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 항행기

등록일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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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 항행기

김길수(세진상운 선장)

 

 

우리들이 승선하고 있는 S.M호는 GRT 30,488톤, 전장 190m,선폭 32.26m, 깊이 17.40m의 규모입니다. 일본의 S.K LINE에서 운항하던 이 배는 어떤 사정으로 인해 일본의 S.S기선에서 취득하게 되어 MANAGEMENT 회사인 세진상운의 선원들(한국 선, 기장)과 18명의 필리핀 선원 들이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S.K.LINE에서 장기 용선한 S.M호의 첫 항차는 미국 밴쿠버에서 COPPER CONCENTRATE를, 미국의 포틀랜드에서 SODA ASH를 적재해 COPPER CONCENTRATE는 인도의 DAHEJ항에, SODA ASH는 아랍에미레이트의 MINA SAQR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DAMMAM항에 하역하는 것이었습니다.

4월 5일 미국의 포틀랜드항에서 출항한 뒤 싱가포르에서 유류 보충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부산항에서 유류수급을 하도록 하라는 갑작스러운 용선주의 지시로 4월 22일 부산 남항에 도착하였으나 강풍으로 인해 하루를 대기하다가 다음 날인 23일 유류보급을 마치고 양하항을 향하여 출항하였습니다. 남지나해의 해적소굴인 ANAMBAS(MANKAI) Is.를 늦은 오후에 통과하게 되어 해적당직계획은 일단 취소 하기로 하였지요.

5월 8일 오전에는 인도양의 위험지역인 경도 78도를 통과하게 되어 5월 4일부터 주갑판을 전부 철망으로 둘러치기 시작했습니다. 철망을 치면서 생각하니 이곳이 군사분계선도 아니고 어느 험악한 나라의 국경도 아닌데 평화롭기만 한 인도양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승선하고 있는 배의 건현이 약 7.5m 정도인데 이 정도의 건현으로는 해적으로부터 우리들을 보호 하기에는 완전하다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었지요.

본선은 선교에서 ‘C’갑판(선장갑판)으로 내려오는 곳에 방화문이 있는데 이곳을 폐쇄하면 선교가 점령당한다고 해도 선원 거주구역으로 침입하려면 문을 부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인도양의 78도에 진입하기 전, 우리는 이 문도 빗장을 걸 수 있도록 준비를 완료하고 SECURITY 훈련과 최악의 상항을 만났을 때 피난처로 피난하는 훈련도 하고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모든 문은 내부에서만 열 수 있도록 조치할 뿐 아니라 피난처로 통하는 문 하나는 이중으로 잠금장치를 하여 미리 준비를 했습니다.

또한 주갑판에서 BOAT DECK로 올라오는 계단도 BLEECHING PLATE로 일단 폐쇄를 시키고 위험구역을 항해하는 중에는 절대로 BOAT DECK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 야간에는 항해 등을 제외하고는 등화관제를 철저히 하기로 모든 선원이 약속을 했고 피난 신호가 울리면 빠른 속도로 피난처에 집합하여 선교당직자도 모든 조치가 끝나는 대로 빨리 피난할 수 있도록 협조를 약속했습니다. 5월 8일 아침에는 선교에 비치된 TWO WAY VHF 3대와 비상 배터리도 함께 기관실에 갖다놓아 비상시 연락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통신장비도 갖췄지요. 무엇보다 우리가 해적선을 먼저 발견하거나 최소한 본선에 해적들이 승선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면 절대로 해적에게 당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인도양 항해를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우리들이 승선하고 있는 배가 해적들에게 점령당했을 때 주기를 정지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으나 발전기를 정지했을 경우 아무리 여름철과 열대 지방일지라도 장시간 발전기를 가동하지 않으면 주기의 윤활유 펌프가 정지되어 차후 기동에 어려움이 있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발전기를 계속 가동하기 위해 거주구역에 있는 비상등을 미리 비상등과 연결된 주 전원을 차단키로 기관장과 협의하여 비상발전기실에 있는 비상등의 전원 스위치를 미리 내려놓고 위급 시 거주구역과 기관실의 조명등을 전부 소등할 수 있는 전원 스위치를 미리 찾아 표시하고 기관사들에게 교육시켰지요. 손전등도 선교에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기관실에 보관시켰고, FIRE STATION에 있는 비상용 도끼도 문을 잠궈 사용이 불가하도록 해놓았으니 제 아무리 간 큰 해적이라도 캄캄한 실내를 돌아다닐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선교 양현에 파나마 운하용 텐트를 설치하여 추가 견시를 배치하고 인도양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서 MSCHOA(MARITIME SECURTY CENTER-HORN OF AFRICA)에 등록을 하여 본선의 위치를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했고 본선은 78E에 진입하자마자 UKMTO에 초기보고를 했습니다.

사실 인도양을 작년에도 항해를 했지만 금년만큼의 불안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뉴스에 의하면 해적들이 날이 갈수록 난폭해지는 것 같군요. 그런데 지금 세상이 어느 때인데 인도양 전체가 해적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하는지, 선원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한심하고 참담함을 느낍니다.

무장하지 않은 순수한 선원이라는 이유로 무장한 해적들로부터 공격과 인질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현실은 대책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요? 불법적인 소말리아 해적 때문에 전 세계의 선원들이 왜 불안에 떨어야 할까요? 해적이라는 것이 확인이 되면 가차없이 공격해 버리면 해적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얼마가지 않아서 자연 소탕될 것 아닌가요? 그들은 전 세계의 선원들뿐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공공의 적이 아닙니까?

실제로 본선을 인수받을 때 필리핀 선장이 하는 이야기가 본선의 용선주이고 지난번까지만 해도 본선의 선주였던 S.K. LINE의 선박 한 척이 인도에서 철재를 싣고 유럽으로 가게 되었는데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지 않고 희망봉을 돌아 항해를 했다고 하니 용선주나 운항회사도 막대한 손실이고 화주 또한 분명히 운임을 더 지불했을 터이니 이 또한 막대한 손실이 아닙니까? 해적도 인권이 있으니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하려나요? 그렇다면 피해를 당하는 선원의 인권은 인권이 아닌가요? 선주나 화주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비싸지게 된 물건을 소비하게 되는 소비자는 어떻게 보상받나요?

우리들이 승선하고 있는 S.M호는 무사히 첫 양하항인 인도의 DAHEJ항에 입항하여 하역을 마치고 다시 아랍에미레이트의 MINA SAQR항까지 부처님과 하느님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도착, 지금은 하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양하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DAMMAM항에서 하역을 마치면 아마도 브라질로 펄프를 실으러 가지 않을까 예상되는데 다시 인도양을 횡단하려면 최단거리인 인도양을 횡단하지 못하고 인도 대륙으로 바짝 붙어서 위험지역인 10S,78E를 경유하여 희망봉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시간적으로 얼마나 손해이며 비싼 유류는 얼마나 더 들어야 하는지…. 이 발달된 세상에 살면서 해적들 때문에 선원은 불안에 떨고 선주나 운항선사는 엄청난 손해를 입어야 하는 실정인데 아직도 무슨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니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선원들의 심정은 답답함 그 자체일 뿐입니다.

해적의 인권을 그렇게 생각해 주었다면 보유 선복량에 따라 각국 또는 각 선주들의 비용부담으로 소말리아의 해안을 봉쇄해 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요? 아니면 상선에도 무장을 시켜서 해적에게 맞대응 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요? 부작용을 우려한다고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담그지 못하는 격이지요.

몇 년 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RICHARDS BAY항에서 해적에 피랍되어 3개월 가깝게 그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었던 어느 기관장 얘기를 들었는데 같이 승선했던 선장은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 그 여파로 정신과 치료를 많이 받았는데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직은 인도양이 MONSOON SEASON이 아니라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에서 해적 때문에 긴장해야 된다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인도양에 진입하게 되면 차라리 어느 정도 황천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천일 때는 파도에 시달려도 해적 걱정은 없으니까요.

하루 빨리 인도양에 평화가 다시 와서 평화롭고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칩니다.

 

□ 자료출처 : <월간 海바라기> 2013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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