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인생

등록일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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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인생

김 성 준

 

 

살면서 ‘죽을 죄’를 지은 적은 없지만, ‘죽을 뻔’한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린아이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 살아 있는 게 새삼 감사하게 생각되곤 한다. 어린 시절을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기에 그 위기는 거의 바다에서 일어났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다리에 쥐가 나거나, 깊은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장면 역시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한 술 더 떠서 태풍에 덤비기까지 했다.

여름방학도 거의 끝나갈 무렵의 바다는 항상 쓸쓸해 보였다. 헤엄치러 나오던 아이들은 슬슬 집에 틀어박혀 밀린 방학숙제를 하였고, 바다에 부는 바람도 왠지 선선해지는 것이 여름을 남쪽으로 밀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 무렵에는 어김없이 남쪽 저 멀리서 거대한 태풍이 성큼성큼 다가오곤 했는데, 그것이 나로서는 매우 못마땅한 일이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바닷가에는 파도에 밀려온 온갖 잔해들이 가득했고, 그 때문에 입맛을 쩝쩝 다시며 해수욕을 그대로 접어야 했던 탓이다.

내가 그때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반항심 때문이었을 수도, 치기어린 만용일 수도, 그도 아니면 개학을 며칠 앞두고 심술이 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태풍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에서 혼자 방파제에 놀러갔던 것이다. 바다엔 봉두난발 같은 파도가 잔뜩 성이 나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 파도를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에 어선들은 모조리 방파제 뒤쪽으로 피선을 해둔 상태였다. 배도 못 뜨는 상황에 방파제에 놀러가다니. 도대체 난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파도는 거칠게 방파제를 때리고는 분수처럼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바다는 굉음을 내며 파도를 던졌고, 방파제는 몇 초 간격으로 그 타격을 받아내야 했다. 내가 살던 동네의 방파제는 오래되고 낡은 것이었는데, 그 때문에 곳곳에 균열이 있었던 듯하다. 작은 파도쯤은 별 상관없었지만, 태풍이 몰고 오는 힘센 파도 앞에서는 방파제도 버거워 보였다. 파도에 얻어맞을 때마다 방파제의 갈라진 틈 사이로 물기둥이 높이 솟구쳤다. 마치 고래가 숨구멍으로 물을 뿜어내는 장면 같았다. 나는 그 물기둥을 요리조리 피하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저 정도는 그리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문제는 물기둥이 아니었다. 방파제를 덮어버릴 정도로 큰 파도야말로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그것은 자객처럼 은근슬쩍 다가와 내 목숨을 노렸다. 보통 파도는 방파제를 때린 후 요란한 소리와 물거품을 흩날리고서 사라지지만, 거대한 파도는 방파제를 때린 후 그것을 타넘어 버린다. 방파제를 횡으로 가로지르며 방파제 위의 모든 걸 싹 쓸어가는 것이다. 나는 어렸고, 경험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겁이 없었다. 그 정도의 파도를 예상하지 못한 나는 요동치는 바다를 보며 방파제에서 뛰어놀았다. 그러다가 엄청난 파도의 습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 파도는 방파제를 때린 후 그걸 타 넘어 반대편으로 흘러갔다. 나는 방파제에 뒹굴던 통발과 함께 그 물살에 휩쓸려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방파제에서 떨어졌다. 내가 만약 그때 바다에 곧장 떨어졌더라면 절대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것이다. 하늘이 도왔는지, 천만다행으로 피선해둔 선박의 갑판에 떨어졌다. 나를 살려준 배는 파도에 시달리며 미친 듯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나는 갑판에 처박힌 채 몇 초 동안 뭐가 뭔지 몰라 정신이 멍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배에서 방파제로 다시 올라올 수는 없었다. 배가 워낙 심하게 흔들렸기에 무리해서 방파제로 오르다간 바다로 추락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집에 어떻게 가나, 이대로 죽나, 이런 걱정을 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태풍 탓에 방파제엔 그 누구도 없었다. 나를 구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때 나를 위협적으로 내려다보던 암회색의 하늘, 태풍이 몰고 온 시커먼 구름, 쏟아지는 빗방울의 차가운 촉감, 격노한 듯 제 몸을 뒤집는 바다, 뒤집힐 듯 요란스레 흔들리는 배……. 모든 게 두려움을 자아냈다. 죽음을 실감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 죽음을 실감하다니, 참 어울리지 않지만 부주의로 인한 사고는 때와 장소는 물론이고 나이도 가리지 않는다.

해경 출장소의 전경들 덕에 간신히 구조되긴 했지만, 집에 가서 엄마에게 빗자루로 흠씬 맞아야 했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하룻밤 푹 자고 난 뒤에 나는 그 위험천만했던 일이 준 교훈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망각의 대가를 이듬해 여름에 치러야 했다.

다음 여름, 태풍은 어김없이 우리 마을을 지나갔다. 작년처럼 태풍주의보가 떨어진 상태에서 방파제에 놀러가는 짓은 하지 않았다. 태풍이 동해상 멀리 물러가자 새파란 하늘이 얼굴을 드러냈다. 비바람은 그쳤고, 시커먼 구름은 다시 양털처럼 부드럽고 하얗게 변해 있었다. 태풍 때문에 며칠이나 해수욕을 못한 나는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말았다. 태풍이 물러갔지만 아직 바다엔 태풍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빠르게 해안으로 침투하는 파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수영을 하러 간 것이다. 물론 지난해의 위기를 경험했던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동갑내기 사촌 녀석이었다. 도시에 사는 그 녀석은 정말이지 바다 무서운 줄 몰랐다. 나는 녀석의 꼬임과 부추김에 넘어가버렸다.

파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영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우리는 얕은 곳에서만 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문제는 물살이 밀려오자마자 사촌이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사촌은 키가 150㎝가 채 될까 말까 할 정도로 키가 작았는데, 파도 때문에 순식간에 바다에 삼켜졌다. 분명 수심이 무릎 아래까지 왔는데, 한 순간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태풍이 물러갔다고 해도 그 남은 힘이 깃든 파도의 위력은 정말이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처럼 육중하고 빠르게 밀고 들어오는 파도의 힘 앞에서 사촌은 아연실색했다. 녀석은 울먹이며 나를 불렀다. 그 겁먹은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촌보다 키가 훨씬 컸던 나는 녀석을 팔로 당겨 뭍으로 밀어주었다.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녀석은 파도에 휩쓸려갔을 것이다. 생과 사의 경계에는 담이 없다. 담벼락이 없기에 누구든 죽음의 영역으로 순식간에 옮겨갈 수 있다. 사촌은 그날 죽음 직전에 내 팔을 잡았던 것이다.

문제는 나였다. 녀석을 살리긴 했지만 나는 어쩔 것인가. 나는 사촌을 살리는 데만 집중해서 나야말로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해변에서 고작 몇 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는 지점이었지만 파도가 밀려오면 내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되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헤엄을 쳐야 하는데 어마어마한 파도의 힘에 맞서서 헤엄을 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정신없이 물장구를 치고 팔을 허우적거렸지만 그럴수록 해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해변을 쓸었다가 도로 물러가는 파도는 나를 움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를 먼 바다로 데려가려는 저승사자의 손길 같았다. 해변에서 멀어진다는 건 그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걸 의미했다. 팔다리에 힘은 빠른 속도로 빠지고 있었고, 바다가 아무리 친숙한 공간이라 해도 순식간에 공동묘지처럼 두려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여기서 이대로 죽겠구나 싶었다. 파도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괴물이었다.

이번에도 정말 천운이 따랐는지, 그 부근엔 작은 방파제가 있었다. 나는 파도의 힘을 역이용해 방파제 쪽으로 어떻게든 헤엄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 가봤자 다시 몰려온 파도에 밀려나고, 또 조금 가봤자 또 밀려나기를 거듭했다.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려도 힘이 빠지고 있었고, 이제 내게는 기운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극도로 긴장하고 두려워했던 탓에 힘은 더 빠른 속도로, 파도보다 더 빨리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어린 아이지만 살고자 하는 본능은 강철처럼 단단한가 보다. 내가 어떻게 방파제 맨 끝의 바위를 껴안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걸 놓치면 정말 죽는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바위를 껴안고 놓지 않았고, 그런 나를 파도가 거듭 세차게 때렸다. 팔과 다리는 그 와중에 여기저기 찢어졌고,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치 바다가 채찍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애만 태우는 사촌은 고함을 질러 도움을 청했지만, 풍랑 때문에 조업을 못하는 날이라서 바닷가에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나 그렇게 울면서 바위를 껴안고 있었을까. 나를 도와주고 있는 바위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며 흐느꼈지만, 바위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바위가 나를 바다로부터 튕겨내 땅으로 던져줄 수는 없었다. 바다를 우습게 보는 사람은 바다에 반드시 당한다. 파도는 바다가 뻗은 흉포한 손아귀라서 거기 낚아 채이면 도무지 방법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온힘을 다해 바위를 놓치지 않는 것과 엉엉 울며 살려달라고 고함치는 것뿐이었다.

나를 살려주신 분은 동네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분이 왜 그런 그날 우리 동네에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타지에 사시는 분이었다. 여행이었을 수도 있고, 친척집을 방문한 것일 수도 있다. 나의 비명을 들은 아저씨는 부리나케 내 쪽으로 뛰어오셨다. 하지만 나는 방파제 끝의 바위를 껴안고 있었으므로 방파제 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사촌의 설명은 들은 아저씨는 나를 찾아내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저씨는 아주 길고 굵고 튼튼한 대나무 장대를 발견하셨다.

“이거 잡아라!”

그 목소리는 천사의 음성이었다. 그 장대는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이었다. 나는 그 장대를 잡았고, 내 운명을 아저씨에게 맡겼다. 아저씨는 장대를 끌어올렸고, 나는 꼬챙이에 꽂힌 작은 생선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방파제 위로 올려졌다.

아저씨는 나와 사촌에게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그리고 어느 집 아이들이냐고 물으셨다. 하긴 왜 안 그렇겠는가. 나라도 부모를 알아내 그 사실을 알렸을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살기는 했지만 어린 나이에 죽어도 항변조차 못할 만큼 어리석은 짓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저씨에게 거듭 감사하다고 인사하고는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아저씨가 그 사실을 엄마에게 알리는 날엔 도대체 빗자루 몇 개가 부러질지…….

화창한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던 그 사투를 생각하면 아직도 몸이 부르르 떨린다. 내가 몇 분 동안 파도와 싸웠는지, 얼마나 그 바위를 꼭 껴안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찢어진 상처는 진작 다 나았지만 내 뇌리에 남은 상처는 아직도 치유가 되지 않는다. 만약 그날 그 아저씨가 우리 동네를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방문은 했지만 혼자서 나를 끌어올릴 정도로 힘이 좋은 아저씨가 아니었더라면, 힘은 좋았지만 튼튼하고 긴 대나무 장대가 마침 그 순간 거기에 없었더라면 난 어떻게 됐을까. 그 모든 우연의 조합이 행운으로 작용하여 나를 살렸지만 다음에 또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난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로 인한 두려움 때문인지 그 후엔 성년이 될 때까지 바다에서 헤엄친 적이 없다. 어른이 돼서 바다에 딱 한 번 들어가 봤지만 아주 얕은 곳에서 놀았을 뿐이다.

대형사고나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안전불감증이니 인재(人災)니 하는 비난을 쏟아낸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안전을 도외시하는 사람들을 별 생각 없이 비난하곤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야말로 목숨을 판돈으로 걸고 두 번이나 도박을 벌인 셈이다. 나부터 안전불감증에 걸려 목숨을 쉽게 생각했는데, 누가 누굴 비난할 수 있을까. 바다는 변화무쌍하고, 그 무엇보다 무시무시함에도 그걸 우습게보고 덤벼들었으니 내가 두 번의 위기를 넘긴 것은 천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도 가끔씩 뉴스를 볼 때마다 바다에서 난 사고 소식을 접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낚시하러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는 사고, 물놀이를 즐기다 익사했다는 사고 등은 나를 그때 그 공포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두 번의 커다란 위기를 넘긴 후, 지금 살아 있는 나는 세 번째 인생을 산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여름의 해수욕장에는 즐거움이 있고, 겨울의 바다엔 낭만이 있지만 그 거대한 물 아래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도사리고 있다. 그 힘은 바다의 변덕에 따라 갑자기 솟구쳐 사람을 삼킬 수 있다. 바다는 분명 아름답지만 자칫 방심했다가는 그 무엇보다, 불보다 더 무서운 괴물로 변신할 수 있다.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탓하기 전에 우선 자기 자신부터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습관을 들여야 할 일이다. 오직 그 태도만이 바다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임을 나는 경험을 통해 깨우쳤다.

 

□ 제1회 해양안전 공모전 해양안전 체험수기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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