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이 나를 깨운다

등록일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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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이 나를 깨운다

-요르단 여행기 : ‘사해(Dead Sea)’

김희선 ㅣ 여행칼럼니스트

 

 

다음 목적지가 사해 맞아?

응.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네.

정말 그럴까?

직접 실험해 보자고!

 

우리의 출발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사해는 내 기억 속에 초호화판 휴양지 중의 하나로 꼽히던 곳이었다. 어릴 적 어디에서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내 머리 속에 사해의 이미지로 유일하게 등록되어있는 사진이 있다. 강렬한 햇살 아래 한눈에 보아도 부유층으로 보이는 중년 부인이 금발의 머리칼을 풍성하게 틀어 올리고서는 얼굴을 반쯤 가릴 정도로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채로 여유롭게 잡지를 읽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화려함에도 눈이 번쩍 뜨였지만 ‘설마 이렇게 사람이 뜨겠어?’ 하는 의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 기억 속의 사해를 직접 눈으로 본다는 사실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사해는 정말 멋지고 화려할까? 소금의 농도가 얼마나 높길래 사람이 둥둥 뜰 수 있는 걸까?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바닷물 맛은 어떨까? 우리들의 작은 렌터카는 초등학생 수준의 궁금증들을 가득 싣고서 사해를 향해 달려갔다.

 

이 사해는, 그 사해가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소풍 가듯이 들뜬 마음으로 사해로 가는 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 혹시 길을 잘 못 찾은 건 아닌지 몇 번이나 지도를 다시 펼쳤다.

낮게 깔려있는 짙은 먹구름을 배경으로 펼쳐진 사막 산은 날씨 탓인지 한없이 황량해 보였고, 유명한 관광지로 가는 길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적이 없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해, 死海, Dead Sea! 죽음의 느낌이 그대로 밀려왔다고나 할까? 금방이라도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려 성스러운 세계에 감히 발을 디디는 인간에게 경고를 던질 것 같았고, 지하세계를 지키는 하데스가 어디선가 그림자를 드러낼 것 같았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저 멀리 손을 뻗어도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초라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채우더니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던 두근거림은 어느새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사해는 염분 농도가 워낙 높아서 생물이 살 수 없으며 해수면보다 400m나 낮다고 했다.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 하니, 이는 곧 지구의 중심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험가가 된 느낌도 들었다. 금발의 부유층 부인이 둥둥 떠서 잡지를 읽는 사진은 내 기억의 공간에서 가치를 잃었고 사해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기 시작하였다.

 

사해는 광활한 바다였다.

사해는 지도에서 보았을 때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선 중앙쯤에 파란 공간으로 표시된 호수였다. 수백만 년 전 지중해의 바닷물이 유입된 후 갇혀버린, 바닷물로 채워진 호수다. 하지만, 사해를 두 눈으로 직접 본 순간 광활한 바다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지도에 따르면 맞은편에 보이는 산의 굴곡들은 이스라엘에 속해 있었다. 다른 나라가 눈앞에 보인다는 건 아무리 보아도 신기하고 적응이 안 되었다.

 

사해는 평범한 바다였다.

사해 주변에서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푼 다음 수영복을 챙겨 들고 나올 계획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여행 책자에 안내된 숙소는 아주 비싼 호텔 하나밖에 없었지만, 호텔 주변에 당연히 저렴한 숙소가 있으리라 예상하고 숙소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사해를 찾았다. 그러나 책자에서 안내된 호텔이 인근에서 유일한 호텔이었다. 웬만하면 묵었을 터인데 우리가 감히 머무를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호텔에 입장료를 내면 호텔 전용 해변을 즐길 수 있고 호텔의 사우나 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 또한 비쌌다.

사해 주변에서 묵는 것을 포기한 순간 해가 떠 있는 동안에 빨리 사해 체험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호텔 옆으로 해변 입구가 보였다. 1인당 2만 5천 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해변 입구였다. 해변 입장료? 부산 해운대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입장료를 내고 사해 해변에 발을 디뎠다.

서둘러 해변에 입장을 하고 바다 체험을 시작하려는데, 이런! 탈의 시설이나 샤워 시설이 엉망이었다. 문고리는 잘 걸리지도 않았고 물은 겨우 졸졸 흐르는 수준이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불평할 새도 없이 바다로 향했다.

바다로 향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사해 지역에 들어서며 느꼈던 경외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놀이기구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이 엉뚱해 보여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마침 해변으로 들어오는 한 가족이 있었는데 커다란 이불과 배게까지 들고 있었다. 이곳 해변 모래사장에서 1박을 할 거라고 했다. 곧 텐트가 세워지려나 했는데, 해변에 세워져 있는 작은 가림막 아래 자리를 잡는 것으로 끝이 났다. 사해 해변에서 밤에 별을 보며 잠을 잔다? 상상으로는 낭만적인 그림이 그려지겠지만 실제로 보니 춥고 힘들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사해 해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체 내가 알고 있던 고급 휴양지 사해는 어디란 말인가? 알고 봤더니 내 기억에 있던 고급스러운 사해는 이스라엘 쪽에서 즐기는 사해였다. 역시 국력은 힘이다. 부산의 화려한 해운대와 광안리가 자랑스럽게 다가왔다.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최고급 풀빌라만 있을 것 같은 발리에 가면 에메랄드 빛 바다만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내가 여행한 발리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라본 거친 해변이었다. 요르단 쪽의 사해를 보며 역시나 내 두 발로 직접 가 보지 않고,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라 다시금 느꼈다.

 

사해는 즐거운 바다였다.

사해에 드디어 발을 담갔다. 해변에는 워낙 염분 농도가 강하니 먹거나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현지 청년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다지 조심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마치 부산 해운대 바다에서 놀고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사해 바다를 직접 체험해 보는 순간이 다가왔다. 얼굴을 위로하고 수면 위에 누웠다. 엉덩이를 슬쩍 밀어 올려주는 느낌이 들면서 온몸이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고개를 들어도 물속으로 빠지지 않고 손과 발을 모두 올릴 수 있었다.

즐거운 유영이 시작되었고 실제로 바다에 누워 책을 읽는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실험은 성공하였으나, 책을 읽고 있을 정도로 여유가 없어서 실제 책 읽기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사해는 쓰디 쓴 바다였다.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사해 바닷물의 맛은 어떨까? 맛을 한 번 볼까 하는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아무리 소금기가 많다한들 그저 짠 물이겠지 하며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맛을 보았다. 으악! 온몸을 비틀 정도로 쓴 맛이 혀에 퍼졌다.

무조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내 표정과 몸짓으로 주변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소금이라기보다, 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생물이 살 수 없는, 사해, 死海, Dead Sea! 죽음의 바다라는 이름이 실감 났다.

 

사해는 소금결 바다였다.

Q) 내 몸이 둥둥 떠오를까?

A) 떠오름

Q)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A) 읽을 수 있음

Q) 바닷물 맛은 어떨까?

A) 쓴맛

 

출발점에서 떠올렸던 궁금증들을 해결하고 나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었다. 사해 해변가 곳곳에 결들이 있었는데 멀리에서 보면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파도의 흔적이 고스란히 결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소금이 굳어 딱딱한 층을 이루고 있었다. 파도와 시간의 결정체들이었다.

 

사해는 꽃밭이었다.

어떤 친구는 세계 곳곳을 TV에서 다 보여주는데 귀찮고 힘들게 해외여행을 왜 가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직접 발을 디뎠을 때만 내게만 보이는 것이 있고 직접 손으로 만졌을 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미국 서부의 그랜드 캐년을 갔을 때이다. 백과사전이나 교과서는 물론이고 잡지, TV에서 자주 보았던 터라 마치 가보았던 곳을 가는 것처럼 큰 기대없이 출발하였다. 그런데, 그랜드 캐년을 본 순간! 한참 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광활함은 물론이요 순간 밀려든 고요함에 숨소리조차도 멈추었다. ‘이 광활함과 고요함을 작은 카메라가 어찌 담을 수 있을까?’ 카메라를 꺼두고 잠시 깊은 명상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그랜드 캐년에는 카메라가 담지 못할 정도로 광활한 아름다움이 있었다면, 사해에는 카메라가 놓치기 쉬울 정도로 작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해변가에 가까이 다가가니 산호초가 떠내려 온 듯 작은 덩어리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돌 위에 송알송알 소금 알이 맺혀 있었다. 사해에서 새롭게 눈을 돌려 보니 어느새 꽃밭, 소금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작은 알갱이들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들과 산의 작은 풀꽃들이 생각났다. 첫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꽃들이지만 보면 볼수록 더 크게 보이는 꽃들처럼, 첫 눈에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밋밋한 알갱이들이지만 보면 볼수록 빛나는 진주알처럼 해변을 채우고 있었다.

이 알갱이가 맺히기까지 수억만번의 파도가 오가고 바람이 불었을 터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에 외롭게 갇혀버린 어느 바다, 대양으로 나아가지 못한 바다의 눈물은 아닐까? 알갱이 하나에 외로움, 알갱이 둘에 그리움......

알갱이들의 속삭임을 뒤로 한 채 밤을 보낼 숙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사해의 눈물이 진주처럼 빛납니다.

수만 년 전에 갇혀버린

사해의 슬픈 비밀을 간직하고 있겠지요?

소금 꽃밭의 깊은 속삭임이

사해를 잊지 못하게 합니다.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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