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 해설 : "폭풍 속에서 조난선 구조"

등록일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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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외항선 일등항해사 김성한님이 작성한 '폭풍 속에서 조난선 구조'를 일반인이 알기 쉽게 부분적으로 고쳐 쓴 전문이다. 글의 원문은 글 말미에 부기하였다.

 

 

 

폭풍 속에서 조난선 구조

김성한, 일등항해사

  

 

지중해에서 만난 황천(荒天)이었다. 2010년 12월 12일 새벽 다섯 시. 이스라엘 예루살렘 서쪽으로 30마일 떨어진 ASHDOD항 북서쪽 20마일 해상. 이스라엘 역사상 손꼽힌다는 이날의 폭풍으로 항만은 폐쇄되고 날이 새도록 45노트의 남서풍을 선수 270도의 히브 투(Heave to, 선수를 풍랑쪽으로 향하게 하여 조타가 가능한 최소의 속력으로 전진하는 조선법)로 받아내고 있었다. 저녁에는 ASHDOD항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밤새 북쪽으로 밀려가 있었다. 주위에는 저 멀리 표류하는 선박들의 불빛들이 힘겹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선장님이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브리지로 들어왔다.

 

“갈 수 있겠나? 스웰(너울) 방향이 일정하니 자르고 내려가면 되겠다.󰡓

“예. 갈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자.󰡓

전자해도 상에서 ASHDOD항 정서正西 방향 적당한 장소를 선택한 후 천천히 배를 돌렸다.

 

1. 황천과 조난신호 접수

 

장시간 저속 운항으로 엔진도 힘든 상태였다. 07시 30분경 식사를 마친 선장님이 다시 브리지로 올라오셨고, 50분경에 나는 삼등항해사에게 침로 220도 속력 3.5노트로 인계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자리에 앉아 일등기관사와 환담하며 자리에 앉아 첫술을 뜨기 직전 여덟 시 오 분.

 

”RESCUE STATION STAND BY…”(해양사고 시 구조를 위한 스탠바이)

 

삼등항해사의 떨리는 목소리가 선내에 울려 퍼졌다. 잠시 김이 모락 나는 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방으로 달려갔다.

 

구명조끼의 끈을 조이며 선내 사무실로 내려서니 선원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브리지로 교신하니 7시 58분에 VHF(고주파무선전화) 채널 70번으로 조난신호를 수신하였고, 선수 너머 육안으로 확인되어 본선이 간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한다. 인원점검 후 선원들을 인솔하여 좌현 상갑판을 통해 선수루로 올라섰다. 우현 비스듬히 물보라와 뒤섞인 강풍이 몰아쳐 얼굴을 때렸다. 몸이 날려가는 느낌에 무릎이 저절로 굽혀졌다.

   

한시 방향으로 파도에 쓸리고 있는 삼천 톤급 일반화물선이 눈에 들어왔다(본선은 5600TEU급 콘테이너 전용선이고 피구조선의 선명은 ‘YM GREAT’호임).

 

“본선의 선수 방향으로 약 3마일 거리에 있는 것으로 육안으로 확인됩니다. life raft(구명뗏목)가 우현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 보인다. 우리가 구할 수는 있을 것 같다.󰡓

 

2. 풍하(風下)쪽으로 접근, 순식간에 조난선 사라져

 

점점 가까이 다가섰다. 약 1마일로 우현 대 우현으로 통과하니 조난선 현측에 아직도 위태롭게 달려 있는 구명뗏목 두개가 명확히 보였다. 강풍에 밀려 혹시 조난선과 본선이 충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가깝습니다.”

“보고 있어. 저 배 뒤쪽으로 돌리고 있다. 최대한 라인(밧줄)들을 현측으로 내려놓도록, 잡을 수 있도록.󰡓

“예-!”

 

본선이 조난선의 뒤쪽으로 돌아서는 이때 조난선 현측에 있던 구명뗏목들이 빠른 속도로 이탈해 나갔다. 구조시 발생했던 사고 사례들이 머리를 스쳤다. 선수루에 모여 있는 선원들에게 즉시 말했다.

 

“First, secure our safety. Never run. Always move with a pair. Fasten life ring to messenger line.” (먼저 우리의 안전부터 확보하시오. 항상 짝과 함께 움직이시오. 구명환을 연결줄에 고정시키시오.)

 

갑판장에게 선수창고에 있는 굵은 ‘Messenger Rope’(연결줄)을 가져오라 하고 우현 상갑판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등기관사가 제일 먼저 로프가 든 통을 들고 재빨리 나갔다. 우현 상갑판에 내려서서 도선사용 사다리를 중심으로 세 곳으로 나누어 선원들을 배치하고 구명부기를 묶은 로프들을 난간에 잡아매도록 했다. 그때까지 주인 없이 덮치는 파도에 내몰리던 조난선은 선회한 본선 우현 선미쪽에 다다를 때쯤 선미를 살짝 들더니 그대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채 5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다. 10m에 이르는 파도 속에 구명뗏목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 보입니다.”

“여기서 보고 가고 있다. 좌현측에서 잡아야겠으니 준비하도록.󰡓

 

서둘러서 좌현으로 옮기라고 전달하고, 나도 거주구역을 통해 넘어가려는(좌현쪽으로) 순간, 기관장님을 만났다. 우찌하든 조심해야지, 기관장님이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말씀하였다.

 

좌현에서 다시 로프들을 설치하고 도선사용 사다리(이 사다리는 매우 무겁다. 설치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를 내리자마자 선장님이 선수쪽으로 고함질렀다.

 

“선수 통과했는가? 선수에 나가 있던 2등항해사”

“네, 지금 통과했어요!󰡓

 

그러고 나자 현측을 스치듯 들어오는 구명뗏목 두개가 보였다. 이날의 구조는 이 조선으로 결정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윽고 몸을 내밀어 필사적으로 로프에 묶인 구명부이를 잡으려는 조난 선원의 모습이 보였다. 본선은 남서풍을 우현으로 가로막고 서서 좌현에서 구조를 시도하는 것이다. 구명뗏목에서 첫번째 로프를 잡는 순간, 큰 파도가 덮쳐서 두 구명뗏목을 묶고 있던 줄이 끊어졌다. 순간 선원 두 사람이 몸을 내밀어 온힘을 다해 다른 뗏목을 부여잡았다.

 

첫번째 로프는 파일럿 사다리에서 다소 멀었다. 그들이 스스로 로프를 놓고 간신히 사다리를 잡는 순간 첫 번째 위기가 지나갔다.

 

3. 풍상 측에서 구조, 극적으로 위기 모면

 

수면에서 상갑판까지 거리는 14미터로서 많이 높았다. 옆에 있는 조타수에게 외쳤다.

 

󰡒Open the second deck pilot door. Let’s go.”(제2 갑판 도선사 출입문을 열어야 해. 갑시다.)

 

이번에는 달려갔다. 재빠른 필리핀 선원들의 손놀림에 살짝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 문이 열렸다. Boarding Plate(탑승 발판)를 설치하자마자 사다리에 매달리는 첫 번째 조난 선원의 모습이 보였다. 사다리가 휘청 뒤집혀서 줄로 묶어 고정했다. 이때가 8시 45분경. 미쳐 날뛰는 백마의 갈기처럼 흰 파도가 부서져 날리고 있었다.

 

6M, 수면에서 파일럿 도어까지의 거리다. 물에 젖은 구명동의 때문에 다소 동작이 불안해 보이는 조난 선원들이 그래도 차례차례 올라오고 있었다. 일곱 번째 선원이 힘겹게 올라오다 중간지점에 멈춰 섰다. 구조가 끝나고 알게 되었지만 기관장인 그는 수술로 심장이 좋지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사다리를 안고 있었다. 발판 바닥에 엎드려 손을 뻗쳤으나 닿지 않았다. 이때 떨어질세라 내 등을 덮쳐 누르는 우리 선원 두 사람의 무게가 따뜻하게 느껴져 왔다. 그의 녹색 눈과 마주쳤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가 말했다.

 

“I can't do it…….”

(그는 힘을 잃고 있었다.)

 

“Yes! you can do it!”

우리는 이 말을 외치며 손을 내미는 수밖에는 없었다.

 

뒤에 남아 있는 구조되지 못한 선원들이 떠올랐고 행여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그가 떨어져 버릴까 초조해졌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긴 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다시 한 발 한 발 내딛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의 방수복의 모자를 잡아챌 수 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끌어 올렸다. 가슴속 깊이 뜨거운 그 무엇이 느껴졌다. 그의 동료들이 옷을 벗기고 몸을 문지르는 것이 옆으로 보였다.

 

4. 우크라이나인 11명 전원구조 성공

 

그들은 우크라이나인이었다. 선장이 전부 몇 명인가 확인하라고 했다. 총원 열한 명이었다. 모두 조난선에서 탈출에 성공했는데, 이제 구명뗏목에 남아 있는 이는 모두 네 명이다. 우리가 던져준 로프를 구명뗏목에 잡아매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그들은 그저 손으로 붙잡고 매달려 있었다. 아마 그럴 정신이 없는 듯 보였다. 그 와중에 구명뗏목 하나가 떠내려갈까 몸을 내밀어 끝까지 잡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조난선의 선장이었다.

 

도선사용 사다리 쪽에 붙어있는 뗏목으로부터 두 사람이 올라오는 중에 조난선의 서류뭉치를 올리느라 시간이 또 지체되었다. 다른 뗏목이 떠내려가 버릴까 마음이 급했다. 마지막 남은 두 사람. 그날의 최고 위기의 순간이었다. 사다리에서 약 3m 떨어진 뗏목 안에서 한 선원이 로프를 잡고 있었고, 조난선 선장이 드디어 우리가 내려준 로프에 달린 구명부기 사이로 힘겹게 몸을 우겨넣었으나, 거의 탈진했다. 상갑판에서 끌어올리는 로프 끝에 그대로 매달린 채 양손을 늘어뜨린 그의 눈이 하얗게 뒤집혀지는 것이 보였다.

 

순간 불굴의 한국인이 있었다. 본선의 이등항해사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옆으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그를 잡았다. 발밑으로는 파도가 삼킬 듯 흘러가고 있었다.

 

“윈치(권양기)로 올리시오!”

 

브리지에서 선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재빨리 사다리를 묶은 줄을 풀어내고 윈치로 서서히 감아올렸다. 천천히 달려 올라오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그림 같았다. 진작부터 와 있다던 이스라엘 구조 헬기 소리를 나는 그제사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 선원인 조난선 이등기관사가 노트북까지 매고 뗏목을 버리고 헤엄치듯 물을 건너 씩씩하게 올라온 시간이 9시 30분경. 바다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더욱 더 거세지고 있었다. 나의 가슴은 "우리가 해냈구나" 하는 벅찬 감동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구조된 우크라이나 선원 11명과 본선의 한국인 5명(선장 권혁철, 기관장 차태환, 일등항해사 김성한, 일등기관사 김영완, 이등항해사 정성근)과 필리핀 선원 16명은 서로 따뜻한 미소로 축하를 나누었다. 본선 선원들이 자신의 옷가지와 신발 등을 아낌없이 내 주는 것을 보면서 국적을 초월한 동료애를 다시 한번 느꼈다.

 

5. 이번 구조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1) 황천 속에서도 구조를 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

2) 구조 조선의 중요성과 의미(선장이 시간대별 구조 조선의 상세를 이스라엘 항만당국에 보고함.)

3) PICK UP 방법의 고찰

4) 조난선 탈출시기의 중요성

5) 사건기록의 중요성

6) 다국적 선원들간의 협동심 및 잠재역량 확인 등이라 하겠다.

 

구조를 무사히 마치고 이틀째. 드디어 항만이 열리고 ASHDOD항으로 정오에 입항할 수 있었다. 조난선의 선원들은 수속과 P&I조사를 마치고 무사히 하선하였다. 그들의 발걸음이 가벼우면서도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용선사인 ‘YANG MING LINE’을 필두로 선주사인 ‘SMTECH SHIP MANAGEMENT(KOREA)’, SHOEI(JAPAN), 필리핀 관리선사 ‘CARGO SAFEWAY’, 그리고 소속사인 세진선박으로부터 온 축전을 게시했다.

 

이스라엘 당국자로들부터 <LETTER OF COMMENDATION>(사진)을 본선 권혁철 선장이 브리지에서 수상하였다. 지난해에는 조난선 구조 중 8명이 사망했다는 말과 함께 진정으로 감사하고 기쁘다고 했다.

 

그리고 일상의 하역작업을 했다. 이튿날 이탈리아 ‘LIVORNO’로 출항하는 선수루에 섰다. 상념이 들었다. 나의 지나온 날들과 가야 할 날들……. 그리운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저녁노을은 붉게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ADRIATICA’호를 삼킨 바다는 말이 없었다.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11년 11월 호

 

글 원문 보기 :

http://oceanis.co.kr/records/activity_list.asp?mode=view&page=1&pageSize=10&seritemidx=&artistidx=&serboardsort=&search=0&searchStr=&idx=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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