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륙교에서

등록일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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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륙교에서

 

 

육지 와 섬을 잊는 다리가 가설되었다. 해송이 무성한 작은 섬은 아름드리 교각이 힘겨워 보인다. 푸른 신발을 신은 둔중한 코끼리를 연상케 하는 연육교다. 코끼리가 섬을 징검다리 삼아 육지로 다가서는 것 같다. 경남 사천시와 남해 창선도를 잇는 연육교, '삼천포 창선 대교'라 명명하였다. 어느새 지도에서 슬그머니 사라진 이름 삼천포. 그 삼천포란 이름이 아쉬웠는데 대교가 그 명맥을 이어주어 고맙다.

나는 삼천포란 이름을 마음으로 부르며 연육교 중간쯤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바다는 비닐장판을 깔아놓은 듯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짭조름한 해풍에 파래 냄새와 비릿한 미역냄새도 섞여 상큼하기만 하다.

볼을 스치는 햇살과 바람이 유달리 감미로운 것은 다리위에서 보면 동이 트는 쪽에 내 유년의 그리움이 섬처럼 동동 떠 있기 때문이다. 이 햇볕과 바람과 바다빛깔은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를 키운 그리움의 색이다. 그 그리움의 치맛자락 속에 세월이 묻혀 있으니 모든 것이 향기로울 수밖에. 연육교 아래로 출렁이는 바닷물은 여인 삼대를 잇는 세월의 빛깔인 셈이다.

연육교에 오르기 전, 나는 뱃머리에서 서성거리던 옛 친구를 떠 올렸다. 섬에 집이 있던 친구들은 학교를 빨리 오거나 갈 수 없었다. 정기 여객선도 없이 통통배를 타고 다녔다. 조그만 바람에도 가랑잎 같은 신세가 되어야 하니 땅을 밟으며 다니는 우리가 부러웠을 것이다. 샛바람이나 갈바람이 불어 바다가 심상치 않으면 교실마다 전달이 왔다. 섬에 사는 아이들은 귀가를 서두르라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교실을 빠져 나갈 때까지 교실은 파도처럼 한동안 술렁거렸다. 그 술렁거림을 잠재운 것은 유리창을 뒤흔드는 비 바람소리였다. 이제는 공부를 하다가 책가방을 서둘러 챙겨야 하는 일은 없어 다행이겠다.

연육교 주위에는 이마를 맞댄 섬들이 무수하다 해서 다도해라 부른다. 유인도이거나 무인도인 섬들은 한 결 같이 아름다워 한려수도라 이름 하였다. 그렇게 흩어진 섬들은 먼 바다에서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온 바람을 잠재우는 고마운 바람막이다.

잔잔하던 바다에 노을이 지는 것을 울음 타는 가을 강이라고 박재삼 시인은 읊었다. 시인은 끊임없이 일렁이는 물결을 두고 강 같은 바다를 보며 바람은 천 년 전에 하던 장난을 지금도 하고 있노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내가 이곳 여중학교에 다닐 때, 교무실에만 들어서면 어린 박재삼이 사환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환영으로 자주 보았다. 부황으로 누렇게 뜬 얼굴에 체구가 유독 작았고 숫기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눈빛만은 초롱초롱하게 살아 있었다. 그는 가난에 찌든 작은 섬이었다. 누구 한사람 관심가지고 봐주지 않는 고독한 섬이었다. 섬은 홀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고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를 헤아려야 했다. 은사가 시인의 재능을 발견하고 튼튼한 다리기둥을 놓기 전 그는 한 갓 무인도에 지나지 않았다.

연육교에 서 있으면 영웅호걸의 힘찬 기백도 느껴진다. 늠름한 기상과 번득이는 눈빛으로 졸개를 거느린 충무공의 호령이 바다위에 서려 있다. 먼저 선두로 나서다 적을 따돌리기 위해 은신처였던 굴항이 소용돌이처럼 둘러 처져 있다. 그 기상이 사철 푸르른 나무로 역사의 숨은 증거가 되어 갯가를 지키고 있다.

다리가 놓이기 전, 도선으로 차와 사람들을 실어다 날랐다. 차를 싣는 것은 한정이 되어있었다. 배를 기다리는 시간과 건너는 시간이 많이 소비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나는 뱃전에 아쉬움만 남긴 채 부두에 발을 묶어야 했고 더러 뒤돌아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진주로 통학을 할 때만 해도 발이 여럿달린 지네 같은 기차가 있었다. 기차를 타는 사람이 줄어들고 물동량이 적어지면서 기차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탈바꿈되고 말았다.

섬사람들의 바다는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다와는 사뭇 다르다. 도시 사람들이 바다를 두고 낭만이니 추억이니 하며 감상적으로 생각한다면 섬사람들은 바다가 삶의 터전이며 생존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터전이나 생존의 현장에는 낭만이니 그리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목울대의 힘줄을 푸르게 밀어 올리지 않으면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물결은 찰랑거렸다. 자칫 거칠어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만큼 순박한 사람도 없을 듯하다. 삶을 강인하게 일구어 온 갯사람들. 겉은 울퉁불퉁 투박하지만 속은 야들야들하면서 풍미가 좋은 우렁쉥이 같다. 자연에 물러서지도 않고 맞서지도 않으며 살아가는 삼천포대교 주위의 사람들이다.

힘겹게 노를 젓던 나룻배도 사라졌고 통통거리던 연락선도 자취를 감추었다. 만선을 따라 다니던 갈매기는 질주하는 자동차와 매연에 놀라 모습을 숨기고 말았다. 섬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밀스런 몸짓으로 남아있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바닷물은 속절없이 연육교 밑으로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며 오르내린다. 관광객들이 비늘처럼 흘리고 간 쓰레기 더미를 보면서 나는 왠지 통통배 소리가 그리워진다.

 

박 능 숙Ⅰ 수필가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12년 4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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