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항(김성식)

등록일2021-07-22

조회수271

 

淸津港

 

 

배를 타다 싫증나면

까짓것

청진항 導船士가 되는 거야

 

오오츠크해에서 밀려나온

아침 海流와

東支那에서 기어온

저녁 海流를

손끝으로 만져가며

 

회색의 새벽이

밀물에 씻겨 가기 전

큰 배를

몰고 들어갈 대

 

신포 차호로 내려가는

명태잡이 배를 피해

나진 웅기로 올라가는 석탄 배를 피해

여수 울산에서 실어나르는

기름 배를 피해

멋지게 배를 끌어다

중앙 부두에

계류해 놓는 거야

 

청진만의 물이 무척 차고 곱단다

겨울날 감자떡을 들고 갯가에 나가노라면

싱싱한 바다 냄새

더불어

정어리 떼들 하얗게 숨쉬는 소리

엄마 가슴에 한 아름 안기지만

이따금 들어오는 쇠배를 보느라고

추운 줄 모르고 서 있었단다

 

잘 익은 능금 한 덩이

기폭에 던져 놓고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별을

기폭에 따다 넣고

햇살로 머리 빗긴

무지개를 꺾어 달고

오고 가는 배들이

저마다 메인 마스트에

태극기 태극기를

 

올 엔진 스탠바이

훠 샤클 인 워터

렛고우 스타보드 앵커

 

방파제 넘어

닻을 떨어뜨려

나를 기다리면

 

얼른 찾아가

나는 굿모닝! 캡틴

 

새벽 별이 지워지기 전

율리시즈의 항로를 접고서

에게海를 넘어온 항해사

태풍 속을 헤쳐 온 키잡이

카리브를 빠져온 세일러를 붙잡고

 

주모가 따라주는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면서

여기 청진항이 어떠냐고

은근히 묻노라면

 

내 지나온 뱃길을 더듬는 맛

또한

희한하겠지

 

까지것

배를 타다 싫증나면

청진항 파이롯 되는 거야

 

■ 김성식(1942년-2002년)_ 해양시인, 한국 근현대 해양시의 초석을 놓음, 4권의 해양시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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