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해양문학

등록일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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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해양문학

 

당신은 ‘노’를, 아니 ‘노 젓는 일’을 사랑할 수 있는가? 당신은 고립무원한 바다 벌판에서 항해선의 갑판 위에서 일을 하고 생활하는 것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이 두 질문은 인간의 바다 삶의 사회적 본질에 대한 고대와 근대에 걸친 이명동의의 질문이다. 해양국가에 있어 ‘뱃생활’에 대한 사회 공동체의 의식은 이미 깨어나 있었다. 역사의 여명기의 사건을 기록한 당시 해양국가 그리스의 도시민들의 삶을 읽을 수 있는 오디세이아에 보면 ‘노를 사랑하는’, ‘노를 젓는 일을 사랑하는’과 같은 표현이 심심찮게 나온다.

 

우리 민족의 해양활동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그저 몽롱하다. 손에 잡히고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당시의 삶을 알 수 있게 하는 문학작품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표해록 류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지만 그야말로 우연히 바다를 표류하며 겪은 고통에 대한 사연에 불과하고, 윤선도가 쓴 어부사시사가 바다의 비경을 노래했다지만 ‘노 젓는 일을 사랑하는 일’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해양공간을 삶의 영역으로 인식한 우리의 해양문학은 근대에 와서야 싹이 텄다.

 

개화기에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땅이 열리기 전에 바다부터 열렸다. 서구 열강과 개국에 성공한 일본의 증기선들은 각축을 벌리며 한반도의 해안을 헤집고 다니며 호시탐탐하고 있었다. 개항을 하면서 불평등 개국의 대가로 조선의 양반 자제들 상당수가 일본으로 유학 갔다.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문학에서도 새로운 형식이 나타났는데 최남선의 신체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가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현대 문학의 새벽은 바다를 제재로 삼은 해양문학 작품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 즘하여 증기선을 타고 중국이나 일본을 여행한 조선인들의 승선 경험담들이 당시에 발간된 잡지에 소개되고 있다.

 

나라를 잃은 일제강점기에 한반도는 ‘대동아’의 맹주를 꿈꾸는 일본의 인적 물적 기지창이며 대륙으로 뻗는 전략적 발판이었다. 다른 경제 분야에서도 그러했지만 일본 해운의 분업을 위하여 조선우선이라는 해운기업이 세워지고(일본해운을 주도하는 ‘일본우선’을 표방했다) 해운업의 첨병인력인 해기사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문을 열었다. 당시 입학생의 다수가 일본 학생들이고 그에 비하여 한국 학생은 소수여서 항해활동을 하는 승선 해기사가 많진 않았지만, 새로운 문물에 눈을 뜨고 있던 이때의 해양활동을 그린 문학작품이 없음은 좀 아쉬운 일이다. 이 모든 것은 해양 삶을 글로 표현하는 해양활동가들이 갖기 쉬운 국가주의적 경향과 현실적 괴리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해양의 인문적 빛은 해방의 혼돈기를 지나고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시작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1953년, 당시 전국이 아직 전쟁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때 해군본부는 한민족의 해양 역사를 망라하는 ‘한국해양사'를 발간하여 배포했다. 책의 내용이 한국해양사와 관련하여 얼마만큼 사료 분석에 충실한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의 해양사상 해양의식 고취를 의도한 본서 제작의 애국충정은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한 국가의 해양문학의 발전은 해양활동과 일치한다. 우리의 해양 선구자들은 광복되자마자 일찍부터 해양 관련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한국해양대학과 수산대학(지금의 부경대학교의 승선학과)과 목포해양대학이 문을 열었고 우수한 인재들이 입학하면서 그에 따라 학내 문화예술활동의 하나로 교지를 발간, 해양문학 작품을 실었다. 아직 승선경험이 없는 학생들에 의한 작품이긴 하지만 나름 바다의 짠내가 묻어났다. 그리고 이때 이후 학교를 졸업한 승선 해기사들의 작품(주로 수필류)은 당시 신문 잡지나 사보 같은 간행물에서 드물게 발견된다.

 

‘바다 삶’에 대한 본격적인 창작은 선원의 해외취업과 함께 한국인의 해양진출이 본격화되던 1970년대 초에 이루어졌다. 시에서 김성식이, 소설에서는 천금성이 신춘문예로 등단하면서 한국 문단에 해양문학의 출발을 예고했다. 이후 둘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면서 아무도 간 적 없는 한국 해양문학의 험난한 바닷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1980년대, 9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의 해양 산업은 상승곡선을 그리며 발전해 갔고 그에 따라 우수한 인력이 양산되면서 해양문학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은 한국해기사협회의 기관지인 ‘해기지海技誌’에 대해서이다. 당시 본 협회는 해기사들을 위한 잡지인 월간 해기지를 발행하면서 승선 선원들의 삶을 담은 문예작품을 실었고 정기적으로 해양문학 작품을 공모하여 해양문화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선원들이 본 지에 투고했고 문예작품 응모에도 참여하였는데 특히 시와 수필 논픽션 부문에서 우수한 작품들이 나왔다. 승선 선원들의 문예작품을 게재하는 본 잡지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한국 문단에는 풍부한 해양경험을 가진 젊은 해양작가들이 다수 나왔다. 김종찬, 장세진, 옥태권, 김동규, 심호섭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기성 해양작가들과, 그리고 일반 문인들 중에 해양에 애정이 깊은 작가들이 참여하여 한국해양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해양문학 전문 문예지 ‘해양과 문학’을 창간했다. 한국에 본격적인 해양문학이 시작된 지 어언 30여 년, 실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바다를 낀 해항 도시 또는 문화단체와 언론사에서는 몇 년의 시간차를 두고 제각각 특색을 가진 해양문학상이 제정되어 해양에 뜻을 둔 문사들의 창작열을 불붙게 했는데 소개하면 한국해양문학상, 해양문학상, 동해해양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등대문학상, 부산일보해양문학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후 한국의 해양문학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앞을 알 수 없는 망망한 대항해를 계속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 글, 심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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