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해양작품 우수원고(3) 채택

등록일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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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礖)

이미임

 

 

 우리 마을 앞바다에는 여(礖)가 들어있다. 내 어릴 적 여(礖)는 마을 사람들에게 훈훈한 곳간 같았다. 여는 사리 때 썰물이 되면 평상시 썰물에는 보이지 않던 갯바위 아랫부분 개펄까지 모두 드러난다. 그때 여는 한 사리 동안 길러온 갯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내주었다. 사람들도 여가 열리는 날에는 가슴을 활짝 열어젖혔다. 여에 들어서서 굴, 고둥, 낙지, 소라, 게 등의 갯것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면 자신이 먼저 채취하기보다는 그 넉넉한 모습을 이웃들에게 알려주느라 바빴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 갯바위 위에서 훈김처럼 날아다녔다.

 낮 동안 여가 열리는 시각에 마을에서는 큰 잔치가 베풀어진 것처럼 떠들썩했다. 아주머니들은 미리 갯것을 채취할 채비를 차려놓았다가 바다에서 썰물이 시작되면 여로 들어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대개 마을 가장 윗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맨 먼저 집을 나섰다. 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 윗집 아주머니가 가장 먼저 집을 나섰다. 윗집 아주머니는 바로 아랫집으로 내려가 아랫집 아주머니에게“가세”하고 말했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갑시다.”하고 윗집 아주머니를 따라 나섰다. 그 다음 집에서도 “갑시다.”하면 “그러세”하고 먼저 나선 아주머니들을 따라 나섰다. “가세.” “갑시다.” “그러세.”하는 말을 따라 너도나도 집을 나선 아주머니들의 손에는 각자 갯것을 채취해서 담을 바구니와 조새가 들려 있었다. 한두 사람씩 모여든 아주머니들은 어느덧 무리를 이루어 갯것처럼 옹골찬 웃음소리를 길 위에 펼치며 갯가로 향했다.

 아주머니들 뒤로는 곧바로 아이들이 행렬을 이뤄 뒤를 따랐다. 아이들도 한 손에는 바구니나 그릇을 들고 또 한 손에는 고둥을 잡을 갈고리나 꼬챙이를 들었다. 갯바위에서 넘어져 굴쩍에 베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아이도 따라 나섰다. 그러한 아이는 자신의 부모님이 갯가에 나가지 못하게 말려도 기어이 아이들 속에 섞여 따라 나서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갯가나 여에서 고둥을 잡는 놀이도 다른 놀이 못지않게 신나는 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즐거움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굴쩍에 넘어진 상처가 주는 쓰라림보다 고둥이 모여 있는 군집을 만나거나 갯것을 채취하는 기쁨은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일찍이 몸소 터득하였던 것이다.

 여에 도착한 아주머니들은 바닷물이 어느 정도 빠지고 갯바위에 굴이 드러나면 굴을 따기 시작했다. 젖빛처럼 뽀얗게 여문 굴을 따노라면 주체할 수 없이 차오르는 희열이 그간의 고달팠던 일상을 모두 녹여내 주는 듯 여기저기에서 굴에 대한 찬사가 터져 나왔다. “아이고 여물다!” “겁나 여무네!” “어쩌면 이렇게 여물었을까!”하면서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달아 내보내는 감탄사에 힘입어 한 알 한 알 굴을 따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아주머니들은 굴을 따면서 차오르는 희열로 힘든 섬 생활을 묵묵히 견뎌냈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갯바위 곳곳에서도 아이들의 환호성이 왁자하게 날아다녔다.

 아이들은 굴을 따는 아주머니들보다 더 자유로이 갯바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고둥을 잡았다. 고둥은 넓은 곳이든 비좁은 곳이든 갯바위 틈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자유로이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자유롭고 해맑은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았다. 두세 개씩 모여 약간씩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고둥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고둥은 옹기종기 무리지어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리지어 살고 있는 고둥 군집을 만나면 즉시 환호성을 터트렸다.“와! 고둥 봐라! 빨리 와! 다들 이리 와 여기 고둥 겁나 많아!” 하는 소리가 아직 갯바위에 내려앉기도 전에 또 다른 곳에서 더 큰 기쁨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빨리 이리 와 여기는 더 많아 이리 와! 이리로 와!”하는 말로 서로를 챙겨주었다. 혼자 엎드려 고둥을 채취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 채취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즐거움을 더 크고 값지게 여겼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보내는 환호성에 힘입어 어느새 바닷물도 저만큼 내려가 있었다. 위쪽에서 굴을 따던 아주머니들도 밀물에 따라 차츰 여 아래 쪽으로 내려가 굴을 땄다. 조새 머리로는 재빠르게 굴 껍질을 콕 찍어 벗겨낸 다음 조새 아래에 있는 갈고리로는 잽싸게 굴을 긁어 왼손에 들고 있는 그릇에 담았다. 그 손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새라는 말이 마치 굴을 딸 때 사용하는 말인 것 같았다. 굴을 따는 도중에도 누군가는 가끔 허리를 펴고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또 가끔 자리를 옮기느라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혹여 여 위쪽에서 굴을 따거나 고둥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ㅇㅇ야! 아래로 얼른 내려와라!” 하면서 큰소리로 그 사람 이름을 불러 아래로 내려와 여문 갯것을 채취할 수 있게 알려주었다. 위에 남아있는 사람은 대개 굴을 따거나 고둥을 잡는데 몰두하느라 물이 빠진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위에 있는 굴이나 고둥도 여물지만 아래에 있는 갯것은 여 위에 있는 갯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굵고 여물었다. 여문 굴을 따는데도 물때라는 시간 적인 제약이 있다는 것을 모두 잘 아는 것이다.

 위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모두 아래로 내려올 때쯤이면 개펄이 완전히 열려있었다. 여 맨 아래 개펄에는 주로 남자어른이나 개펄을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남자아이들이 들어가 갯것을 채취했다. 가끔 여자어른도 개펄로 들어가지만 대부분 여자어른은 굴을 따는 일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개펄에서는 주로 낙지와 돌게, 소라를 잡았다. 낙지와 소라 돌게가 개펄 위에 몸을 드러내고 있거나 아니면 개펄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라는 대부분 여 마지막 지점 바위에 붙어있거나 바위틈이나 조그마한 물웅덩이에도 들어있었다. 돌게 역시 그랬다. 사람들은 개펄 위를 부지런히 걸어 다니면서 갯것이 눈에 보이거나 발에 밟히면 손으로 주워 담기만 하면 되었다. 가끔씩 남자어른이 낙지구멍을 맨손으로나 삽으로 파서 낙지를 잡을 때도 있었지만 낙지구멍을 파서 낙지를 잡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갯것을 하느라 열중일 때였다. 누군가 “물 들어온다.”하고 큰소리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알렸다. 밀물이 시작되면 대개 본인이 알아서 점차 위쪽으로 자리를 조금씩 옮기면서 갯것을 채취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갯것을 채취하는데 몰두하느라 물이 들어오는 것을 모르고 갯바위에 앉아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바닷물이 사람보다 더 빨리 앞질러 나가는 것을 놓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혹여 물이 들어오는 것을 잊고 갯것만 채취하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어른이나 아이나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밀물을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 “물 들어온다.” “물 들어와요.”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렇게 큰소리로 알려주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계속 아래쪽 갯바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 사람을 지명하여 더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면서 빨리 올라오라고 재촉했다. 밀물의 물살을 파악하여 서로 알려주고 챙겨주는 일 또한 누구나 모태에서부터 알고 태어난 것처럼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의 몸에 밴 자연스러운 배려였다.

 사리 때 드나드는 물의 속도는 무척 빠르다. 특히 밀물 때 차오르는 물살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발밑을 스치고 지나친다. 숨도 안 쉬고 달려드는 밀물의 물살은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어디든 달려들어 차오르고 마는 것이 사리 때 물살이라는 것을 우리는 일찍이 몸으로 익혔다. 사리 때 밀물 앞에서는 천하에 없는 것이 눈앞에 있더라도 바로 돌아서 나와야 한다며 어른들은 매번 아이들을 단속했다. 또 어른들은 물은 맞서거나 거스르는 대상이 아니라 비켜서고 다스리며 공생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도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몸에 익혀 행동에 옮길 때까지 일러주었다.

 어른들보다 더 빨리 갯가로 나온 아이들은 자신들이 잡은 고둥을 일정한 양으로 벌써 나눠놓았다. 고둥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잡은 아이는 더 적게 잡은 아이에게 갈라준 것이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나눔을 계속하였다. 그날 집안에 일이 있어 고둥을 잡지 못한 아이가 있으면 자신이 잡은 고둥을 다른 집에 나눠주었다. 생각해 보면 갯가에서 고둥을 잡고 나누는 일은 거의 매번 아이들 몫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이 또한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섬마을인 우리 마을은 아무 때라도 썰물이 되면 갯가에 나가 무어라도 채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리 물때에 맞춰 갯것을 채취하였다. 특히 사리 때 여(礖)는 후한 곳간처럼 아낌없이 내주고 우리들의 가슴까지 넉넉하게 해 주었다. 물속에 들어 있어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묵묵히 갯것을 키워내는 것도 알게 해 주었다. 또한 우리에게 거저 채취했으니 이웃과 거저 나누는 기쁨도 누리게 해 주었다. 여는 갯것을 채취할 때에나 또 밀물에 밀려드는 물살 앞에서도 언제나 화합하고 공생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익혀 살게 해 주었다. 언제나 여(礖) 앞에서는 우리의 모든 일이 더불어 함께하는 즐거움이었다.

 어린 시절 여(礖)에서 온몸으로 익혔던 훈훈함이 오늘을 살게 하는 커다란 자산이 되어주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도 무의식 어디쯤에 아직 남아 있는 그때 여(礖)에서 터트렸던 환호성이 귀가에 맴돌며 나를 일깨우고 있다는 것을 순간순간 느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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