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주름

등록일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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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주름

김명숙 ㅣ 시인

 

물도 주름이 있냐구요

구름이 바다를 딛고 건너가는

바다에 한번 나가 보면요

햇살 쨍하고 바람 없는 날은

어머니 입가의 미소처럼 잔잔한 잔주름이 일구요

바람 불고 비오는 날은

성난 아비 구리 빛 이마의 주름처럼 겹주름이 져요

주름이 보이지 않는 날도 있는데요

한 달에 두 번 조금 때가 되면 바닷물은 노동을 접어요

이때만큼은 당신, 바다에 배를 띄우지 마세요

우리도 때론 쉬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바닷물도 바다에 이르기까지

가파른 오르막길도 있었다는 걸 기억하세요

구겨진 날의 지나온 길,

자식에게 보이기 싫은 어미의 속내처럼

바닷물도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지 않겠어요

이때만큼은 지친 몸 잠시 놓아두고

백중에 머슴놀이처럼 홀가분하게 쉬도록 놔두자구요

조금 때가 되면 방방한 자세로 이마의 주름을 펴고 있지만

마냥 쉬고 있는 건만은 아니예요

살아온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의 가슴 열어 한 번도 내비치지 않던 어미의 모습처럼

걸어왔던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고개 묻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 자료출처 : <월간 海바라기> 2013년 9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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