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할머니의 꽃길(동화, 류근원)

등록일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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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할머니의 꽃길

 

“풋내기 저승사자야, 내일 아침 무렵 부산의 먼 바다에서 선원 한 명이 죽을 것이니라. 내려가서 잘 데려오너라.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저승사자는 고개를 푹 숙이며 돌아섭니다. 염라대왕은 믿기지 않아 다시 저승사자를 불러 세웁니다.

“이번엔 정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래야만 풋내기란 딱지를 뗄 수 있느니라. 지난번처럼 엉뚱한 사람을 데려오지 말고 알았지?”

“예에….”

저승사자의 풀죽은 대답 소리에 염라대왕은 화가 났습니다. 염라대왕은 저승사자에게 윽박지르듯 닦달해대기 시작합니다.

“만약 이번에도 실수하면 넌 저승사자 직을 잃게 되고 바로 불지옥행이니라, 알았지?”

“…….”

저승사자는 바다로 날아갔습니다. 파도가 무섭게 일렁이는 깜깜한 밤, 먼 항구의 불빛이 반딧불이처럼 반짝입니다. 저승사자는 어둠 속에 잠긴 바다를 휘이익 살펴봅니다. 파도 속에 불빛이 보였다 사라졌다하는 작은 고깃배가 보입니다.

“호. 바로 저 배로군. 큰일 났네. 금방이라도 파도 때문에 가라앉겠어. 이럴 줄도 모르고 배를 탔나.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지.”

저승사자는 고깃배 갑판에 내려앉았습니다. 유리창 너머 조타실을 바라봅니다. 조타실엔 모두 네 명이 허둥지둥 어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헉, 큰일 났는데. 이젠 조타기도 말을 안 듣네. 무전기도 불통이고….”

파도가 내리칠 때마다 조타실은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선원들도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정신을 차리질 못합니다. 저승사자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휴, 어지러워.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아. 그런데 저 네 명 중 누가 죽는다는 거야? 가만 있자, 조기 제일 늙수그레한 노인 같은데….’

저승사자는 조타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선장님, 이젠 문도 고장 났나 봐요. 저절로 열리다니?”

“휴대폰으로 SOS 신호 좀 보내 봐요.”

“휴대폰도 불통이에요. 휴대폰으로 물이 들어가서 아예 작동이 안 돼요.”

그러자 구석에 있던 노인이 휴대폰을 꺼내들었습니다.

“내 것으로 해보지요. 내 것은 방수가 되는 휴대폰이거든요.”

그러나 노인의 휴대폰도 불통이었습니다.

‘휴, 우리 할멈이 사 준 건데….’

정신이 없는 중에서도 노인은 할멈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영감, 이 휴대폰 내가 물질해서 번 돈으로 산 거예요. 영감이 고깃배를 그만 타면 안 살 건데 자꾸 배를 탄다고 하시니. 이 휴대폰은 물에 빠져도 고장이 안 나는 거래요.”

“호, 그런 휴대폰이 있었나? 비쌀 텐데.”

“영감이 배를 안 타면 좋은 시계를 사려고 했지요. 친구들에게 팔목 자랑 좀 하시라고. 호호호.”

노인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야. 꼭 살아나가야 돼. 너무 고생한 할멈, 그리고….’

노인은 입술을 꾹 깨물었습니다. 112와 119 번호를 수없이 눌렀지만 불통이었습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배를 덮쳤습니다. 선원들이 이리저리 부딪치며 정신을 잃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노인이 종이를 꺼내듭니다. 옆에 있던 저승사자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아니 이 와중에 종이를 꺼내들다니? 유서라도 쓰려는 건가?’

노인은 이리저리 밀리면서도 종이에 무엇인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얼마나 궁금했는지 모릅니다. 노인은 희미한 불빛에 이리저리 밀리면서도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어 내려갑니다. 저승사자가 노인 뒤에서 고개를 쑥 내밉니다. 그러다가 흔들리는 노인이 안쓰러워 어깨를 꽉 잡아 쥡니다.

노인은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두 눈이 뚱그레지며 주위를 휘 둘러봅니다. 노인은 고개를 흔들다가 또 다시 종이 위에 글을 써내려갑니다.

저승사자가 노인이 쓰는 글을 읽어 내려갑니다. 저승사자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할머니의 이름은 김말녀, 햇살 요양병원 1115동 502호.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고? 꽃길만 걷게 해 주고 싶었는데…. 나 때문에 치매에 걸린 할멈, 정말 미안하오. 내가 죽으면 안 되는데. 내가 할멈 옆에 있어야 되는데.’

저승사자는 편지를 읽어가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쯧쯧, 영감님. 이 편지는 할머니가 받아볼 수 없어요. 영감님은 죽게 되어 있어요.’

거기까지 중얼거리다가 저승사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헉, 염라대왕님이 지금 내 모습을 내려다보시면 큰 벌을 내리실 텐데. 저승사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야 되는데. 어쩜 좋지?’

저승사자는 깜짝 놀라 움켜잡고 있던 노인의 어깨를 놓았습니다. 노인이 휘청 넘어졌다 불끈 다시 일어섭니다.

노인은 빈 병에 편지를 넣고 뚜껑을 힘주어 닫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편지가 담긴 병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 순간 선장의 다급한 큰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젠 어쩔 수 없어요. 배에서 탈출하세요. 구명보트를 바다에 던지고 모두 바다로 뛰어내려요.”

구명보트가 바다에 던져지고 선원들은 구명보트에 옮겨 탔습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와 배를 덮칩니다. 우지끈 배 모서리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 4명 중에 영감님만 죽는다면 이건 불공평한 죽음이 아닐까?’

그러다가 저승사자는 고개를 심하게 흔들었습니다. 두 주먹으로 머리를 콩콩 쥐어박기까지 합니다.

‘안 돼, 마음이 흔들려선 안 돼. 염라대왕님에게 들키면 난 불지옥행이야.’

그렇지만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한 저승사자의 마음은 편치가 않습니다. 자꾸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영감님이 불쌍해서 어떡하지? 병 속에 담긴 편지는 할머니에게 전해질까? 바다에 둥둥 떠다니다가 할머니까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저승사자의 마음이 파도보다 더 심하게 흔들리고 맙니다.

‘좋아, 그렇다면 영감님이 살아있을 때까지만 영감님의 몸을 빌려 할머니에게 가는 거야.’

새벽녘이 되어서야 바다는 잔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고기잡이배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구명보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노인의 몸을 빌린 저승사자는 요양병원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하략)………………

 

□ 류근원, 아동문학평론 동화 천료, 저서 ‘열두 살의 바다’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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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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