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조용한 아침의 나라

등록일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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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조용한 아침의 나라

 

남해안의 아름다운 섬 거문도 앞바다에 어느 날 이상한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바닷가에서 사람들은 이 괴상하게 생긴 배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조선 고유의 한선과는 많이 달랐다. 배는 상부에 굴뚝이 달렸는데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증기기관의 배기가스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다. 은둔의 나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물론, 한반도 수역에 이양선이 출몰한 것은 그 이전부터였다).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증기기관이 처음으로 나온 것은 영국의 ‘뉴커먼’에 의해서였다. 그 후 글래스고대학 수리공장의 기술자인 ‘제임스 와트’는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개량하여 보다 강력한 효율적인 증기기관을 만들어내었다. 유럽에서 증기기관은 처음에는 광산의 갱도에 고인 물을 퍼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는데 나중에는 공장에도 널리 사용되어 증기기관은 만능기계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유럽 산업 사회에서 이와 같은 증기기관은 사실은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과학기술 연구의 산물이었다. 물을 끓인 증기로 동력을 얻고자 하는 시도는 아주 옛날부터 있어 왔다. 유럽에서 증기의 힘으로 기계를 작동시키려는 연구는 자본주의적 열정과 환경이 갖추어져가던 17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유럽의 15, 16세기에 나라들마다(아직 국가의 형태가 완전히 갖춰지지는 않았지만) 부국강병 중상주의를 표방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의 장원제도와 관련이 깊다. 서양 중세 내내 많은 전쟁이 있었다. 장원과 장원끼리, 귀족과 그 가문끼리, 소영주국끼리, 대영주국들 사이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을 담당한 사회적 계층을 기사라 불렀고, 기사는 중세사회에 중요한 계급문화를 형성해 갔다. 이러한 전쟁과 함께 사람들이 이동했고, 점령지에서 획득한 전리품이 전승국의 땅에 가져가졌고, 점령을 당한 곳에서는 점령국의 문화가 소개되었다. 전쟁은 낯선 곳의 낯선 사람에게 서로의 문화가 흘러가게 했다. 이 서로에게 낯선 문화와 그 문화에 속한 물품들이 그들의 소비욕구와 생산동기를 자극했다. 옛적 고대로부터 중세까지 동서양에 전 지구적으로 진행된 교역, 실크로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긴긴 세월 흘러들어간 동양의 비단, 도자기, 차 등의 물품들은 유럽의 소비문화와 생산에너지를 유발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한 것이다.

 

유럽의 경제 공동체들은 자체적인 소비문화의 발달과, 그리고 동양과의 교역과 함께 자본주의적 열정에 불을 붙이면서 상품생산에 몰입해 들어갔다. 근대에 들어선 유럽의 생산주체들은 대량생산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시아로부터 아메리카로부터 향료무역과 노예무역, 사탕수수와 면화, 은의 유입과 함께 자본주의 경제의 에너지로 활활 불붙은 유럽 경제사회에 어쩌면 증기기관과 같은 강력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계가 발명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처음에는 광산의 갱도에 스며드는 물을 배수하고 갱도 안의 석탄을 바깥으로 운반하기 위하여 이용되었다. 당시에 유럽사회는 에너지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나 석탄을 채굴하기 위하여 광산의 갱도가 자꾸 깊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유럽 경제사회의 화두는 온통 증기기관이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의 관심이 증기기관의 발달과 그 이용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달 이면에는 과거의 기술 계층과 그 사회의 위기의식이 있다.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충돌 갈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명 이기의 출현에 대한 사람들의 감성적 상처가 상존한다. 상당수의 과학 문명 기술의 결과물들이 피조물로서의 존엄성과 자연성에 위배된다는 사실에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에 대한 사례는 실생활 속에서도 잘 찾을 수 있겠는데, 문학작품으로서는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해양문학 작품 ‘바다의 노동자’에 있는 내용을 소개한다. 소설은 프랑스의 북쪽에 위치한 섬 지방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생활을 소재로 한 이야기로서 거기에 초기의 증기선이 항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무척 흥미롭다. 그곳의 주민들은 태고부터 지금까지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을 경외하며 살아왔다. 그러므로 자연의 이치에 거스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섬과 섬 사이를 왕래하는 연락선이 범선에서 새로운 과학기술로 지어진 금속 증기선으로 바뀐 것이다. 배는 사람과 화물을 싣고 빠른 속력으로 오갔다. 그리고 풍향에 관계없이 파도를 마구 헤치며 나아갔다. 선수와 뱃전에 이는 흰 파도의 물결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존중받아야 할 자연을 저렇게 함부로 대한다는 말인가!

 

이러한 문화충격이 우리 사회에서도 있었고 서구사회에서도 있었지만 그 결과는 많이 다르다. 서구는 산업혁명과 함께 경제사회에 대한 철학과 이념이 수많은 긴장과 갈등 속에서 진행되어 오늘날의 과학문명 기술 사회를 이루었고, 우리는 그들이 이룬 최종 결과물 앞에서 마치 수업을 마친 학업에는 별 관심이 없는 학생에게 주어진 무거운 숙제처럼 망연자실해할 뿐, 속수무책이었다. 1885년 4월 15일에 거문도 앞바다에 떠 있던 영국군함은 거문도에 해병대를 상륙시켰다. 그들의 행동은 참으로 일사불란했다.

 

□ 심호섭, 해양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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