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해항해 <제2회>

등록일2021-03-26

조회수623

 

드디어 빙해지역을 항해해야 하는 2월 22일의 아침이 밝아왔다. 아제리아호는 에카레그(ECAREG)의 권고침로를 따라 북서 방향으로 세인트 로렌스 만으로 항진하고 있었다 . 진입 시간은 12시로 추정되었다 . 카보트 에스티알은 가까워지자 해수 온도는  0도 정도로 가까워졌고, 기상은 구름은 끼었으나 시정은 좋은 편이었다. 풍력은 약 10노트로 해면 상태는 '스무스(smooth)'하고, 대기 온도는 영하 10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세인트 로렌스 만 입구까지는 아이스 팩과 조우하지 않았다.

 

12시가 가까워질 수록 미지에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커갔고, 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무관심하던 나는 하느님을 찾고 매달리며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
 
가장 최근의 아이스 팩스(fax)와 에카레그(ECAREG) 의 전문에는 카보트 에스티알에서 아니코스티 중간까지
"Very close/concentrate(밀도 9/10~10,10/10)
Grey white, white, first year(얼음두께 15 센티미터에서 30 센티미터, 30 센티미터에서 70센티미터, 그 이상 ) ice pack 상태"
라 하여 약 150에서 200마일 거리의 항해가 가장 문제가 되었다. 초조감이 엄습하였다 .
 
세인트 로렌스 만의 입구인 카보트 에스티알을 통과하면서 바다 전체가 완전히 흰 색깔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기상은 돌변하여 눈발이 내리고 시정은 2마일 이내로 불량해지고, 풍속은 약 20노트로 증가하고, 대기 온도는 영하 15도로 갑자기 내려가며 , 해수 온도는 0도에서 영하 1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앞에는 온 천지가 흰 색깔뿐이다. 빙해 지역이 서서히 아제리아호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선원들은 당직자도 아닌데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점심 시간도 미룬 채 갑판상에 나와 있었다. 선체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 'full ahead'(전속전진)에서 'half/slow ahead'(반속/저속 전진)로 감속하여 흰 색의 세계로 들어갔다 .


거대한 아이스 팩이 육중한 본선의 선체에 의해 여지없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깨어지고, 아제리아호 뒤에는 흰 바탕의 빙해 속에 까만 자신의 항적을 남겨 놓으면서 앞으로 항진하고 있었다.

 

 “별것이 아니구나! 선체의 페인트만 조금 벗겨지는 정도겠어.”
안도감이 생기며 빙해 지역 항해법에 따라 다시 'full ahead'로 증속하고 식당에 내려왔다 .

 

점심 식사 후 13시 30분경에 선교에 올라가 보니 디지털로 표시되는 본선의 속력이 평균 12.5노트에서 10노트로 떨어져 있었다. 시정은 눈보라로 인해 1마일 이내로 나빠졌으며 선교 앞의 창문은 외기 온도와 실내 온도의 차이로 계속 얼어붙어 앞을 볼 수가 없다. 견시를 보강하고 선교의 양쪽 문은 열어 놓게 하고, 앞쪽의 창문은 삼각자로 얼음을 제거시키면서 아이스의 상태를 확인했다 .

 

그러나 아이스 상태의 확인은 불가능하였다. 앞쪽에는 온 천지가 흰 색깔뿐으로 인간의 눈으로 얼음의 두께를 투시할 수는 없었다. 오직 디지털의 속력 숫자와 본선이 지나간 선미 부분의 깨어진 얼음 상태, 그리고 본선의 항적을 그리는 검은 부분의 길이가 길고 짧음에 따라 아이스의 상태를 판단할뿐이었다 .
 
아이스 팩의 두께와 밀도에 따라 아제리아호의 속력은 정상적이라면 12.5노트가 나가야 하나 계속적으로 떨어져 8.9노트를 표시하며 선미 부분의 검은 항적 길이는 계속 짧아지고 있었다 . 초기의 안도감은 두려움과 초조감으로 바뀌었다 .
 
15시경부터는 시간당 한 두 차례 심한 아이스 팩을 조우하여 선체가 진동하고 속력은 얼음압력(ice pressure)의 강력한 저항으로 갑자기 2, 3노트까지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러더(키)는 아이스 팩의 상태에 따라 사용 불가 상태가 되고 선수의 방향은 ‘Z’자로 제멋대로 움직였다 .

 

이러한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회수가 증가하였고 아제리아호 속력도 계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선교에서 깨어진 얼음의 두께를 보니 약 50센티미터가 되었다. 러더를 수동으로 잡고 10도 이상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시하고, 속력 지시기의 숫자의 감소 현상이 생기면 항상 러더를 'mid-ship'(키 중앙)으로 사용하도록 지시하고 감독하였다. 추진기의 손상 예방과 속력의 감소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
 
얼음의 잔치와 전쟁은 선교만 벌어진 것이 아니고 기관실에서도 벌어졌다 . 엔진과 각종 기기의 냉각수 계통의 흡입구 스트레이너가 얼음 조각들로 막혀 스트레이너 청소에 정신이 없었다. 엔진이 정지되면 선박이 정지되고, 선박이 얼음 속에 꽁꽁 얼어붙어 선박은 포기해야 하고 선원들의 생명까지도 위험하다 .

 

선교에서는 엔진이 스톱되지 않게 해 달라고 초조하게 기도하는 형국이고, 기관실에서는 기관부 전원이 필사적으로 스트레이너 청소를 하고, 비상응급 조치로 'APT(선미에 있는 탱크임)' 발라스트를 냉각수로 이용하는 라인 시스템을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모든 선원들이 같이 살기 위해서 어려운 상황에도 불평없이 일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아이스 팩의 상태가 점점 심해지면서 어둠이 다가왔다. 기온은 더욱 떨어져 영하 20도를 표시하며 풍력도 강해져서 평균 풍속이 25노트, 순간 최대 풍속은 30에서 35노트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얼음압력에 의한 본선의 속력 감소 현상과 선박이 떨고 요동하는 현상이 증가하였다 .
 
20시경에는 아제리아호의 속력이 심한 아이스 팩의 저항으로 5노트 내외로 떨어졌다. 더욱 큰 아이스 팩과 조우할 때에는 선체가 떨며 디지털의 속력 표시 숫자가 1노트까지 떨어지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선체가 떨고 신음 소리를 낼 때에 선장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속력이 1노트 이내로 떨어질 때에는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으며, 키(ruddder)가 사용 불능 상태가 되어 선수가 좌우로 제멋대로 움직일 때는 나의 온 몸은 마비 상태와 같았다 .

 

■ 글, 조성우(선장)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