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간의 항해가 준 선물

등록일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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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간의 항해가 준 선물

김인숙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 선택이었다.

2009년 10월 17일 울산항을 출발해 대해로 나섰을 때 바다는 육지에서 바라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가슴 답답할 때, 우울할 때 그저 속 시원하게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과는 달리 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쓰가루해협을 지나서 알래스카의 니키스키항으로 향하는 도중에 멀리서 고래 가족이 뿜어대는 물기둥을 볼 수 있었다. 북태평양 검푸른 바다위에 솟은 물기둥을 때로 멀리 또 때로 가까이 바라보면서 10월28일 도착한 니키스키 항. 주변의 먼 산들이 온통 하얗게 날씨는 벌써 겨울로 접어들어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니면 넓은 땅이라 그런지 우리가 가끔 영상으로 접하던 그대로 드문드문 보이는 숲에 간간이 집이 한 채씩 있을 뿐 황량하고 삭막했다. 그곳의 바다는 바다라기보다는 활화산에서 흘러나오는 화산재와 빙하가 흘러 들어와 흙탕물이 굽이쳐 흐르는 흡사 우리나라 서해안의 갯벌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알래스카에서 화물을 내려 준 후에 다시 일본 지바 항으로 출항. 지바로 향하는 도중에 북태평양의 항해는 가히 파도와의 전투였다. 알류샨 열도 부근을 지나며 만난 허리케인의 강한 바람과 10m높이의 파도 속에서 배는 좌우로 30도 가까이 심하게 요동하였다. 금방이라도 바닷속으로 쳐 박힐 것 같았다. 처음 배에 오를 때부터 느꼈던 두려움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차를 타도 멀미가 심한 내게 배의 흔들림은 크든 작든 두려움을 줬고 남편은 늘 이런 두려움과 맞서며 항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남편을 비롯한 뱃사람들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일본, 동경만의 해저터널 상의 수면위로 거대한 돛을 연상케 하는 조형물이 우리를 맞아주는 지바 항. 그곳은 아주 정돈이 잘된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로 기억에 남아 있다. 지바에서 화물의 선적을 마친 후 다시 싱가포르로 출항했다.

싱가포르는 열대의 해안도시라 그런지 습도가 높고 후텁지근했다. 그 나라 문화를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다는 재래시장을 찾았다. 재래시장의 풍물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난전에 과일을 늘어놓고 파는 모습들, 호객하는 소리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들. 그 속에서 말로만 듣던 여러 가지 열대 과일들을 직접 맛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양파 썩는 듯한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과일 두리안이 있었다. 처음 대하는 나로서는 우선 그 역한 냄새에 가까이 하기조차 부담스러웠지만 먹어보니 미묘한 맛이 도는 과일이었다. 그 냄새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리안을 갖고는 대중교통을 사용할 수 없게 규제 되어 있다고도 했다.

 

다시 싱가포르를 출항하여 호주로 향하는 길.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 부근을 지나게 되는데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해적이 나오는 길목이란다. 그래서 밤이 되면 뱃전에서 소방호스로 물줄기를 쏘아대며 승무원들은 선미에 불을 밝히고 경계를 섰고, 나는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를 해적 침입에 대비해 열심히 돈 숨기기를 감행했다. 혹시라도 해적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원하는 건 돈이니 만큼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는 게 최상의 방법 같았지만 돌아보면 그 또한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목숨만큼 귀중한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해적 출몰지역을 지나는 사흘 동안 내내 조바심을 하고 불안했지만 그 지역을 무사히 통과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바 섬 부근을 지날 때의 바다물결은 마치 실크와도 같았다. 간간이 보이는 작은 돛을 단 인도네시아의 어선은 아라비안 동화를 연상시켰다.

작은 섬들을 지나서 발리 섬 부근을 지나는 동안 나는 바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배의 진동을 느끼며 셀 수 없이 많은 돌고래 떼가 배 주위에서 두 마리씩 짝을 지어 수면을 오르내리며 멋진 모습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돌고래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수면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바다로 자맥질하는 멋진 돌고래 쇼를 다시 보는 일 또한 어려울 것 같다. 장난기 많은 돌고래들은 그렇게 숨어있는 사람의 감성을 움직였고 지루하고 망망한 바다를 깨웠다. 그렇게 초조와 불안을 넘고 황홀한 바다를 건너며 비로소 바다 사람들은 바다를 여자로 표현한다는 걸 알았다.

호주 북 해안 산호초 섬들이 즐비한 토레스 해협을 지나서 도착항 시드니항의 명물 오페라 하우스를 바로 옆으로 지나가며 바라보았던 풍경.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그림 같은 집들과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의 하얀 돛을 단 수 많은 요트들. 정말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호주는 인근에 대륙이 없어서 청정하다고들 하더니 모든 것이 맑고 깨끗하게 다가왔다. 공기 청정 지역이라 그랬을까? 밤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져 내릴 정도로 많았다. 흡사 보석을 어둠속에 뿌려놓은 듯 빛을 발하고 있는 별들, 그렇게 크고 많은 별과 맑고 선명하게 다가오는 은하수를 본건 어릴 때 평상에 누워서 올려다 본 후론 처음이지 싶다. 나이가 들면서 별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를 잃었고 또한 번잡한 도시의 불빛과 탁해진 공기로인해 별은 하늘에서뿐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도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호주의 하늘에서 나는 어릴 적에 묻어둔 가슴속 보석을 한 움큼 찾아낸 기분이었다.

시드니항. 보타니, 12월30일 질롱을 마지막으로 호주를 출발하였다. 호주의 남해안을 따라서 싱가포르로 향하는 도중 약 5일간은 다시 30도에 가까운 롤링을 견디면서 항해를 하여야 했다. 인도네시아의 순다해협을 지나면서부터는 다시 한 번 해적이 출몰할까 마음 졸여야 했다. 싱가포르에서 홍콩을 거쳐 울산항으로 돌아오는 길.

 

100여 일간 4만여 킬로미터의 긴 여행이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나가고 있었다. 남편이 승선하고 있는 배가 대략 한 달 간격으로 울산항에 기항하였기에 한 항차, 한 달 정도를 예상 했던 동승기간이 어언 석 달을 넘겨서 울산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파랗게 보인다더니 아마도 바다가 넓어서인 듯싶다. 바다는 지구 표면적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고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하면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이 바다일테니 말이다. 도심에서 벗어나 겨울 바다를 보노라면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환희를 느꼈었고 그저 무한히 넓을 것이라는 막연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북태평양을 항해하며 바다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다는 걸 새삼 알았다. 아니 넓을 뿐 아니라 깊고 푸르며 무한한 신비를 가지고 있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예전부터 마도로스라고 하면 하얀 제복과 상징적인 파이프 담배가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막연한 동경으로 바라보던 것과는 달리 그들의 생활은 외롭고 고단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기상과 싸워야 했고 두고 온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을 이겨내야 했다.

동승기간 동안 친절하게 대해 주신 승무원들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선뜻 데리고 나선 남편에게도 고마웠으며 따라 나섰던 내 자신도 대견하게 여겨진다. 이번 동승 항해로 한층 남편을 이해하게 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석 달간의 항해는 참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육지의 일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든든하고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남편을 향한 믿음과 사랑 위에 존경 하나를 더 보탤 수 있는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10년 3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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