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아

등록일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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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작가 : 호메로스

저작 연대 : 기원전 900~800년경

장르 : 서사시

 

□ 작품 소개

 

인간에게 ‘아득한 옛날’은 누구나에게 궁금점으로 남아 있다. 그 옛날 사람들의 태생은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무엇을 존중하고 꺼려했으며 사람들의 사회는 어떤 관계망으로 유지되고 발전되어 갔을까? 전쟁의 이유와 평화에 대한 소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와 같은 의문점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고고학적 유물과 문학작품의 해석을 통해서이다. 그 중에서도 문학작품은 인간의 천부적 언어 자질과 예술 자질에 비추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호메로스가 썼다고 알려진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현전하는 서양문학 최고最古의 문학작품으로서 역사의 여명기에 있었던 인간의 활동을 기록한 작품이다. 당시 지중해는 세계의 바다였고 땅의 중심은 그리스였으며, 하늘은 땅과 바다와 함께 우주를 형성하면서 거기에 인간은 신들과 공생했다. 그리스인들은 적어도 그렇게 세계를 이해했다. 그들 세계의 끝에는 오케아노스라는 강이 흐르며 땅을 에워싸고 저세상으로 갈 때에는 뱃사공 카론에 의지하여 오케아노스 강(물론 바다라 이해해도 괜찮을 것이다)을 건너가야 했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란 뜻이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트로이의 목마’로 잘 알려진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오디세우스의 함대가 전쟁을 마치고 고향인 이타케 섬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그 외 여러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호메로스라는 걸출한 시인에 의하여 써진 시기는 기원전 850년경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좀 난감한 데가 있다. 왜냐하면 트로이전쟁 발발 시기가 기원전 1,200년경 정도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두 작품 모두 직접 경험을 해야만이, 또는 적어도 직접 경험자로부터 취재를 해야만 창작이 가능한 사실적인 표현 묘사가 너무나 많다. 작품 속의 사실 연대와 창작 연대의 간격이 너무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본 작품을 말할 때 언제나 논란이 되는 과연 한 개인의 작품이 맞느냐는 의문은 바로 이런 이유로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사 호메로스 개인의 작품이라 치더라도 당시에 그 지역에서 활동한 음유시인들(이 지역 저 지역으로 옮겨다니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시인들)의 존재를 감안한다면 본 작품은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를 문자화하고 거기에 창작을 더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하겠다. 물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호메로스 이후에도 계속 오래도록 그리스와 헬레니즘 권역에 걸쳐 음유시인들에 의하여 낭송되었다.

 

자료 출처 : 천병희 역 '오뒷세이아'  

 

일리아스의 주인공이 아킬레우스라면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은 오디세우스이다. 오디세이아의 주 무대는 바다이다. 오디세이아에서 바다를 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전쟁을 마치고 전리품을 챙긴 오디세우스 선대는 항해를 하면서 각종 위험과 조우한다. 고대의 보잘것없는 선박설비와 항해술로 보자면 지금은 고작 연근해 바다에 불과한 에게해와 근역 바다이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망망대해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중해라는 어감과는 전혀 다르게 출몰하는 위력적인 폭풍과 극복하기 쉽지 않은 좁은 수로의 물살과 바닷가에 산재하는 암초는 항해의 안전을 위협했고, 선박의 침몰 멸실이 상존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에 그처럼 해상교통이 발달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악조건의 기상∙해상海象 조건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의지 또는 운명관은 그들의 신화의 성립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디세이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바다에서의 유랑에서 여신 아테나와 해신 포세이돈은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귀항하기까지 등장하면서 인간 운명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고대인들에게 10년의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부족을 다스리는 족장이었다. 전쟁을 치르기 위하여 집을 떠난 족장, 그 10년의 세월에 어린 아들은 아비 없이 컸고, 아직도 귀환하지 않는 생존확인이 불가능한 족장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겠는가? 부족민의 상당수가 만약에 지금 돌아온다면 그는 과연 족장일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부족민들의 생각을 반증하는 인물들과 사건이 바로 ‘악한 구혼자들의 구혼과 오디세우스의 궁전 점거’였다. 왕조시대로 치자면 그들의 궁전 점거는 명백한 왕권에의 도전이었다. 진작부터 여신 아테나의 도움을 받는 오디세우스의 지략과 용맹이 왕권회복의 확신을 심어줬을지라도 그 이후의 일 즉, 왕권탈환 후 왕(또는 족장)으로서의 권위 회복은 또 하나의 숙제였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족민 앞에서 바다에서의 유랑 10년과 귀환 도중 전멸한 부하들의 죽음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진다. 이럴 때 그의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순전히 오디세우스 자신이 결정한다. 이러한 추론은 오디세우스의 유랑 이야기가 신화로 설명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해양문학 작품으로서 오디세이아의 미덕은 ‘바다 그 자체와 바다에서 활동하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애정’에 있다. 모든 문학 작품에는 작가의 집필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의 작품 오디세이아에는 ‘바다를 사랑하는’, ‘노를 사랑하는’, ‘노를 젓는 일을 사랑하는’과 같은 해양친화 구절들이 자주 등장한다. 호메로스는 왜 그랬을까?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던 당시 음유시인들은(또는 궁정시인이었을 수도 있다) 공중이 모이는 회당에서 또는 귀족의 정원에서 작품을 낭송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호메로스와 같은 음유시인 이야기꾼들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해양친화 사상을 전파하려 했거나, 아니면 그러한 귀족들은 일정 규모의 상선대를 가지고 있다든지 또는 해양활동의 수혜자였지 않았을까? 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본 작품이 완성된 시기가 최강의 해양강국 고대 그리스 전성기의 초기였다는 것을 비추어 볼 때 당시 사회의 발달은 해양문학의 발전과 함께 했음은 확실하다. 위대한 문학작품이 어찌 저절로 생겨날 수 있겠는가. 역사적으로 문학은 당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 글, 심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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