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

등록일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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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

이 윤 재

 

이제는 찬바람이 났으니 계절적으로 바다에서 낚시로 잡는 망둑어가 가장 크고 잘 잡히는 때이다. 가을 망둑어는 잡맛이 없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망둑어는 배를 갈라 말린 후 저장해 두었다가 양념을 해서 쪄 먹으면 그 맛이 환상적이다. 물론 망둑어를 잡아 살아있을 때 회로 먹어도 괜찮지만 대개는 말렸다가 반찬으로 해먹는다.

내가 바다에서 망둑어 낚시를 하다 죽을 뻔했던 일이 있었다. 나는 76년도 충남 공주에서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초임 발령을 받은 곳이 서산의 바닷가에 있는 초등학교였다. 그런데 나는 그 때까지 바다를 본 적도 없었고 바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하숙집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바닷물이 나갈 때 따라 나갔다가 물이 들어올 때 바닷물에 들어가 물에 잠겨서 낚시를 하는 것이었다. 즉 바닷물이 들어오는 속도에 맞춰 슬슬 뒤로 물러나면서 망둑어 낚시를 하니 들어오는 바닷물에 묻힐 염려도 없었다. 망둑어는 물이 들어올 때 물을 따라 같이 올라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고기의 습성을 이용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물속에 몸을 담그고 뒤로 슬슬 물러나며 낚시를 하다가 바닷물이 다 들어오면 낚시를 끝내고 그들은 뭍으로 나왔다. 바닷가에서 그 모습을 관찰하던 나는 그런 낚시 방법이 무척 쉽게 느껴졌다. 공주의 금강 가에서 낚시를 하며 자랐기에 낚시는 물론 수영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나는 다음 주 일요일 낚싯대와 갯지렁이, 그리고 고기를 넣을 망을 준비해 바다로 나갔다. 고기망은 끈으로 돌려 옆구리에 차고 갯지렁이 그릇은 끈으로 돌려 목에 걸었다. 그러니 물속에서도 두 손은 자유로웠기에 낚시를 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망둑어는 세상에 태어나서 낚시를 처음 해보는 사람도 1분에 한 마리는 잡을 정도로 미련해 그 재미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가슴 높이의 물속에서 낚시를 하는데 고기가 너무 잘 잡히다보니 때로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망둑어가 어찌 많은지 물속에 잠긴 내 몸을 툭툭 치고 돌아다닐 정도였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물이 들어오는 속도에 맞춰 뒤로 물러나야 하는데 이를 잊으면 물이 목까지 잠기는 것이었다. 나도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서서히 뒤로 물러나면서 낚시를 했다. 망둑어가 너무 잘 잡히니 정말 재미가 있었다. 이처럼 낚시에 팔리다보니 어느새 내 주위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나만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였다. 내가 낚시하는 위치에서 30여 m쯤 떨어져있던 사람들이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빨리 나오시오.”

나는 왜 그러나 싶어 뒤로 한 발을 물러나자 몸이 물속으로 푹 빠지는 것이었다. 갑작스레 몸이 물속으로 쑥 들어가자 나는 너무도 놀랐다. 당황한 나는 낚싯대도 놓치고 물에서 허우적거리며 물도 몇 모금 마셨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기를 넣는 망도 버리고 수영을 했다. 사람들이 모여 낚시를 하고 있는 쪽으로……. 수영한 거리는 족히 30m는 되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서 보니 발이 땅에 닿았다. 그 때서야 안심이 되었다. 나는 놀란 나머지 가슴까지 닿는 물속에서 숨까지 헐떡거렸다. 같이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말했다.

“당신 오늘 죽을 뻔 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갯벌에는 갯골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내가 서있는 위치가 비록 얕다고 해도 들어오는 물(밀물)은 갯골을 따라 들어오기에 내 뒤에서부터 물이 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갯골은 물이 깊어 건널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갯골을 간과하고 호기롭게 낚시에 임했던 것이다. 뒤로 서서히 물러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나는 내 뒤에 갯골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던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뒤로 물러나면서 갯골에 빠진 것이었다. 같이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 것도 내가 갯골도 무시하고 낚시를 하기에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다행스런 것은 내가 다만 30m라도 수영을 해 갯골을 건넜기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이 있은 후 절대 바다를 가벼이 보지 않았다. 이후 나는 바다를 잘 아는 사람을 따라가 낚시를 했지 절대 나 혼자서는 바다에 가지 않았다. 이처럼 바닷가 학교에서 5년을 근무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바다의 특성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바다를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영을 조금 할 줄 안다하여 과신한다든가, 물때를 모르고 갯벌의 특성을 모르면서 갯벌에 들어가 조개를 캐는 경우가 있다. 이는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갯벌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그 지방의 사람을 따라 들어가 그와 함께 행동해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설마 괜찮겠지 하는 안전 불감증으로 바다를 얕보다 보면 사고를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특히 바다에서의 낚시나 해수욕장에서의 수영은 바다를 잘 아는 사람의 인도를 받아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교사로 초임 발령을 받았다 망둑어 낚시를 하다 죽을 뻔했던 이듬해 1977년은 내가 교사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세월호 만큼이나 잊을 수 없는 한 해이기도 하다. 방학을 앞둔 7월의 어느 월요일 새벽 눈을 비비고 나오니 하숙집 아주머니가 나에게 비보를 전해주었다.

“어제 바닷가에서 애들이 10명도 더 죽었대.”

나는 깜짝 놀랐다. 바다에 대해 잘 아는 바닷가 애들이 바다에서 죽다니? 더구나 5학년의 우리 반 아이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침도 안 먹고 바닷가로 달려가니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어찌된 일인지 사건의 경위를 알아보았다.

일요일이었던 어제 아침에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바닷가에 모였다고 했다. 그리고 바다 건너편에 빤히 보이는 산으로 도요새 알을 주우러 가자고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면소재지 중학교에 다니는 중1, 초6, 초5 학년으로 13명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걸어서 반달 같은 해안선을 돌아 건너편 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요새 알을 주워 불에 구어 먹으며 놀았다고 했다. 그런데 한참을 놀다보니 저녁때가 된 것이었다. 이 애들은 다시 반달 같은 해안선을 거꾸로 돌아 집으로 오자니 멀기도 하고 지쳐서 꾀가 났던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뗏목을 만들어 타고 바다를 건너자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파도에 떠내려 온 여러 가지 물통과 스티로폼 또는 등걸을 모아 끈으로 엮어 뗏목 두 개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나누어 타고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기로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출발을 잘 했다고 했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다다르자 뗏목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상해 보건데 바닷가에 떠내려 와 버려진 물통이 온전할 리가 있었겠는가? 물통은 구멍이 났거나 흠이 있어 못쓰는 것이니 버린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니 얼마쯤 가다가 물통에 물이 들어가다 보니 뗏목이 가라앉을 수밖에……. 또 바닷가에 떠내려 온 나무토막은 한참 후 물을 먹으니 무거워 가라앉을 수밖에……. 더구나 날은 어두워져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13명의 아이들 중 단 1명만 살아남았으니 이런 사실이라도 알 수 있었지……. 단 1명이 산 것도 다행이었다. 이 녀석은 마침 썰물이 이는 시간이었기에 바닷물에 떠내려가다 살(정치망)을 매기 위해 박아 놓은 10m 정도의 말뚝에 걸렸던 것이었다. 바다에 대해 잘 아는 애들이었으니 그 말뚝만 붙잡고 있으면 언젠가는 물이 빠질 것이고, 살을 맨 사람이 고기를 걷으러 오면 구해줄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월요일 새벽까지 말뚝을 붙잡고 버텼던 것이었다. 결국 정치망 주인이 고기를 걷으러 왔다가 그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우리 반 아이 셋이 죽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지 못했던 70년대였으니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지는 않았다. 만약 지금과 같은 시대였다면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을 테고, 담임들은 안전교육을 시켰느냐 어쨌느냐 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그 때 사고로 죽은 12명의 담임 4명은 상부로부터 수상안전교육을 철저히 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청난 질책을 받아야 했다. 사실 수상 안전교육을 시키지 않은 담임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당시 조금이 뭔지 사리가 뭔지도 몰랐다. 보름 여섯 매, 그믐 여섯 매가 뭔지도 몰랐다. 초여드레 한 조금, 스무 사흘 한 조금도 몰랐다. 음력에 의해 바닷물의 들고 나감도 모르던 시절, 낚시만 좋아하고 바다를 깔보았던 젊은 시절, 까딱했으면 불귀의 객이 될 뻔 했던 사연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바다란 낭만도 있고 즐거움도 있지만 사람이 조금만 방심하고 실수하면 순간 바다에서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바닷가의 아이들이라도 순간의 판단착오는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런 사고가 있은 후 내가 경험한 바다는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평생 바다에 의지해 살고 있는 어부들도 사리 때와 조금 때를 구분해 조심해 바다에 나가고 든다. 갯벌에서 평화롭게 조개를 캐는 사람들도 언제나 긴장하고 물이 들어오는 시간을 체크하며 작업을 한다. 이처럼 바다는 낭만도 있지만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끔 바다에 가서 갯벌체험을 하더라도 밀물과 썰물의 시간을 꼭 알고 갯벌에 든다. 또 갯벌에서 멀리 나가지 않고 내 뒤에 갯골이 있는가를 먼저 살피는 안전생활을 하고 있다.

2014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세월호의 사고라는 엄청난 재앙도 선장의 판단착오와 승객들의 안일한 생각이 사고를 더 크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신이 타고 있는 배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한시 바삐 밀폐된 공간에서 탈출해 선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하다못해 바다에라도 뛰어내릴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세월호의 승객들도 배가 이상하다고 여겼을 때 각자가 슬기롭게 판단해 빨리 밀폐된 선실에서 탈출해 갑판으로만 나왔더라면……. 세월호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영령과 37년 전 사고로 죽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조의를 표하며 이 글을 마친다.

 

제1회 해양안전 공모전 해양안전 체험수기 최우수상

 

□ 자료출처 : <월간 海바라기> 2015년 7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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