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없는 배

등록일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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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없는 배

목익수 ㅣ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

 

유령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비상대비자원관리법에 따라 필요한 선박을 승선 중인 선원과 동시에 동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선원의 고령화로 인하여 실제로는 많은 선박들이 제 때에 동원되지 못할 실정이다. 병역법에 의하면 현역근무시의 계급에 따라 동원 가능 인적자원의 연령을 규정하고 있는데 병출신은 40세까지, 위관급은 43세까지이다. 특히 선박과 동시에 동원되어야 할 해기사 자격증을 가진 선장, 기관장 등은 예외적으로 제2종 기술인력대상자로 분류하여 60세까지 동원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비상사태 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화객선을 비롯한 여객선의 예를 들면, 이들 선박에 승선중인 해기사들 중 60세 이상이 46%에 달하여 병역법에 의한 전시동원가능 인적 자원이 절반정도이다. 실제로 승무원 정수를 다 채워야 선박이 정상 운항을 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거의 전 선박이 제때에 동원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60세 이하의 해기사 자격보유자를 징발하여 일정기간 교육·훈련 후, 배치시켜야한다. 이렇게 선원교대를 완료하고 임무수행에 필요한 준비를 마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일주일에서 많게는 수개월 이상 걸릴 수도 있는데, 만약 비상사태 시 물자나 병력을 제때에 운송하지 못하면 엄청난 군사력의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적선대 전체로 봐서도 선원의 35%가 60세 이상이며, 외국인 선원도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어 동원 가능 인력에 심각한 제한을 받고 있다.

북핵사태로 야기된 불안한 국제정세 속에서 어느 때보다 국가의 안보가 엄중하고 변동성이 많은 요즈음이다. 석유 등 전략자원이 없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무역량의 99.7%를 선박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제4군으로 불리는 선박을 유사시 바로 작전에 투입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어야 한다. 수송 선박을 제때 이용하지 못하면 군사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매년 을지훈련을 실시하여 민간부문 특히 민간선박 등의 동원에 관하여 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서류상 의례적인 훈련에 그치고 있다. 선박에는 반드시 선원이 승선해있을 것으로 인식하지만, 선원 고령화로 유령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강력한 법도 선원 없는 배를 동원할 수 없다. 젊고 유능한 선원들이 처우가 열악하고 경력관리에 불리하다는 등의 이유로 여객선 등 내항 동원선박에 승선하지 않는다. 승선근무로 병역의무를 대체하는 승선예비역제도를 내항선에도 적용하여 그 실효성을 높이고, 유사시 제4군 역할을 즉시 수행 가능하게 함은 물론 선박안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내항 여객선 등 동원선박들에 대한 정부지원 및 관련법령개정이 필요하다. 이것은 연안해운의 생존 가능성과 안보 차원의 문제이다. 선원 없는 배는 무용지물이며 배 없는 해운산업과 국가경제 나아가 안보는 생각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국가필수국제선박제도를 시행해오다 한진해운의 파산으로 척수가 줄었고, 또한 현행 시스템의 실효성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여 새로운 대안이 요구되고 있다. 다행히 정부에서 국가필수해운제도를 도입하고 국가안보선대를 확보하기 위한 법안과 기금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계획에 의하면 국가안보선대는 2019년에 7척으로 시작하여 59척을 최종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이는 국가에서 안보에 필요한 선박을 정부 소유로 하고 평시에는 민간선박이 상업적으로 이용하도록 임대해주다가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에는 즉각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미국에는 국방부 산하에 미해상수송사령부(MSC, Military Sealift Command)를 두고 유사시 민간선박을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국가안보선대에 관한 법령이 마련되고 기금 마련이 조속히 성사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이 제도가 원양상선에만 적용되고 비상사태 시 즉시 동원 가능한 내항선에는 적용되지 않는 점은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상영된 영화 3편은 국가 안보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남한산성」에서 척화파는 힘없이 말로만 싸움을 주장하고, 주화파는 백성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굴욕을 합리화 하고, 임금은 대신들의 의견만 구하며 우유부단하며 자기 자리보전에만 급급하다. 결국은 힘없는 백성들만 수십만이 청으로 끌려가고 고초를 당한다. 그래도 임금과 대신들은 사직은 보존할 수 있었다며 자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반면에 같은 전쟁 영화지만 「덩케르크(Dunkirk)」는 민간선박의 도움으로 30만 병력의 철수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명량」은 군선 7척이지만 어선들을 동원하여 왜적의 기세를 꺾고, 물길에 밝은 사공의 도움을 얻어 승리하게 된다. 이렇듯 선박과 선원은 제4군으로서 더구나 섬처럼 고립된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항시 체제를 갖추어야한다. 세편의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평화 시에 항시 전시에 대비해야 하고 우리나라같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경우는 상비군만으로는 자주국방이 어려우니 민간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전시(戰時)행정이 전시(展示)행정이 되지 않도록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겠다.

 

□ 자료출처 : <월간 海바라기> 2017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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