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미드웨이

등록일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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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미드웨이

이윤길ㅣ소설가

 

 

1.

 

“쯔보다이는 타이밍이야.”

그물에 붙은 그라운드가 해산 봉우리를 넘는 중이다. 해저바닥을 흐르는 북적도해류에 압도당해서 망고는 10미터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루그물로 들어가는 기록은 벌써 1분을 넘기고 있었다. 복방돛돔 중에서 사자구라고 부르는 틀림없는 쯔보다이였다. 어림잡아도 2백상자가 넘었다.

“준비해라.”

어군탐지기에 나타나는 해저 수심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었다. 타이밍을 놓치면 대형의 그물 사고로 이어질 수가 있다. 더 이상 경사면의 예망은 무리였다. 수심이 안정될 때까지 그물을 해저바닥에서 띄워 충돌을 피해야 했다. 쯔보다이조업은 트롤 윈치만 조정하는 수혁에겐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는 단순노동에 불과했다. 그러나 선장의 긴장감에 전염 당한 듯, 레버를 움켜진 손바닥에 땀이 고였다. 수혁은 심호흡을 크게 내뱉었다.

“50미터, 감아”

드디어 선장이 소리쳤다.

“50미터.”

수혁은 선장의 지시를 큰소리로 복창하며 트롤 윈치 레버를 힘껏 당겼다. 곧이어 굉음을 내며 트롤 윈치가 돌아갔다. 트롤 윈치의 회전으로 브리지 계기들이 덜덜거리며 소리를 냈다. 수혁은 트롤 윈치 진동이 해저에서 유영하는 물고기의 정수리를 난타처럼 두들기고, 정수리를 타격당한 물고기를 그물 안으로 넣기 위해서 배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쯔보다이는 타이밍이야.”

수혁을 힐끗 쳐다보더니 선장은 다시 중얼거렸다. 한껏 자신감이 충만한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장에 도착하고도 지금까지 어획이 신통치 않았던 탓이다. 어창에 적재한 것이라곤 빗금눈돔과 한벌홍감펭을 모두 합쳐도 1,000상자 밖에 되지 않았다. 네트로 18.5킬로그램 한 상자에 20만원을 웃도는 쯔보다이를 잡아야한다. 그런데 쯔보다이는 그저 몇 상자에 불과했다.

선장이 십년 동안이나 출어한 미드웨이 해산은 북태평양 환류역에 속하는 북태평양 중부 공해어장이다. 캄차카 반도를 따라 남하하는 저온, 저염의 오야시오 해류와 북상하는 고염, 고온의 쿠로시오 속류가 충돌하는 곳이기도 했다. 주요 어종으로는 북방돛돔과 금눈돔류, 한벌홍감펭이 서식했다. 미드웨이 해산조업을 개척한 곳은 러시아였다. 그다음이 일본이고 한국은 2004년에 시험조업을 마치고 다음해부터 상업조업을 시작했다.

선장은 시험 조업부터 참여한 미드웨이 해산의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어기를 빠르게 잡은 이유도 있지만 선장은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렸다. 그게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선장의 마음가짐이다. 외롭고 고통스런 삶이지만 뱃사람다운 생각이었다.

사실 제99태평양은 2월말에 부산항을 출항했다. 전년도보다 보름이나 이른 출항이다. 베링에서 명태조업을 끝내고 귀항한지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온몸 곳곳에 박혀있는 파도조각의 날카로움조차 사라지지도 않는 짧은 정박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고기를 쫓는 뱃사람이라면 언제 어느 때라도 출항이 결정되면 바다로 나서야했다. 바다로 나가기 싫으면 배를 내려야한다. 뱃사람을 자부하는 선장에겐 그건, 자살하라는 소리와 같았다.

조금 전만해도 캄캄하던 수평선이 뚜렷해지며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대하는 일출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냈다. 또 한편으로는 자연의 위대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특히 슈퍼 엘니뇨라는 올해는 이상기후 탓에 박명의 색감이 더욱 붉고 선명했다.

와프를 감는 속력에 맞추어 그라운드가 해저바닥과 충돌하는 까닭에 트롤 윈치가 때때로 덜커덩거렸다. 그로인해 선체마저 휘청거렸다. 수혁은 트롤 윈치 조정 패널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목덜미에서 자신도 모르게 땀이 솟았다. 움직이지도 않은 발바닥마저 욱신거렸다.

무슨 까닭인지 박명이 되면 흩어져있던 쯔보다이 개체가 군집을 형성했다. 선장이 타이밍이라고 계속해서 읊조리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얼마야?”

선장이 수심을 읽으라고 낮고 굵은 목소리로 다그쳤다. 그때서야 수혁은‘아차’했다. 톱로라와 와프 쳐다보기에 몰두했던 탓에 수심 읽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지금처럼 저질이 불량한 해산 작업을 할 때는 선장의 집중력을 놓이기 위해서 수심을 계속해서 알려주어야 했다.

“320미터입니다.”

어느새 수심이 515미터에서 320미터까지 낮아졌다.

“300미터입니다.”

수혁의 잽싼 복창이 끝나기도 전 해저로부터 폭죽처럼 솟구치며 낮아지던 수심이 멈추었다. 그러면서 어군탐지기 모니터 화면의 상단과 293미터 간격으로 수평을 이루었다. 트롤 윈치조정과 수심 읽기로 분주하던 브지리에 순간적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해저 바닥은 융기와 침강을 연속하며 요철을 그려냈다. 그리고 어군탐지기의 푸른 바탕색을 배경으로 붉게 덩어리를 이룬 기록들이 요철 주변에 붙어있었다. 수혁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들끓었다.

“쯔보다이는 타이밍이야.”

수혁이 해산 봉우리에 붙어있는 기록을 확인하자 선장은 수혁의 마음을 읽은 듯 자신도 모르게 웅얼거렸다. 네트레코더에는 기록이 끊이지 않고 자루그물로 빨려들고 있었다.

해저의 돌출된 부분에 붙어서 붉게 나타나는 것이 군집을 이룬 찌보다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틀림없이 해저 바닥에서 약간 부상해서 붉게 보이는 것은 민달고기가 돔발상어이고 중층에 나타나는 붉고 푸른 띠는, 어군의 밀도로 보아 멸치나 샛비늘치의 치어 등 소형 부어류였다. 찌보다이가 아니라면 해저 바닥에 붙어 있을 어군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박명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흩어져 해저를 유영하던 찌보다이가 군집을 이루는 시간이다.

“와프 스톱하고 50미터 슬락.”

네트레코더에 나타나는 그라운드가 해산의 경사면을 훑듯이 천천히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2

 

수혁은 평소처럼 당직이 끝나자 처리실로 향했다. 얼굴이 붉어진 채 숨을 들이쉬다 내쉬는, 다시 들이쉬는 처리장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수혁은 처리실 분위기를 살폈다. 장화를 신는다, 우의를 입는다, 모두들 탈판준비에 바쁘지만 특별하게 눈에 띠는 일은 없었다.

“이 개새끼들이”

수혁은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하는 욕설인지 알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처리장은 분명히 개새끼들이라고 했다. 오늘은 일진이 좋지 않다. 이래저래 마음에 걸리는 일뿐이다. 당직을 끝내고 침실로 막 들어설 때였다.

“1항사님, 좀 씻으세요. 냄새가 나서 죽겠습니다.”

수혁과 같은 침실을 쓰고 있는 2항사가 불쑥 내뱉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수혁이 씻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탓에 일주일에 한번을 씻을까 말까였다. 그렇다고 감히 2항사가 따지긴 뭘 따져 라고 무시했지만 이번엔 대놓고 하는 욕설이다. 처리장과 눈이 마주쳤다. 수혁은 최대한 감정을 감추면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땡칠이가 로비에 쌓아둔 포장 백에 똥을 한바가지나 질러서요, 라며 처리장은 수혁을 보며 시근덕거렸다. 곧 탈판작업을 하는데 포장 백에다 사고를 치고 그걸 밟고 미끄러져 엉덩방아까지 쳤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태평한 개들은 처리장 곁을 떠나지 않고 꼬리를 살랑거렸다.

“똥이요?”

제99태평양에는 개 두 마리가 선원들과 함께 승선해 있다. 지난 항차 베링 해에서 운반선으로부터 얻은 암컷과 수컷 강아지다. 강아지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덩치가 커지고 질러대는 똥덩어리도 덩치에 비례했다. 처리장은 강아지 때부터 이놈들의 배변 훈련시켰는데 가끔 처리실 로비를 화장실로 사용하곤 했다.

“땡순아, 땡칠아 이리와.”

수혁은 혀를 끌끌거리며 개들을 불렀다. 개들은 수혁이 부르든가말든가 처리장 곁에서 끙끙거리더니 통로 문을 통하여 이내 갑판으로 사라졌다.

“일이나 합시다.”

열두시간의 당직을 마친 탓인지 피곤이 몰려왔다. 빨리 상황을 바꾸는 것이 상책이었다. 선장으로부터 처리실 지원을 하라는 지시는 없었다. 당직을 마치고 하는 의무적으로 하는 선내순찰과 탈판시간이 맞아 떨어졌을 뿐이다.

 

…………(하략)…………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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