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해양작품 우수원고(1) 채택

등록일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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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어 이야기

정희선

 

 

 그날 나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질퍽거리는 공장을 걸었다.

 

 어둠이 제법 내려앉은 공장은 적당히 물이 들어찬 바다 같았다. 둥실둥실 비린내가 떠다녔고, 얼굴에 와서 부딪히는 습한 공기 탓에 눈까지 시렸다. 건들면 터져버리는 짙은 향! 그 사이로 와아아, 온몸으로 쏟아지는 비늘을 막 털어내며 사람으로 변하는 인어가 보였다. 그녀를 둘러싸고 떨어지는 은빛 곧은 비늘이 몸을 떠나자 물방울로 사라졌다. 저러다 저 여인도 물거품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화들짝 놀라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생각보다 많이 거친 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엔 하루 종일 쥐치포를 뜬다고 온몸이 바닷물에 절어버린 나의 할머니가 서 계셨다.

 

 “오이 가니?”

 빨간 고무 대야를 끌고 언덕을 내려가던 나를 보고 옆집 할머니가 물으셨다.

 “오늘 우리 할매랑 쥐치 공장 가예.”

 할머니는 뭐가 그리 신났냐고 핀잔을 주셨다. 가을이라지만 바닷가 마을의 새벽 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손으로 움켜쥐면 쪼르륵 바닷물이 흘러내릴 듯 충분히 축축하고 비리기까지 했다. 할머니랑 서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공장 안에는 일을 하러 온 할머니들로 이미 분주하였다.

 

 “니나! 이리 와봐레이.”

 어느 사이 쥐치 한 상자를 모두 해치운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공장 안 여기저기에는 타닥타닥 엇박자를 내며 타는 깡통 난로가 있었다. 직사각형의 빈 깡통에 얼기설기 구멍을 뚫고 굵은 나무토막을 대강 꼽아 넣은 것이었다. 생긴 것은 아주 거칠었지만, 쥐치포를 뜨는 할머니들의 시린 손을 데워주는 공장에서는 제법 중요한 존재였다. 난로 안 나무들 사이로 발갛게 불길이 솟으면 할머니들은 포를 뜨다 차가워진 손을 깡통으로 뻗었다. 할머니들의 손길이 닿으면 신기하게도 성난 불길은 잦아들었고, 그렇게 데워진 손으로 다시 쥐치포를 떴다. 한참 포를 뜨던 할머니들이 깡통 난로 위에 부서진 철망을 얹으면, 곧이어 공장 안은 기분 좋은 냄새들로 가득 찼다. 그 냄새가 곱게 내려앉을 때쯤 어김없이 할머니는 나를 불렀다. 쥐치 상자에 딸려온 적당히 살이 오른 오징어가 난로 위에서 하얗게 익어 있었다. 부드럽게 씹히는 오징어의 육질은 처음엔 짭조름했고, 씹으면 씹을수록 더 쫄깃하면서 달았다. 그렇게 깡통 불에서 익은 바다 것들을 양껏 먹고 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잠이 몰려왔다. 쥐치 공장 모퉁이 작은방! 까무룩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공장엔 어느새 제법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조용한 공장 안, 타닥타닥 깡통 난로 속 남은 장작들만이 할머니들의 마지막 일손을 재촉하고 있었다.

 

 “와! 다 잤나? 어이 집에 가자. 저녁밥 묵게.”

 갑자기 다가와서는 덥석 손을 잡은 손녀 탓에 할머니는 조금 놀란 듯 했지만, 금세 무뚝뚝한 표정으로 집에 가자 하셨다.

 “할매, 있잖아예. 그러니까. 저기 혹시 인어 알아예?”

 “인어? 내는 인어라는 괴기는 모린다. 헛소리 말고 빨랑 가재. 다라이 자빠질라 단디 끌고.”

 아침에 빈 통으로 끌고 간 고무 대야가 제법 무거웠다. 일하는 동안 쥐치 상자 속 불청객으로 끼어들어온 바다 것들은 공장 할머니들의 몫이었다. 일부는 깡통 난로 위에서 간식이 되었고, 일부는 할머니들의 저녁 찬거리가 되었다. 손녀딸 데리고 왔다고 옆에 계신 할머니들까지 우리 대야에 당신들 것을 더 담아 주셔서 아침에 빈 통으로 끌고 온 대야가 찬거리로 그득했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장롱 위에 꼭꼭 숨겨두신 쥐포 한 조각을 크게 베어 구워주셨다. 귀하다고 제사 때만 구워내던 것을. 질겅이며 쥐포를 씹으니 입안에 달큰한 비린내가 솟았다.

 “그리 맛있냐?”

 “할매 쥐포가 젤 맛있어요.”

 “여기 쥐치가 달지. 이 바다가 용하게 비린 것들을 잘 키우제.”

 “할매! 할매는 바다가 좋아요?”

 “좋은 건 모르겠고, 바다 덕에 자식 새끼들 다 먹여 살렸으니 고맙지. 헛소리 그만하고 어이 자라!”

  그날 할머니가 준 쥐포를 다 먹지도 못하고 나는 잠이 들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쥐치 공장을 따라다니던 그 어린 손녀는 시집을 가 어느새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치매가 심해진 할머니는 가족조차도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남편 없이 오 남매 키운다고 갯일에 쥐치 공장에 평생 고생만 하더니만, 아이고, 울 엄마 불쌍해서 어째. 엉엉!”

 거친 바다 일에 툭툭 불거진 할머니의 마른 손을 잡고 고모가 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할머니는 방금 전 아버지가 사온 귤을 스웨터 주머니에 구겨 넣고 계셨다. 터져버린 귤 탓에 스웨터는 젖었지만, 쿰쿰하던 병실에 옅은 과일향이 퍼졌다. 방 공기와 섞인 귤향은 달큼하게 비렸다. 갓 껍질을 깐 바지락 향 같았다.

 

 “니나! 이리 와봐레이.”

 아무도 못 알아보신다고 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나의 이름을 부르셨다. 그것도 철이 들면서는 잊고 살았던 내 어릴 적 아명(兒名)으로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나를 꼭 그 아명으로 부르셨다. 병실 안 가족들은 모두 놀랐다. 당신 딸도, 아들도 못 알아보시던 할머니가 장손녀를 알아본 것이니. 할머니는 스웨터 주머니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으셨고, 내 손에 그것을 꼭 쥐어 주며, 선하게 웃으셨다. 할머니가 그렇게도 소중하게 건넨 것은 껍질이 벗겨진 채 녹을 대로 녹은 왕사탕 한 알이었다. 검은 땟국물에 스웨터 털과, 둘둘 말린 머리카락까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평소에 단 것이라고는 입에도 대지 않던 노인네가, 손녀딸이라고 그래도 그걸 챙겨서 주나보네. 흑흑! 아이고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째.”

 내 손에 놓인 사탕을 보고 고모는 또 우셨다. 옆에서 아버지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난 조용히 밖으로 나와 끈적거리는 손을 씻었다. 톡! 그제야 사탕이 손에서 떨어졌다. 손을 씻으며 흐르는 물에 사탕도 씻었다. 검은 땟국물을 벗기고, 돌돌 마린 머리카락도 풀었다. 스웨터 털도 떼어냈다. 제법 투명하니 예쁜 알맹이 하나가 내 손에 놓였다. 동그랗고 투명한 것이 꼭 진주알 같았다.

 그녀의 지치고 고단한 삶을 함께해준 바다. 그 바다 곁에 평생을 산 나의 인어는 이 작은 선물을 손녀에게 남기고 당신의 바다로 그렇게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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