 않았고 백 번 들어도 한 번 본 것만 못하다는 속담을 절실히 느끼었다. 오직 두려움만 가중될 뿐이었다.

 

오션 루트 사의 전문에 의하면 캐나다 동부 연안은 결빙으로 항해가 불가능하고, 벨 아이스 에스티알(Belle Isle STR)은 폐쇄되었으며, 남부의 카보트 에스티알(Cabbot STR)을 통해서만 목적지에 항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인트 로렌스 만에서 본선이 항해할 부근에는 바다 전체가 약 70cm에서 30cm의 두께로 결빙되어 있다고 했다 . 이런 상태에서 출항하여 항해를 계속했다.

 

마침 몬트리올에서 캐나다 동부지역의 결빙 상태를 팩스로 송신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목적지 도착 약 5, 6 일 전부터는 매일 기상도를 수신하였다. 목적지로 항해 도중 계속적으로 아이스 정보와 빙해 항해에 관하여 읽고 상상하니 어렴풋이나마 개념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손상을 줄이며 결빙 지역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방법은 본선의 엔진 파워와 선체가 결빙 상태를 이기며 계속적으로 항해하는 것이었다. 선원들에게도 지금까지 읽고 메모한 빙해 지역 항해에 대하여 교육시키고 준비 사항을 지시하였다.

 

배수량 증가를 위한 최대의 발라스팅과 엔진과 각종 기기 장비의 점검과 빙해 지역 항해 중 추진기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러더(ruudder, 키)의 사용법을 여러 번 강조하였다. 발라스트 충수에는 문제점이 있었다. 얼음을 깨기 쉽게 선수의 벌바우스2 바로 위 비교적 날카로운 부분까지, 그리고 선미는 추진기의 (무리한)사용을 예방하기 위해 충분한 흘수로 선수미를 침하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본선은 사이트 탱크 시스템으로 되어 있으므로 발라스트 탱크는 지금까지 탱크의 약 반 정도만 충수하여 운항했던 관계로 탱크 중간 윗부분은 많이 부식되었고, 겨울철 북대서양의 심한 파도에 의한 진동과 요동으로 파공 균열 부분이 많이 생겨 있었다. 특히 4번 탱크의 5번 연료유 탱크와 인접된 격벽의 중간 부분에 파공 균열 부분이 생겨서 발라스트를 유효 적절하게 충수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약간 무리하여 평소 발라스트 항해 때보다 흘수 약 60cm를 침하시킨 선수미 흘수 6.01 m와 8.82m로 조정해야 했다.

 

빙해지역에 접근하였다는 것은 해수 온도의 변화로 알 수 있었다. 북대서양 횡단 시 보통 영상 15도 내외를 유지하던 해수가 캐나다 동안 약 250 마일에 접근하니 갑자기 영상 4.5도로 떨어지고 빙해 지역 가까이에서는 0도까지 떨어지는 것이었다. 캐나다 동부 항해통제국(ECAREG)에 대한 보고는 빙해 항해의 정보 획득과 사전 준비를 위해 평상시 보다 30시간 전에 보고하여 아이스 상태와 루트를 요청하였다. 뉴파운드랜드 (Newfoundland) 남부에 도착하니 오션 루트 사에서의 권고 정보는 중지되고 에카레그(ECAREG)의 권고 침로와 결빙 상태에 관한 전보를 수신하며, 매일 위치와 속력과 침로와 조우하는 아이스 상태를 보고하라는 전문을 받았다. 망망대해가 아니라 빙산 대해가 기다리고 있다는 막막함이 느껴졌다 . 어둠을 헤치는 전사와 같이 빙판을 돌파해야 할 시맨(seaman)이 된 것이다.

 

■ 글, 조성우(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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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특히 발라스트(ballast) 상태로 항해할 때에는 어려움이 상상을 초월하고 생지옥 같았다.” : 화물을 싣지 않은 공선항해를 할 때에는 선체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발라스트(평형수, 일반적으로 해수이다) 탱크에 적정량의 발라스트를 채우고 항해한다. 그렇지만 이 역시도 화물을 만재하고 항해하는 것보다 무게가 덜 나가기 때문에 얼음을 깨면서 항진해야 하는 빙해항해에서는 전적으로 불리하다.

 

<주2> 벌바우스 바우(bulbous bow, 구상선수球狀船首) : 선박에서 조파저항을 줄이기 위하여 수면 아래 선수 하단부가 둥근 공처럼 부풀어 오른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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