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인문학으로 보는 해기전승

등록일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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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인문학으로 보는 해기전승

최은순ㅣ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해사글로벌학부 교수

 

 

십여 년 전부터 해기전승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최근에는 정부와 해사산업분야와 교육계에서 주요 현안이 되었다. 가령 ‘우수한 해기능력 전승’(국토해양부 2008), ‘해기전승의 밤’ 연례행사(해운조합 2007~), ‘참선원 프로젝트’(해수부 2016), ‘해기전승 TFT’(한국선장포럼 2019~) 등은 해기전승과 관련한 프로그램과 정책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회의나 사적인 담화에서 자주 나오는 선원 직업의 매력화라는 말은 해기전승의 위기의식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이다. 그런데 현재 ‘해기전승’이라는 표현은 주로 선원수급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논문이나 자료들 어디에서도 명확한 정의는 찾아볼 수 없다. 주로 복지정책, 장기승선 유도, 근로조건 개선과 승선생활의 만족도 향상, 건강관리 등 선원 수급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교육적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해양계 내부에서 현실적이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 해기전승이 가능하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시대의 가치가 변하고 고도의 기술혁신이 예고되는 시점에서 우리가 어떤 변화 속에 있는지, 그 변화 속에서 무엇을 전승할 수 있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존과 다른 방법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장기적으로는 해기전승은 해사기술뿐 아니라 해사문화 전반을 포괄하는 역사성과 지속성 그리고 변화를 포함한 큰 틀에서 정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해양계 직업군은 물론 사회의 인식, 일반대중과의 상호작용, 소통의 부분을 포함하는 유연하고 확장된 ‘해기전승’의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 시기(1960-1990) 대중가요와 영화에서 <마도로스 박>으로 대표되는 선원의 이미지는 선원과 대중 간의 정서적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도로스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국가 경제에 기여한다는 시대적 사명감과 직업적 자부심, 더 나아가 국가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기여한다는 공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오늘에 이르는 후기산업화 시기에 마도로스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해기사는 더 이상 선망의 직업이 아니다. 최근에 다양한 해상사고와 선상폭력 및 선내 갈등, 열악한 근로환경과 같은 사건 보도가 나올 때마다 해양계 교육기관과 산업체의 위상과 존재는 위축되고, 선원 직업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시각과 편견은 고착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일상을 깨트리는 재난과 사고와 같은 ‘반일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늘날의 해기사에게 마도로스의 이미지는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사회는 발전하였고, 경제성장과 산업구조가 달라진 것은 맞다. 그리고 다양한 직업들이 생겨나고 소득과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우리는 라이프 스타일을 중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선원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선원 직업에 대한 우리 사회와 대중의 인식이 변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일면 맞고 일면은 틀리다.

시대가 변하고 산업구조가 변했다고 해서 육상의 다양한 직업들이 대중의 편견과 무관심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황이준(2015)이 강조하듯이, 근본적인 이유는 해상을 무대로 하는 선원과 육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일반대중 간의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원의 직업활동은 항구에서 바다로 다시 바다에서 항구로 내륙의 바깥을 무대로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선원 직업의 폐쇄성과 직업적 특수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대중이 바라보는 선원의 이미지는 위험한 직업이며, 위험한 바다에서 일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이질적이고 사회와 분리된 존재이다.

오늘날 해상의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언론에 비친 선원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유일한 이미지가 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해기사의 이미지가 없다는 것은 해기직업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직업은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회와 소통하고 사회 안에서 경험되는 해기사의 이미지가 현시점에서 절실하다.

해기인력의 수요와 공급을 안정화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수급의 안정화만으로는 미래의 잠재적 해기인력을 확보하고, 사회적 선망의 직업으로 탈바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 과거 1세대부터 지금까지 해기사 직업군의 활동과 업적, 그들의 삶과 직업에 대한 기억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해기사의 삶과 그 의미를 조명하고 항해학적 업적을 기록함으로써 후속세대에게는 자부심과 긍지를 사회적으로는 선원직업의 이미지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기전승의 정의는 확장되어야 한다. 기존의 해기전승은 말 그대로 학습을 통하여 해사기술을 앞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이때 앞 세대는 교육의 주체로서 먼저 배운 사람, 즉 교수나 연구자, 실무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전문가, 선내 상급자 등이며, 다음 세대는 교육의 객체로서 학생, 실습생, 선내 하급자 등이 될 것이다. 해사기술의 교육과 학습은 해기사들의 문화전승 행위이자 전승의 내용이다. 이때 기술은 항해를 위한 지식뿐 아니라 바다, 기후, 바람 등 자연세계를 이해하며 익힌 경험과 노력의 축적으로 만들어지는 지혜를 아우른다. 해기사에게 해사기술은 학습의 주요 내용이며, 항해라는 노동과정을 통하여 그 항해술의 지식과 노하우가 습득된다.

다른 한편 이 정의를 확대하면, 해기전승은 외부, 즉 미래의 잠재적 해기사와 일반대중과의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회 내의 문화전승까지 포함할 수 있다. 확대된 의미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전승할 수 있을까. 해사기술과 경험, 해기사의 삶과 업적, 해기사의 상징문화(의례, 상징물 등), 해기교육 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확장된 의미의 ‘해기전승’은 학교 이외에 해기사의 직업 세계를 형성하는 노동현장, 해운 관련 단체 및 기관, 연구소, 산업계와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의 잠재적 해기사와 일반대중과의 해사문화의 공유를 포함하는 생태적 구성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인문학이 하나의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는 ‘문제해결형 바다인문학’이라는 아젠다로 2018년부터 7년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서 바다인문학이란 바다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생태적 관계, 즉 바다는 인간이 지배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생태적 관점에서 인간과 더불어 공생해야 할 상호관계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을 말한다. 생태학자 베리 커모너(Barry Commoner)가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다'고 언급하였듯이, 바다에서는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다. 이런 바다의 개방성과 포용성, 유연성이 바다인문학의 열린 사고와 태도이며, 지배와 통제가 아니라 상호교류하고 공존하는 방식이다.

여기에서 해기전승을 위한 인문학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해기직업의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태껏 해기전승이 직업군 내의 계승 차원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편견과 왜곡이 아닌 바다의 직업세계가 사회 속에서 공유되어 보편적 가치로 확산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학술적으로는 해사문화 연구를 위한 학문적 생태계를 조성하고, 해기전승의 내용을 발굴하고 기록하여 알려야 된다. 또한 인문학은 해기 직업군과 일반대중 간의 연결고리로서 다양한 매체, 가령 해양교양저서 활동, 유튜브, 시민강좌 등을 활용하여 대중에게 해기전승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해사문화의 일상성도 알릴 필요가 있다. 최근에 고무적으로 보이는 것은 승선중인 해기사가 자신의 선상생활을 유튜브로 공유하면서 선상문화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과 오해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문학적 접근은 다양한 교육과 연구의 주체와 객체들을 모으는 하나의 플랫폼의 역할일 뿐이다. 해기사 스스로가 자신의 직업과 그 활동에 자부심과 의미를 부여하고 일반대중과 해사문화와 직업의식을 공유하는 데 기꺼이 참여한다면, 이것이 지속가능한 해기전승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자료출처 : <월간 海바라기> 2020년 4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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