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준의 해양사상

등록일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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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최봉준은 조선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해운 재력가였다. 1859년 함경북도 성진 출생인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는데, 당시 연해주 근방에 이주해 살던 함경도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 조선인들은 궁핍한 살림을 해결하기 위하여 가을걷이가 끝나면 러시아 내륙 깊숙이 들어가 이듬해 봄까지 품을 팔았다. 소년 최봉준도 그러했는데 하루는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가 허허벌판에서 눈보라를 만나 쓰러져 거의 죽게 되었는데 러시아인 귀족이면서 갑부인 야린스키를 만나 목숨을 구했다. 이 일이 최봉준에게는 생의 대전환이 되었다. 최봉준은 이 러시아 귀족의 저택에 거하면서 성실성과 근면함을 인정받아 그의 양자가 되었고 그는 세상을 떠날 적 최봉준에게 적지 않은 재산을 남겼다.

 

최봉준은 일찍부터 해상무역을 개척해 나갔다. 당시 상항商港으로 활기를 띄던 블라디보스톡에 진출한 최봉준은 정크선(아직 세계적으로 범선 운송이 많았다)의 갑판에 올라 직접 항해를 지휘하며 러시아 조선 일본 사이의 해역을 오갔다. 최봉준은 고향 함경도 성진항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러시아 일본 중국 조선의 바다를 다니며 무역을 하면서 차츰 거상이 되어갔다. 그때 최봉준은 화륜선 한 척을 도입했다(당시 국제무역에 종사하는 화륜선은 지금으로 치면 거대 화물선이라고 할 수 있다). 수지는 둘째 치고 정부가 겨우 해운의 흉내만 내고 있던 조선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최봉준은 홀로 해운계에 우뚝 섰다. 그는 해양활동가이면서 해양경영자였던 것이다.

 

최봉준이 뛰어난 독립운동가였음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안중근과 안창호 같은 독립운동가들과 교유했고 그들을 경제적으로 도왔다. 또한 그는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신문을 펴내 경성, 원산, 인천, 평양에 지국을 설치하고 선편으로 이송하여 전국방방 곳곳으로 배포했다. 그는 구한말 조선인의 계몽을 위하여 교육사업에도 뛰어들어 학교 여럿을 설립하면서 그의 사재를 아낌없이 썼다. 이 모든 과정에서 최봉준은 일제의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사업가이면서 독립운동가이고 교육자였던 최봉준은 조선의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조선 젊은이들은 이 땅의 자연적 약속을 깨우치고 역사적 사명에 눈을 떠야 한다. 지금껏 작은 이익에 집착, 서로 헐뜯는 기질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망하게 했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앞으로 조선 백성이 살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옳게 깨달아야 한다. 조선은 오직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은 반도가 아니다. 아시아 대륙 전체의 무궁한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귀고리다. 신이 아시아를, 더 나아가 온 세계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조선이라는 귀고리를 달아 놓은 것이다. 레이스로 삼면이 둘러싸인 칠보이고 자수정이다. 이처럼 아름답고 정교하게 깎여 만들어지고 가꾸어진 보석 같은 나라 조선이 또 있겠는가. 이제 우리가 잊어버린 바다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깨달아, 그 가치를 발휘하고 지위를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다와 더불어 국가 민족의 무궁한 장래를 개척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태평양에 둘러싸인 조선 젊은이들의 영광스러운 임무이다. 조선을 바다에 우뚝 서는 나라로 일으키는 사람만이 오늘의 조선을 구해 낼 수 있다. 남방 대양으로 거침없이 나아가 국민 의기를 드높이고 국가경제를 일으켜, 조선 민족의 성실함과 총명함을 온 세계에 알리고 우리 조선을 세계 으뜸 나라로 세워나가자.

 

본문에서 “남방 대양으로 거침없이 나아가……”, 이런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남방이 어딘가? 그곳이 무엇인가? 최봉준의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해양 관련 지정학적 고찰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남방은 일본 열도 일부와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남태평양 군도가 즐비해 있는 무진장한 자원과 무역과, 그뿐만 아니라 해운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서구가 세계사를 ‘대항해’로 바꿔놓은 바로 그 현장이 아닌가? 청년들에게 거기에 눈을 뜨라고 외친 구한말 해운왕 최봉준은 시대를 한참 앞서가고 있었다.

 

□ 심호섭, 홈페이지 편집인

 

참고문헌 : 해양한국 2016년 9월호, 근대해양인 최봉준(박환 저), 문명인의 개략(후쿠자와 유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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