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항해 일기

등록일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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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항해 일기

김 태 욱 | STX마린서비스 ARAON호 승조원

 

우리는 11월 01일 한국에서 출발하여 20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남극으로 가는 첫 관문인 뉴질랜드 리틀톤 항에 정박하였다. 이곳에서는 남극으로 가기 전 최종 보급품과 연구 장비 등 아라온에 사용되는 각종 물품 유류 등을 마지막으로 선적 및 확인하여 5일 후 남극으로 출항하게 된다. 남극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레지만 언제 기상이 급변해 악화될지 모르기에 설렘만큼 걱정도 크다. 또한 아라온이 남극에 있는 시기는 백야 현상으로 해가지지 않기도 하다. 11월 25일. 모든 연구원들이 승선하고 선장님을 필두로 하여 모든 점검과 선적 작업을 종료한 후 우리는 남극으로 출항하였다. 12월 04일. 방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선체에 작은 유빙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는 드디어 남극으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첫 신호였다. 밖으로 나가보니 작고 얇은 유빙들이 해면에 수없이 분포되어 있어 마치 한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호수 같았다. 나는 드디어 첫 임무지인 장보고 기지에 한걸음 다가왔음을 느꼈다.

장보고 기지 도착 1일 전, 한층 더 두꺼워진 해빙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선교에서는 기지 진입을 위해 분주히 쇄빙을 준비 중이었고, 얼음 두께가 두꺼웠지만 모두 능숙한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쇄빙하며 조금씩 기지와 가까워졌다.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장보고 기지 대원이 아니라 뜻밖의 해표와 작은 펭귄들이었다.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12시간의 쇄빙 후 기지에 도착하였고, 장보고 기지 인원들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기지에서는 작업을 위해 온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최종 점검을 마치고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보급품을 하역했고 2일간의 보급 임무를 무사히 수행했다. 1항차 연구 작업은 약 8일간 진행되었는데, 날씨가 잘 따라주어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우리는 2항차 준비를 위해 다시금 리틀톤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12월 17일. 리틀톤에 다시 도착하여 1항차와 같이 화물 하역과 선적 작업을 마치고 22일 남극 로스해 연구 작업을 위해 출항했다. 그곳은 난센 빙붕이 있는 곳으로 ‘정말 내가 남극에 왔구나’라고 느낄 만큼의 거대한 빙붕과 빙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무어링 작업 중 빙붕 가까이 무어링이 위치하고 있어 본선이 접근하기 위험하다는 선장님과 항해사님의 판단하에 갑판장을 필두로 본선 조디악을 이용하여 다가가 부이를 끌고 와 본선 측으로 연결하여 작업을 수행하였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모두가 능숙하게 작업을 마쳤다. 작업을 종료하자마자 기상이 나빠지는 신기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연구 작업을 마쳐 가던 중, 우리는 또 하나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바로 중국 쇄빙선이 빙산과 충돌하면서 닷새 동안 고립된 중국 조사단을 구조하는 긴급한 임무였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케이프할렛으로 이동하였고 도착 후 하루간은 기상조건이 맞지 않아 다음날에야 헬기로 전원을 무사 구조하였으며 리틀톤 항까지 안전하게 도착해 하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는 어김없이 3항차를 위해 출항했고, 3항차는 다른 항차와는 다르게 날씨가 매우 험난하였다. 악조건 속에서도 완벽히 연구 작업을 수행하던 중 또 다른 임무를 받았다. 미국의 남극기지인 맥머도 기지에 있는 장보고 기지 대원을 이송하는 것이었는데, 이송을 마친 후 남은 연구 작업을 무사히 끝내고 리틀톤 항으로 기항하던 막바지쯤 기상 악화로 피항을 가게 되었다. 피항지에 도착하였음에도 날씨가 호전되는 기미가 없었고, 좌우가 30도 이상 기울어지는 통에 다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자는 도중 침대에서 떨어지기까지 하였다. 선교 당직을 위해 올라갔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배를 5년 넘어 타면서도 이렇게 높은 파도는 처음이었고 바람도 70노트를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다들 엄청난 긴장 상태에서 근무를 하였고 나는 타수로서 타를 잡으면서도 너무도 긴장한 탓에 손에 땀이 엄청 많이 났다. 그러고 이틀 후,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졌고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리틀톤항을 향해 출발했다. 나는 3번째 남극 연구 작업을 수행하면서도 설렘만큼이나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기상 속에서 연구 작업을 완벽히 마무리해야 했기에 긴장감과 경각심을 늦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극의 웅장하고 경이로운 자연을 볼 때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며 20일간의 항해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짧고도 긴 여정을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선장님 이하 승조원분들에게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다.

 

□ 자료출처 : <월간 海바라기> 2019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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