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동시 1편 - 선용의 '아버지의 바다에는'

등록일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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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바다에는

 

 

덕지덕지 달라붙은 잠을

간신히 떼어놓고

어제 쳐놓은 그물을 걷으러

바다로 나가시는 아버지

 

무사히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졸린 인사

한참 꿈속을 거닐고 있는

아이들이 밟히지만

어둠을 털고 선착장으로 가면

 

투들투들 투투

투들투들 투투투

 

선잠을 깨운다고

배도 투정을 한다

 

한 시간 넘게 달려간 바다는

반갑다는 인사도 없이

태평스레 누워 있고

부표 끝 그물은

오늘도 가볍다

 

모두 용케도 빠져나갔군!

 

천쪽 만쪽으로 몸을 나누어

촘촘한 그물 사이로

빠져 나간 아침해가

어느새 하늘 한 뼘 올라가

웃고 있다

 

오늘도 저걸 놓쳤군!

 

껄껄 웃으시는 아버지

너털웃음이

아침해보다 눈부신다.

 

□ 선용, 시인

□작품출전 :《해양과 문학 21호》2017년

 

 

작품감상

선용 시인의 해양동시는 일상생활에서부터 출발한다. 본 작품에서도 시인은 어부가족의 삶을 제재로 삼고 있다. 누구나에게 삶은 그렇듯 이 어부에게도 그것은 언제나 불만스럽지만, 그렇지만 삶은 언제라도 행복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굳이 그런 가치 부여를 구분하지 않더라도 시의 행간은 어부의 아침 출어와 그 가족의 아침 모습이 그림처럼 전개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지금 작은 어촌의 물가에 와 있게 한다. 시의 첫 연이 재미있게 서술되고 있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잠’과 ‘어제 쳐놓은 그물’. 아침 물가로 나가야 하는 어부에게 ‘잠’은 떼어놓아야 하는 대상이고 그물은 잡아야 하는 물고기의 주체이다. 그럼으로써 놓고 떼는 대상의 주체와 객체는 읽어지면서 혼재되고, 거기에 어떤 궁금증과 기다림이 남는다. 선잠을 깬 건 사람뿐만 아니라 기계도 마찬가지이다. 투들투들 투투, 소리를 남기며 육지는 멀어지고. 부표 끝의 그물에 걸려야 할 고기는 없고. 어느새 아침해는 떠, 올려지는 그물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고개 들어 하늘에 뜬 밝은 해를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웃는 것은 어부의 마음인가, 바다의 마음인가?

 

글, 심호섭(홈페이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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