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해양작품 감상 우수원고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3-05-26

조회수168

 

감상 작품 : 심호섭의 '낯선 자와의 긴 항해 2'

 

 

큰 새가 날아왔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와서는 몇 번 퍼덕이다가

항해실 창가 핸드 레일 위에 앉았다.

정오의 햇빛에 새의 흰 몸통이 눈부시다.

새는 고개를 수그리더니 부리로 이리저리 쪼아 댄다.

자세히 보니 가슴 부위에 피 같은 것이 나 있다.

상처를 입었나 보다.

새는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바람에 깃털이 나부끼고 있었다.

 

북위 07°, 서경 123°, 그리고 수심을 나타내는 숫자와 알파벳 기호들.

나는 이런 것들로 채워진 해도 위에

4B 연필로 침로선을 긋고 있었다.

나는 해 뜨는 시각과 해 지는 시각이 기록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검은 잉크펜으로 항해일지에

오늘의 일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항해실 바깥의 큰 새가 궁금해졌다. 나는 하는 일을

멈추었다. 그리고 큰 새에게 가 보았다.

새는 잔뜩 웅크린 채 앞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큰 새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새는 크게 날개짓하며 하늘로 치솟았다가

다시 갑판에 내려앉았다.

다시 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새가 나를 쳐다본다.

새의 얼굴이 사납다. 무섭다.

저 새는 이빨이 있을지도 모른다. 손갈퀴도 사나울 것이다.

 

그 자가 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자는 새에게 손을 내밀었다.

새가 그 자에게 손을 주었다.

그 자는 호주머니에서 먹이를 한 줌 꺼내어 새에게 주었다.

무슨 열매 같은 것이었다.

새가 먹이를 열심히 먹는다.

새가 힘을 얻었다.

새의 가슴 부위 상처가 나아졌다.

새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항해실 위의 하늘을 빙빙 돈다.

나는 새와 새를 바라보는 그 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 보기가 좋았다.

 

그러나, 새는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싸우러, 싸우러 가는 거요.

싸우다 상처를 입으면 또 이렇게 찾아올 거요.

 

갑판으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가 없다.

나는 새를 찾기 위하여 배의 가장 높은 곳인

나침의羅針儀 갑판으로 올라갔다.

사방으로 멀리, 하늘을 살펴본다.

보인다. 새가 보인다.

그 큰 새가 날아가고 있다.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다.

 
 자료출처 : 시집 '해류와 노동'에서

 

---------------------------------------------------------------------------------------------------

[본문]

 

새를 통해서 보여주는 미메시스(Mimesis)적 미학

- 비상하는 새는 우리 삶의 자화상

 

최수혁

 

 

 시인은 자연 속에서 작가 자신의 흔적을 찾아내어 시 속에서 재현해내는 장인이다.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미메시스(Mimesis)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미메시스는 시인이 자연 속에서 발견한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어 재현해 놓은 하나의 작은 세상일 수 있는데, 심호섭 시인은 그의 시 「낯선 자와의 긴 행해 2」의 갑판과 해양 사이를 오가는 새를 통해서 자신 만의 미메시스를 만들었다고 보여 진다.

 위 시를 요약해보면 항해사인 시적 화자가 상처를 가진 큰 새와 그 상처를 치유해주는 그에 대해서 각각 묘사하고 있고, 상처를 치유한 후 다시 떠나는 새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위 시의 시적 주체는 ‘나(시적화자)’와 ‘큰 새’, ‘그 자’의 3중 구도를 이룬다는 점이 독특하며, 이 점이 이 시를 난해하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적 주체 중 먼저 새에 대해서 살펴볼 때, 시적 화자가 갑판에 앉은 새를 관찰하면서 새에게 이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표현한 대목에 특히 주목하게 된다.

 

다시 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새가 나를 쳐다본다./새의 얼굴이 사납다./

무섭다./저 새는 이빨이 있을지도 모른다. 손갈퀴도 사나울 것이다.

(- 「낯선 자와의 긴 행해 2」의 3연 7~10행 中 -)

 

 작가가 이빨이 없는 조류인 새의 부리 특징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빨로 비유한 의도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혹시 상처가 있는 새는 시적 화자의 내면세계의 분신이 아닐지? 만일 그렇다면, 새에 대해서 의인화(擬人化)한 비유가 화자 내면의 트라우마(Trauma)이거나 불안감을 먼저 보여주고, 새가 먹이를 먹고 강해진 모습에서 화자의 내면 상처가 치유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시적 설정으로 생각될 수 있다. 또한, 새가 싸우러 다시 떠난다고 한 것은 화자의 내면세계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극복해야 할 갈등의 과제들과 맞서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새는 화자가 화자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는 중심소재가 된다.

 다음으로, 그자에 대해서 살펴보면, 새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고, 먹이를 주는 그 자의 모습은 새를 돌보며 자신의 내면세계와 마주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를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새에게 먹이를 줌으로써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고 있는 그자는 시적 화자의 내면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위로와 공감을 제공하는 상징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에너지와 희망을 얻는 것에 대한 함축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자의 상징성은 우리 내면에 대한 자기 치유와 재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관점으로, 그 자는 자신의 삶이나 운명을 결정하는 근원적 존재로 그 의미가 확장될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이 시의 제목인 ‘낯선 자와의 긴 항해 2’에 있다. 항해사인 시적 화자가 배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낯선 사람은 누구일까? 작가가 ‘긴 항해’라고 전제하였으므로, 아마 그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적 화자가 안면을 알고 있을 익숙한 사람들일 것임에도 작가는 그 자를 낯선 자로 지칭한 이유는 그 자를 ‘절대자’ 혹은 ‘자연’에 대한 상징으로 의도했기 때문은 아닐까. 따라서 새와 그자의 상호작용은 인간과 자연 혹은 절대자와의 관계, 즉 인간이 자연 혹은 자연의 섭리와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인간의 삶과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필자는 위 시를 읽으면서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자화상」과 위 시는 모두 자아의 내면 탐구를 담고 있어 화자 내면에 대한 고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물 속에는 ~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 中 -)

 

 다만, 「자화상」에서는 화자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불합리한 외부 환경(일제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있다는 점, 위 시는 화자 내면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 대비되어 「자화상」에서는 화자가 자신의 내면에 대한 부끄러움을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자화상)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표현한 반면, 위 시에서는 내면의 불안감을 새라는 대상에 투영시켜서 우회적으로 표현한 점에서 다르다고 보여 진다.

 

사방으로 멀리, 하늘을 살펴본다./보인다. 새가 보인다./그 큰 새가 날아가고 있다.

(- 「낯선 자와의 긴 항해 2」의 4연 4~6행 中 -)

 

 위 시의 마무리부에서 상처를 치유한 후 먼 곳으로 비상한 새는 시적 화자의 내면에서 새로운 시작과 변화의 상징으로 느껴진다. 하여, 새는 과거의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날아가는 모습으로, 시적 화자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한 욕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며, 「데미안(Demian)」에서 알을 깨고 밖으로 나와 신에게로 날아가고 있는 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P123, 「데미안(Demian)」)

 

 위 시에서 새는 시적 화자의 내면세계에 대한 성찰과 화자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데미안(Demian)」에서 새가 신을 향해 날아가는 것은 내면의 아픔을 딛고, 치유하여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함축을 담고 있듯,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삶의 자화상으로 느껴진다. <끝>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