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의 약속

등록일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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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의 약속

임정은

 

“엄마, 뭐해요?”
“준비운동하고 구명조끼 입어야지.”
“에이, 귀찮게 왜 해요?”

“우리 아들이 준비운동의 중요성을 모르다니 실망인 걸. 이리 와서 엄마를 따라 해봐. 하나 둘 셋 넷.”

가족과 함께 간 물놀이. 물놀이를 하기 전에는 항상 준비운동을 합니다. 그 날 이후로는 항상 말이죠.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시절입니다. 짧게만 느껴졌던 한 달의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한 그 날 아침. 저를 포함한 아이들은 모두 지난 방학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느라 교실이 소란스러웠습니다. 단 한 아이만 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비어있는 한 자리. 반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그 자리가 비어있다는 것, 한 아이가 슬퍼보인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쌍둥이였고, 빈자리는 그 아이의 쌍둥이 동생 자리였습니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고 담임선생님께서는 빈자리에 희디 흰 국화꽃 한 송이를 놓으셨습니다. 순간 교실 안에 얼음장 같은 적막감이 흘렀습니다.

“우리 친구 민용이가 하늘나라로 영원히 여행을 갔단다.”
순간 남은 쌍둥이형의 울음. 지난 여름방학 동안 쌍둥이 가족은 바다로 피서를 갔답니다. 준비운동 없이 물에 뛰어들었던 민용이는 파도와 함께 바다 속으로 깊이깊이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구조를 했지만 이미 하늘나라 여행을 떠나버린 뒤였다고 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게다가 똑같이 생긴 남겨진 하나를 볼 때마다 민용이가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의 빈자리를 보는 것도, 남겨진 하나를 보는 것도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다음 해 여름날, 중학교 1학년이던 시절. 그 땐 튜브 하나를 갖기가 어려울 만큼 가난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머니를 털어 겨우 튜브하나를 빌렸지요. 그 하나에 엄마, 나, 동생까지 셋이 매달려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둥실둥실 물놀이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갑자기 엄마가 외쳤습니다.

“이를 어쩐다니. 발이 닿지 않아!”
아차, 싶었습니다. 셋 중 그나마 키가 큰 엄마의 발이 닿지 않는다니요.

“엄마, 무서워요.”

“으앙~.”

“괜찮아질 거야. 바닷가 쪽을 향해 물장구를 열심히 쳐 보자.”

“엄마, 물 먹었어요. 너무 짜고 힘들어요.”
“힘내.”

그렇게 십 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얼마나 긴장되고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십 년 같은 십 분이 흘러 겨우 발이 닿는 깊이에 도착했습니다. 튜브 하나에 셋이 매달린 것부터가 잘못된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파도치는 방향도 보지 않고 그냥 떠내려갔던 것이지요. 튜브가 터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시간은 흘러흘러 저는 초등학교 교사,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내 기억의 수면위로 떠오르는 그 아이 민용이.

“엄마, 무슨 생각해요?”
“그 아이는 천국에 갔을 거라는 생각.”
“왜요?”
“참 귀엽고 착했거든. 보글보글 파마머리에 여학생들과도 잘 놀아주던 친구였어.”
“엄마, 나도 준비운동 할게요. 너무 슬퍼하지 마요. 구명조끼도 입을게요.”
다음날 학교에 출근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아이들의 흥분되고 신나는 목소리와 외침이 들립니다.

“여러분, 물놀이를 하기 전에는 무얼 해야 할까요?”
“준비운동이요.”
“그렇죠. 심장에서 먼 곳부터 차근차근 준비운동 해야죠. 그리고 구명조끼 입어야지요.”
“선생님, 저는 지난번에 준비운동 안 하고 구명조끼 안 입고 물놀이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다이빙도 했는데 재미있기만 했어요.”
나의 슬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들의 대답. 다시 한 번 아픈 기억을 꺼내게 됩니다. 아이들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운동을 약속합니다. 아이가 묻습니다.

“왜 바다는 사람들을 데려가는 걸까요?”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무슨 약속요?”
“안전의 약속.”
이제 더 이상은 데려가지 않기를, 바다와의 약속은 꼭 지켜질 테니까요. 

 

제1회 해양안전 공모전 해양안전 체험수기 우수상

 

□ 자료출처 : <월간 海바라기> 2015년 8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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