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주름
김명숙 ㅣ 시인
물도 주름이 있냐구요
구름이 바다를 딛고 건너가는
바다에 한번 나가 보면요
햇살 쨍하고 바람 없는 날은
어머니 입가의 미소처럼 잔잔한 잔주름이 일구요
바람 불고 비오는 날은
성난 아비 구리 빛 이마의 주름처럼 겹주름이 져요
주름이 보이지 않는 날도 있는데요
한 달에 두 번 조금 때가 되면 바닷물은 노동을 접어요
이때만큼은 당신, 바다에 배를 띄우지 마세요
우리도 때론 쉬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바닷물도 바다에 이르기까지
가파른 오르막길도 있었다는 걸 기억하세요
구겨진 날의 지나온 길,
자식에게 보이기 싫은 어미의 속내처럼
바닷물도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지 않겠어요
이때만큼은 지친 몸 잠시 놓아두고
백중에 머슴놀이처럼 홀가분하게 쉬도록 놔두자구요
조금 때가 되면 방방한 자세로 이마의 주름을 펴고 있지만
마냥 쉬고 있는 건만은 아니예요
살아온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의 가슴 열어 한 번도 내비치지 않던 어미의 모습처럼
걸어왔던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고개 묻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 자료출처 : <월간 海바라기> 2013년 9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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