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온기로 파도의 삶을 어루만진다면

등록일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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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온기로 파도의 삶을 어루만진다면

심호섭 | 시인

 

 

‘해양문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백경’과 ‘노인과 바다’인 것 같다. 두 작품은 연차를 두고 각각 다른 감독에 의해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되어 해양 영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해양문학은 시대의 산물이다. 그것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해양의식화되어 갔는가를 보여주는 인문의 발자취이다. 고대 그리스는 전형적인 해양국가였다. 수많은 해전을 치렀고 바다로 나아가 수많은 교역을 하며 국가가 존립할 수 있었다. 거기에 사회와 문화를 관류하는 해양문학이 성행했고 사람들은 바다와 항해자의 삶을 잘 이해했다. 당대의 철인 플라톤이 지은 국가론 본문에는 해양 관련 어휘와 문장이 여러 차례 소개되는데 물론 그것들은 주로 주제 전개를 위한 비유법에 인용되었다. 그리스가 진정 해양국가였음을 보여주는 흔적은 뭐니 뭐니 해도 그 유명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의 해양국가화는 경제 사회 분야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진행되어 갔다.

 

이 외에도 시대마다 해양국가에서는 해양문학 작품이 성행했다. 15세기에 대항해시대의 문을 연 포르투갈은 대서양과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며 항로의 길목을 장악하고 상업 거점지대를 세우면서 세계제국을 이루었다. 이때 이들의 사회에는 해양문화가 형성되어 갔다. 유명한 포르투갈의 전통음악 ‘파두’는 대항해시대에 사랑하는 남자를 바다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여인들의 깊은 애환이 담겨 있다. 당시 작가 까몽이스는 포르투갈의 민족정신과 해양사상을 고취한 작품 ‘우스 루지아다스’를 남겼는데 이것은 중세와 근대를 잇는 르네상스기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이다.

 

17~18세기에 영국은 세계 대국으로 우뚝 솟기 위하여 용틀임하고 있었다. 세계의 바다에서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와 치열한 쟁투를 벌였고 사회적으로 명예혁명이 성공하면서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실천하였으며 산업혁명과 함께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육지에서 성공한 계몽주의 정신문화의 에너지는 그대로 세계 전역을 항해하는 항해자들에게 이식되었고 해양개척과 식민지에서 벌어들인 재화는 육지를 ‘물질’로 넘쳐나게 했다. 영국인들이 말하는 ‘대영제국의 황금기’였다. 당시 사회의 물질적 번영과 사회적 모순과 개인들의 공허한 내면을 반성한 작품이 바로 시인 엘리엇의 ‘황무지’이다. 그것의 첫 부분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된다. 물론 우리가 들으면 알 만한 콘래드의 ‘청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테니슨의 ‘사주를 건너며’ 등의 해양문학 작품은 다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근대에 영국의 문학사는 실로 해양문학의 역사이며 그와 함께 영국인들은 해양 의식화되어 갔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해양문학 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는 ‘백경’이지만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멜빌이 작품을 발표할 당시 미국 독서 대중은 백경 즉 ‘모비 딕’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멜빌을 지지하던 나다나엘 호손조차 차가운 반응을 보였으므로 당시 멜빌의 심경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모비 딕의 작품성은 멜빌 사후에 재평가되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미국이 오늘날의 세계 초강국이 되게 한 해양국가 이념이 깔려 있다. 18세기 중후반에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그 후로 60여 년 후 바다에도 증기선이 출현했는데, 그러니깐 모비 딕 이야기는 세계의 바다에 범선이 점점 줄어들고 증기선으로 대체되어 가던 마지막 남은 범선들, 그 범선 포경선의 이야기이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나중에는 그보다 더 우수한 디젤기관이 발명되자 지구촌은 더욱 본격적으로 과학문명화 ・ 산업사회화 되어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무엇보다도 신흥 강국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을 제친 세계국가 미국의 꿈은 이때 시작되었는데 그것의 강력한 정신적 에너지는 ‘해양사상’이었다. 그렇다. 세계국가를 꿈꾸는 미국에게는 강력한 해양사상이 필요했다. 당시에 해양명작을 남긴 휘트먼이라든지 롱펠로우 같은 작가들의 활동은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므로 작품의 발표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 사후에야 명작 반열에 든 모비 딕의 재평가에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다.

 

문명화가 진행된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비록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해양문학 작품이 발표되고 있다. 해양국가를 지향하는 우리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한국 해양문학의 개척자인 김성식 시인, 천금성 소설가의 작품 발표 이후 40여 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해양문학 작품을 쓰는 이가 있고 큰 소문은 없지만 발표도 하고 있다. 해양문학은 체험을 전제로 하는 문학이다. 창작도 그렇고 감상 또한 해양체험 없이는 어렵다. 이것은 독서 주체로 하여금 작품 감상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사회의 해양화가 먼저냐 보편성에 성공한 해양 명작이 먼저냐 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시대에 걸쳐 성공적인 해양문학 작품에 있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전히 작가의 해양체험이다. 진정한 해양 경험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바다의 무한한 상징성과 인간의 다양한 현실을 보여준다. 바다 또한 인간 삶의 무대인 점은 육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때때로 해상 생활과 함께 책 읽기를 가까이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혹자는 집을 떠나 항해 생활에 무슨 책 읽기냐 하고 반문하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책 읽기와 함께 승선근무를 원만히 하고 나중에 성공하는 이를 적잖이 보아 왔다. 그리고 또 누가 알겠는가? 책 읽기를 습관화하고 문학작품 감상에 취미를 가진다면 나중에는 독서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해양문학 작가가 될는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혹시 문학작품 감상과 함께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께 다음을 권한다. 지금 ‘해양인문사회공동체’(해양 관련 봉사단체)란 단체에서는 ‘해기사들의 문학동인’을 결성하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해기사 문학 동아리인 셈이다. 등단하여 문학 활동을 하고 있는 해기사는 물론, 평소에 문학과 글쓰기에 관심을 둔 해기사라면 적극 권하고 싶다.

 

□ 자료출처 : <월간 海바라기> 2019년 7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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