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에 대한 열망, 정일근의 최근 '고래시'를 중심으로(안성길)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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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에 대한 열망

       - 정일근의 최근 고래시를 중심으로 -

 

시인 정일근은 고래의 시인이다. 첫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창작과비평사, 1987)의 「장생포 김씨」에서부터 여러 시집을 통해 그 동안 시인은 「울산의 봄」, 「고래의 손」, 「고래를 위하여」, 「고래, 孤來」, 「고래호텔」 등 수많은 고래시를 발표해 왔다. 그리고 최근 개최된 “2014 고래문학제”에서 표제시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외 40편의 고래시로 고래문학창작기금 수상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지금까지 필자는 “고래문학제” 세미나, 󰡔고래와 문학󰡕 등에서 「현대시에 형상화된 고래와 인간의 관계」,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고래시’의 양상」 등의 평론을 통해 정일근 시인의 고래시를 주목해 왔다. 왜 우리나라의 대표적 서정시인의 한 사람인 정일근이 여타 작가들과 달리 고래시에 이토록 열중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은 아마 앞으로도 오래오래 긍정적으로 유보될 것이겠지만, 지금까지의 내 시야에 포착된 그의 고래시를 분석하고 종합해보면 「고래를 위하여」 이 한 편에 상당 부분 초점이 모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불쑥, 바다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면

당신의 전생은 고래다

 

고래는 사랑의 이음동의어

고래도 사랑도 바다를 살아 떠도는 포유류여서

젖이 퉁퉁 붓는 그리움으로 막막해질 때마다

불쑥 불쑥, 수평선 위로 머리를 내미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고래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실례다

 

당신이 본 것은 언제나 빙산의 일각

누구도 제 사랑의 실체를 다 보여줄 수 없듯

고래도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한 순간 환호처럼 고래는 바다 위로 솟구치고

시속 35노트의 쾌속선으로 고래를 따라 달려가지만

바다 깊숙이 숨어버린 거대한 사랑을

바다에서 살다 육지로 진화해온

시인의 푸른 휘파람으로도 고래를 다시 불러낼 수 없어

 

저기, 고래! 라고 외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고독한 시인은 육지에 살다 바다로 진화해가고

그를 사랑한 이유가 슬픔이란 말이 되었다

 

바다 아래서 제 몸으로 쓴 편지가

가끔 투명한 블루로 찾아오지만

빙하기 이후 우리는 전생의 기억을 잃어버려

불쑥, 근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소금 눈물이 솟구친다면 당신은 고래다

 

보고 싶다, 는 그 말이 고래다

그립다, 는 그 말이 고래다

- 「고래를 위하여」 전문

 

고래를 진정한 “사랑의 이음동의어”로 대하는 시인은, 사람이 어느 날 “불쑥, 근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보고 싶다, 는 그 말”이, “그립다, 는 그 말”이 솟구친다면 그의 “전생은 고래”임을 확신한다. 그렇다. 그가 고래에 이토록 열중하는 이유는, “시인”은 “바다에서 살다 육지로 진화해온” 존재이며, 동시에 “고독한 시인”은 “육지에 살다 바다로 진화”해 간 고래와 모든 모서리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동일체(identity)”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인이 고래를 태초의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인식하는 태도는 최근에 발간된 그의 열한 번째 시집 󰡔방!󰡕(서정시학, 2013)과 열두 번째 시집 󰡔소금성자󰡕(산지니, 2015)에 실린 고래시 14편을 통해서도 생기발랄 약동하는 원시적 생명성과 순정한 사랑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보다 명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고래잡이업자들이 1962년 11월 1일 발표한 포경공동작업에 대한 협약서 3조 4항에 새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귀신고래 암컷이 포경선의 작살을 맞으면 수컷이 그 곁을 맴돌며 떠나지 않을 때 새오붙었다 하는데

 

그 수컷을 새오라 하는데

 

결국은 암컷 따라 함께 작살 맞는 수컷을 새오라 하는데

 

일흔 해 가까이 같이 살며 암컷은 열두 달을 임신해 새끼 낳는 귀신고래라는데

 

새오라는 운명의 그 말을 아는 순간부터 당신을 생각하는데.

- 「새오」 전문

………………(하략)…………… 

 

□ 안성길. ≪지평≫ 1987년 7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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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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