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해양작품 우수원고(2) 채택

등록일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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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

김정훈

 

 - 다대포까지 왔는데 안 보여. 어디야?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몰운대에 있었다. 다대포의 옆이지만 이제는 그 경계가 흐릿해져 대다수가 다대포라 묶어 부르는 곳. 그렇지만 있다 보면 여기는 다대포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다대포나 몰운대, 어떻게 불러도 통용되는 애매한 입장은 오히려 몰운대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때론 숨어있는 이름 같은 것. 의식하지 않으면 무의식인 채로 놓여 있는 감정 같은 곳. 나는 몰운대의 어느 바위에 앉아있었다.

 

 - 근처에 있는데 곧 찾으러 갈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답장을 보내고 나는 다대포 쪽을 바라보았다. 처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릴 때 일부러 다대포에 있다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문자를 보낼 때는 다대포에 있었으나 나는 곧 여기까지 걸어오게 된 것이었다. 내 예상보다 네가 더 빠르게 도착했을 뿐이었다. 나는 앉아있던 몰운대에서 일어났다. 몰운이라니. 벌써 몇 번째 방문일까. 살다가 나는 몰운이란 단어가 떠올라 그 뜻을 검색해 본 적이 있었다.

 

 몰운. 沒雲. 잠길 몰. 구름 운. : 낙동강 하구에 구름이나 안개가 끼는 날에는 이 일대가 구름에 잠겨 보이지 않기에 붙여진 이름

 

 그 기원을 검색해서 알았을 때 나는 가슴속에 똑같은 장소가 있는 것처럼 동질감을 느꼈다. 구름이나 안개 등에 침잠하면 보이지 않는 곳. 생각과 우울과 낮은 자존감으로 가득해서 앞이 막막해지곤 하는 곳. 울퉁불퉁하고 검은 바위들 사이로 거친 바람이 부는 곳. 어쩌면 다대포에 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몰운대로 발걸음이 향했던 이유는 닮은 장소의 현재를 확인하기 위해서일지도 몰랐다.

 

 구름에 잠기면 그 일대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구름에 잠기는 것도 아니었다.

 

 몰운대도, 내 가슴속도 매일 그런 날을 겪는 게 아닌데 이미 강하게 남은 인상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이름은 그 점을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도, 다대포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몰운대라는 이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파도가 쳤다. 물이 묻었지만 이름은 스티커처럼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있었다. 이미 존재에 영원히 함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맑은 날에도 어딘가 슬퍼 보이고 막막해 보이는 이유가. 몰운대가. 그리고 닮은 내 가슴속이.

 

 하나의 강렬한 특징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몰운의 유래가 검색된 화면이 나타난 휴대전화를 쥔 것처럼 가슴을 꼭 쥐고 걸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흐릿해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나는 혼자였고 언제든지 구름에 가려질 수 있었고 심한 생각에 우울해질 수 있었고 앞이 막막해질 수 있었다. 이런 내가 네 옆에 붙어도 되는지... 자존감이 바닥나는 날엔 그런 자기 의심이 들었다.

 

 언제였더라. 너는 이 근방에서 오래 살았다며 몰운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거 알아? 몰운대가 몰운도 였다는 사실. 원래는 섬이었는데 퇴적 작용으로 인해 육지에 붙은 거야. 그러면서 몰운도에서 몰운대가 되었지."

 

 풍경의 일들은 참 사람의 일과 닮은 것 같다고 네가 덧붙이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의 사이에 점차 퇴적 작용이 일어나 땅이 점점 생기고 있었던 때였다. 날이 갈수록 우리가 가까워지는 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거 알아? 몰운도에서 몰운대가 되었을 뿐... 몰운은 여전하다는 것.'

 

 나는 두려웠다. 우리의 땅이 붙어버린 후 네가 나의 이 몰운까지 알아버리게 되는 것이. 예상치 못한 날씨가 심하다며 돌아서지는 않을까. 아니, 애초에 길이 어려워 보인다고 두 번 다시 안 오면 어쩌나. 사람들은 종종 내게서 그렇게 돌아섰다. 어느 날 심하게 구름이 끼는 날이면 나를 찾기 어렵다며 포기하고 가버렸다. 퇴적 작용으로 땅이 붙으면 뭐 하나. 땅을 건너 들어오니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떠나버리는데. 그래서 나는 관계란 완전히 이어진 후 왕래가 없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적당한 간격으로 끊긴 채 나 홀로 건너편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그게 마음이 편했다.

 

 헤엄치는 기분으로 너에게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개가 생기더니 시야가 흐릿해졌다. 다대포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너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너는 아직 다대포에서 나를 찾고 있을 텐데.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생각에 잠긴 채 발끝을 내려다보며 몰운대에 멍하니 서 있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하지?

 

 "여기 있었구나."

 

 네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놀란 채 앞을 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다대포 올 때면 넌 항상 몰운대 쪽을 바라봤잖아. 그래서 여기 있을 것 같았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너는 이 넓은 몰운에서 나를 정확히 찾아왔다. 네 어깨너머의 뒤를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땅이 붙어있었다. 안개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몰운 안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너를 보자 두려움이 없어졌다. 손바닥에 묻어있던 몰운대 바위 가루가 툭 툭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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