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바다와 신앙경험' 우수원고 채택 - 조희주 님의 ‘베드로의 깊은 바다’

등록일202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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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깊은 바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수련회에서 나는 주어진 길을 따르기로 했다. 생소한 평안함이 나를 감쌌을 때, 마치 깊고 깊은 심해 속에 안전히 웅크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나는 내가 드디어 바른길로 들어섰음을 느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교회에 열심을 더했다. 수요예배, 주일 저녁 예배, 금요기도회 등을 빠지지 않고 참여했고 그 결과는 조금 특이했다.

“그룹별로 나눠서 큐티 진행하겠습니다. 나눔 후에는 밖에서 바비큐 파티 있습니다.”

부목사님의 말에 모두가 환호했다. 여기서 모두는 내 또래가 아니다. 모두 어른들이다. 내 또래는 두 명 정도 더 있었는데 그들도 나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아마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내가 어쩌다 가브리엘 찬양팀 수련회에 오게 되었지?’

가브리엘 찬양팀은 우리 교회의 목소리이다. 그런데 모두 어른들이고 집사님들로만 이루어진 어른 예배 찬양팀이라는 것이 여기서 조금 문제가 된다.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은 가브리엘 찬양팀도 아닌데 어쩌다 어른들 수련회에 끌려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가브리엘 찬양팀인 부모님에게 끌려왔다. 내가 교회의 모든 예배에 성실히 참여하긴 했지만, 교회의 모든 수련회에도 동참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는데? 바비큐 파티라는 말로 나를 억지로 달래고 나는 어른들 틈에 들어갔다.

“오늘 큐티 말씀은 누가복음 5장 1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각자 10분 정도 묵상 후에 하나님 주신 마음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그룹의 리더이신 전도사님의 말씀에 우리는 각자 묵상을 시작했다. 본문 말씀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면 익숙할 베드로를 비롯한 어부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장면이었다. 말씀을 읽는데 바로 직전, 수련회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드린 개회 예배에서 한 말씀이 스쳐 지나갔다.

개회 예배에서 부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을 만나 성령을 받은 사람이 변화하는 과정에 대해 다루시며 오늘 밤 그 변화를 기대하며 성령을 간구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때 들은 말씀이 차례로 떠올랐다. 우선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하고 때문에 자기 자신이 온전히 죽어야 하며 온전한 순종을 통해 성령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성령은 한 사람에게만 역사하지 않으시고 그 사람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불처럼 번져가며 역사하신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죄인 됨을 온전히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종으로 무릎 꿇게 된다.

본문 말씀을 읽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는지. 은혜를 허락하셨는지 개회 예배 때의 말씀과 본문 말씀이 서서히 겹쳐져 읽혔다. 두 말씀은 서로 평행을 이루고 있다. 성령을 받기 위한 첫 번째 준비, 자기 자신의 죽음. 베드로는 4절에서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시자 5절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는 그 대답을 하는 순간 죽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 삶을 부정하는 순간 죽었다. 거듭나기 위한 죽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이다. 그렇게 죽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살아나는 거듭남. 거듭남이 그 말씀에 있었다. 그렇게 베드로는 성령 받았다. 6절에서 바로 베드로가 받은 성령이 은유적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자기 자신의 죽음과 온전한 순종으로 임하게 된 성령은 불길처럼 번져간다. 베드로는 찢어진 그물을 수습하기위해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함께 성령을 감당한다.

하나하나 들어맞는 말씀과 그 놀라운 비밀을 알려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고 밭에 감춰진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대천으로 수련회를 왔었고 고개를 돌리면 창문 너머로 바다가 일렁였다. 말씀과 바다를 힐끔거리다가 나는 마저 말씀을 읽어나갔다. 8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한다. 성령 받은 사람이 자신의 죄에 놀라 눈물로 애통하며 회개하듯이. 그러나 예수님은 그 회개를 넘어 10절에서 말씀하신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무릎 꿇고 회개하는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신다. 베드로와 그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로 인한 사명과 말씀을 받고 그에 순종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삶에서 돌이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다. 말씀과 말씀이 온전히 만나는 순간이었다. 말씀과 말씀이 만나 실제가 되고 나에게 온전히 역사하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창문 너머로 바다가 일렁이고 있었고 말씀의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낀 나는 문득 그 바다가 두려워졌다. 새까만 바다였다. 밑이 보이지 않는,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아득한 세계였다. 먹먹한 가슴으로 큐티를 마치고 바비큐장으로 사람들이 이동했다. 그 무리를 따라가다가 언뜻 시야에 바다가 걸렸고 바다가 손짓했다. 무리를 이탈해 바다로 다가갔다.

바다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곳이다. 바다는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인정하고 그 길로 가고자 결심했을 때 주님께서 나를 초대하신 곳이다. 그 바다들이 실제가 되어 내 눈앞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여전히 너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섰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바다가 너무 무섭습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이 세계가 두렵습니다. 저 밑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기가 무섭습니다.’

바다가 다시 한 번 손짓했다. 나는 홀린 듯 조심히 다가가 가만히 부서지는 파도에 손을 담갔다. 파도는 내 손에 부서져 밀려 왔고 내 손은 멀쩡했다. 부서지는 것은 파도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다는 나다. 나는 너를 해치지 않으며 너에게 부서지기 위해 왔다. 이것으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끊임없이 네게 밀려갈 것이다. 너를 모든 대적으로부터 지키며 네게 가장 존귀한 이름 같은 이름을 만들어주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그 바다였다. 성경이, 역사가 현실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를 만들어내시고 있었고 성경을 우리 앞에 이루시는 분이었다. 바다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깊었다. 바다는 마치 신앙과 같다. 얕은 바다는 언제나 파도가 물결치며 불안하고 흔들리고 부서지지만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평안과 깊은 안정감이 파도 대신 밀려온다. 마치 아직 태어나지 못한 아이가 엄마의 양수 속에서 온전히 자기를 맡기고 평안히 자라듯, 우리도 깊은 심해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나를 맡기고 평안히 자라는 것이다.

엄마가 고기 먹으라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다에 담긴 손을 괜히 한 번 휘젓고는 힘차게 무릎을 딛고 일어섰다. 이제는 살아내야 할 시간이었다.

 

■ 조희주, 부여 임마누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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