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 해설 : "한국인 최초의 남극 탐험"

등록일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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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의 남극탐험' 해설

 

 

1966년 신동아 잡지에 처음 소개된 이 기록물은 다시 1995년에 한국경제신문이 기획 발행한 ‘한국해양문학선집’에 수록된 작품으로서, 현대 해양문학이 요구하는 ‘해양의 경험’이 적지 않게 녹아 있는 작품이다. 특히 '유빙항해' 부분은 이와 관련한 국내 수기 기록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작품 속에 이루어진 남극탐험은 1964년에 이루어진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데 물론, 이 때 한국은 아직 박정희 군사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초기 단계로서 국내의 경제사회 사정은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당시의 독자는 본문을 읽지 않더라도 필자의 ‘남극 탐험’이 지정학적 경계를 넘어선 매우 개인적인 일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64년 가을, 당시 필자는 동경수산대학의 4학년 졸업반으로서 실습선의 졸업항해에 실습생으로 승선했다. 실습선 ‘해웅환’(한국식으로 하면 ‘해웅호’임)은 수년 전부터 일본의 남극관측 항해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이 해의 졸업항해는 바로 이 남극탐사였다.

 

남극항해, 그것은 20세기 대항해시대의 완결판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11년 1월에 남극점 도달을 놓고 영국의 스코트는 노르웨이의 아문젠과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아문젠의 남극점 도달 1개월 후, 스코트의 원정대는 마침내 마찬가지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그렇지만 얼음 바람이 몰아치는 극점에서 그가 얻은 것은 아문젠이 남기고 간 편지뿐이었다. 그렇게 서구 열강은 원정대를 보내며 남극을 얻으려 했다. 그보다 훨씬 나중에 전후복구에 성공한 일본이 숟가락을 얹으면서 남극대륙에 진출했다. 그들은 ‘개남항’이란 일본식 이름을 남극지도에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라든지 해양의 역사가 세계사의 주요한 주제가 되게 한 서구의 해양사(또는 해양개척사) 이야기들이 본문에서 소개되면서 필자는 현재의 한국의 처지와 일본 정부가 운영하는 실습선에 의해 남극항해에 참여하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고뇌하지만, 결코 좌절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민족적 자존감을 지키며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남극으로 가는 길은 멀다. 대양을 항해하는 배치고는 좀 작은 1,500톤의 실습선. 일본을 출항하자말자 풍랑에 휩싸이는 배와 실습생들. 처음 겪는 심한 뱃멀미로 고통을 겪는 그들. 이에 대해서 필자는 매우 상세히 묘사하며 바다는 쉽게 그 깊고 넓은 마음을 내주지 않음을 경험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항해의 고통은 배가 적도를 지나면서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기항 항인 호주의 멜버른에 안착하면서 잠시 휴식을 얻는다.

 

멜버른을 출항하고 남극에 다가가면서 겪게 되는 유빙항해는 이 기록물의 백미라 하겠다. 얼음이 떠도는 바다는 위험하다. 특히 ‘팩 아이스’라고 불리는 유빙대에 갇히면 더더욱 그렇다. 움직이는 얼음덩어리가 배를 둘러싸 죄면 배는 자부러지고 만다. ‘경계’(견시라고도 말해지는데 매우 중요한 항해업무이다)에 실패한 실습선은 유빙대에 갇히게 되지만 선장의 뛰어난 조선술로 극복하고 실습생들은 다시 용기를 얻으며 당직과 일상에 임한다. 이밖에도 냉한 해역에서의 선체의 움직임이 실감나게 묘사되고 승선원들에게 배급되는 방한장구들과 기계설비들의 보완 시설 과정도 실감난다. 상갑판(아마도 '선수루 갑판'인 것 같다)에서 얼음바람을 정면으로 받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철판 구조물 뒤에 쪼그려 당직을 서는 장면은 이곳이 과연 남극임을 실감나게 한다.

 

돌아가면서 다시 기항하게 된 호주의 항구는 '시드니'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아직 빼어난 미항이 많지 않았던 당시, 시드니는 미항 중의 미항이었다. 이 아름다운 항구에서 실습생들과 시드니 현지 대학생들은 유도시합을 벌이게 되는데 필자가 가장 마지막으로 붙은 현지 학생들은 정상급의 유도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들을 물리친다. 시합 전에 일본대사관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서로 알게 된 아름다운 여인 미스 케이의 응원이 컸다고 그는 말한다.

 

항해와 모험과 약간의 로맨스가 담긴 이 이야기가 한낱 ‘누군가’의 젊었을 적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게 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는 주인공의 민족적 정체성 때문이다. 그는 성장기에 일본에서 민족차별을 받으며 살아온 한국인이다. 실습선에서도 그는 외로운 이방인이다. 함께 승선한 동료 실습생들과 승무원들은 모두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 어떤 한국인도 경험하지 못한 남극탐사 항해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일본 정부와 학교가 운영하는 실습선에 승선하여. 그래서 외로운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민족적 정체성 문제는 기록물 전체 걸쳐 마치 남극 바다에 떠도는 유빙처럼 빛을 내며 긴장의 끈을 붙잡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이 남기는 또 하나의 여운은 제 3자의 말을 빌려 전하고 있는 그의 생각에 있다. 아문젠과 남극탐험 경쟁을 벌였지만 패한 스코트는 수색대와 함께 남극의 눈밭에 묻히면서 이런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만약에 우리들이 살아 돌아가게 된다면 우리 대원이 겪은 고난과 인내력, 용기에 대해서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모든 영국이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있어서는 그런 바람도 없다. 다만 이 수기와 우리들의 시신이 그것을 이야기해 줄 뿐이다.” 이것은 당시의 스코트의 원정대원에게나 이 글의 주인공에게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우리들에게 남겨지는 바다를 향한 숙제일 것이다.

 

□ 심호섭, 홈페이지 편집인

 

원문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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