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창 신성모의 영국생활 - 런던 항해대학의 실체를 밝히다

등록일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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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창 신성모의 영국생활 - 런던 항해대학의 실체를 밝히다

 

 

국토해양부와 한국해기사협회가 우리나라 해양발전에 끼친 공적으로 2009년에 소창(小滄) 신성모(申性模, 1891~1960)를 부산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헌정하고 흉상을 제막했다는 기사를 뒤늦게 접했다. 영남 지역 지사들에 관심을 가지고 특히 신성모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후학으로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인물을 평가할 때 공과를 함께 보아야 하는데, 신성모는 오로지 '과'만 부각되고 고향에서조차 외면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묻힌 분이다. 1891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한 신성모는 1910년 보성법률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1913년 중국 상하이 우쑹(吳淞)상선학교(현 상하이 해사대학) 항해과를 다니다가 당시 광뚱수사제독을 거쳐 해군대신 겸 교장직에 있던 사첸빙(薩鎭氷, 1859~1952)의 추천으로 난징해군사관학교로 전학하여 무선전신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중국 군함의 승무원이 되었고, 사첸빙의 총애를 받으며 복무하다가 베이징으로 가서 다시 무선전신학교에서 공부한 뒤 우쑹, 총밍다오 등지 군사시설인 무선전신국에서 근무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 해군 창설의 큰 뜻을 품고 영국 유학길에 오르고자 1921년에 일시 귀국하였다가 1922년 런던 항해대학에 입학했다. 이 '항해대학에 대해 근대 잡지에서는 '영국 최고의 상선학교(Navigation College)' 내지 '런던 프리마스 항해학교' 등으로 표현돼 있다. 언론에서 신성모의 이력을 소개할 때 이를 근거로 플리머스 해양대학(Plymouth Marine College)에 유학했었다고 아무런 의심 없이 적는다. 그런데 플리머스는 영국 서남단에 위치하며 런던에서 340km나 떨어진 곳이다.

신성모와 동향인인 이극로의 자서전 『고투사십년』(1947)에는 이 󰡐항해대학󰡑 위치에 대해 소략하게나마 언급돼 있다.

 

一九二五(*二七의 오기-필자 주)年 여름에 내가 倫敦에서 처음 머물던 집은 航海大學 안에 있는 寄宿舍인데 이 學校는 倫敦 東部에 있어 그 이웃은 템스江을 사이에 두고 저편에는 그리뉘치 天文臺가 있고 이편에는 印度를 삼키어 먹은 東 印度會社가 있다. 여러 이 되는 汽船이 오고가는 깊은 템스江 밑을 뚫고 나간 큰 바스 길은 우리가 날마다 그리뉘치公園에 散步 다니는 길이다. 이 公園 옆에는 그리뉘치 天文臺가 있고이 天文臺 앞에는 地球 經度와 零點線을 새긴 돌바닥이 있고 그 옆으로 조금 나오면 天文臺의 正門이 있는데 그 옆 담벽에는 세계 航海의 標準 時計를 박아 두었다.

 

1927년 신성모는 이극로의 독일 베를린 대학(현 훔볼트 대학) 박사학위 수여를 축하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6월 6일에 이극로를 데리고 독일 루트비히스하펜(Ludwigshafen)-프랑스 메쓰(Metz)-베르댕(Verdun)-파리를 여행하고서 6월 15일 영국 항해대학 기숙사로 돌아왔다.

필자는 80년 전 신성모의 행적을 그대로 좇아 2007년 9월 24일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시를 답사한 뒤 메쓰-베르댕-파리를 차례로 둘러보고서 국제고속열차(유로스타)를 타고 9월 28일 영국 런던에 도착하였다.

프랑스․독일과 다른 기후를 체감하며 내리쏟아지는 빗줄기에 잠시 지체할 틈도 없이 항해대학의 단서가 있을 법한 런던 교외의 템즈강변으로 갔다. 비바람에 보행이 곤란하지만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그리니치 공원 언덕을 가로 질러 천문대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런 단서를 얻지 못한 채 인근에 있는 구 왕립 해군대학(Old Royal Naval College)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리상 이 학교가 '항해대학'일 듯 싶지만 잠정만 하고 확신이 서지 않은 채 숙소로 돌아왔다.

29일에는 영국을 떠나 다시 독일에 와서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 재학 중인 선배의 도움을 받아 10월 1일 국립 프로이센 문화예술문서보관소를 찾았다. 실로 감격스런 순간이다. 동양 관계 문서철 더미 속에서 뜻밖에 이극로가 1927년 6월 26일자로 런던 항해대학에서 독일로 보낸 편지 원본을 발견한 것이다.

 

󰡒…저는 현재 런던 항해대학에 재학 중인 제 친구(*신성모-필자 주) 집에서 기거하고 있고, 반년 더 런던에 머무르려 합니다. Kolu Li(*이극로의 독일명-필자 주). 영국 런던 E.14, 커머셜로드680, 킹에드 워드7세 항해대학에서󰡓

 

신성모가 다녔던 '항해대학'이란 구 왕립 해군대학도, 플리머스도 아니라, '킹에드워드7세 항해대학(King Edward Ⅶ Nautical College)'이었다. 이 학교는 1902년에 설립되었고 1969년 존 카스 경 대학(Sir John Cass College)과 합병한 뒤 몇 차례 합병을 더 거쳐 오늘날에 이르러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교가 되었다. 커머셜로드에 있던 붉은 벽돌조 건물은 비록 낡았지만 지금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근대 잡지와 신문, 일제측 첩보에 드러난 신성모에 관한 몇 편 안되는 유학 시절 기록은 산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기나 내용상에 서로 불일치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릇된 정보가 계속 인용될 우려가 있는 실정이다. 한국해양사에서 중요한 신성모의 자취를 확인하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무쪼록 그의 애국 행적이 런던 항해대학을 위시하여 실증의 바탕 위에서 더 밝혀져 바르게 조명되기를 바란다.

 

󰡒나로서는 큰 기쁨이 있소. 선원의 자미란 항구에 하륙할 때에 있다 하지만은 다시 한편으로는 항구를 떠나 출항할 때가 더 유쾌합니다. 내가 숙원의 목적을 달하여 영국 상선의 한 사람으로 대서양을 건널 때는 실로 감개무량하였소. 적으나마 개선장군 같은 감격을 가졌지요.󰡓

- 신성모, 대서양 횡단 첫 항해 소감

 

조 준 희 | 국학인물연구소 소장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12년 3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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