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님 선원님

등록일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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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님 선원님

정윤표, 도선사

 

 

1979년 1월 필자가 탄 배는 미국에서 원목을 가득 싣고 베링해를 항해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일본 북해도의 토마코마이항. 2개월 전 갓 선장이 된 필자는 북태평양의 거친 겨울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그저 신나기만 했다. 일등항해사로 승선했던 선박에서 선장으로 진급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승선하기 전 마침 해기사 시험이 있어 응시한 것이 운 좋게 합격으로 이어져 선장의 면허장은 소지하고 있었으나, 아직 실제 선장이 되기에는 일등항하사의 경력을 몇 년 더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다른 선박에서 인사 사고가 있어 필자가 모시던 선장님이 급히 그곳으로 발령받아 가시게 되었고, 마침 회사에는 대기 중인 선장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선장 면허장을 소지하고 있던 필자를 선장의 진급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필자 자신도 나이 29세에 일등항해사에서 선장으로 진급한 것이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회사 내에서도 필자의 진급에 반대 의견이 많았으나, 평소 열심히 근무해온 필자의 능력을 신뢰하신 몇몇 회사 간부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뜻하지 않게 선장이 되어버렸다. 일등항해사에서 바로 선장이 되니 아래 선원들이 아주 기뻐해주었고, 선원들의 성격과 신상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나이 어린 선장으로서 그들을 통솔하기가 용이했으며, 선원들도 필자를 진심으로 공경하며 잘 따라주었다.

1월의 북태평양은 저기압의 쓰레기통이라 불릴 만큼 강력한 저기압이 차례로 몰려와 맹위를 떨치는 곳이다. 만재흘수선까지 원목을 가득 실은 필자의 배는 강풍을 뚫고 전속 항진하고 있었다. 차가운 영하의 날씨 속에 배위로 솟구쳐 날아온 파도의 비말들이 갑판에 가득 실린 원목들 위에 하얗게 얼어붙어 쌓이고 있었으나, 알류샨열도에 둘러싸인 베링해는 풍속에 비해 파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필자의 배는 아츠섬을 통과한 직후 거대한 파도에 일격을 당해 선수부가 파괴되고 1번 갑판의 원목들이 모두 유실되는 한편, 1번 선창의 해치커버들도 모두 유실되어 침수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필자의 배는 폭풍 속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으나, 그후 6일간 모든 선원들이 29세 젊은 선장의 지휘를 적극적으로 따라주어 무사히 목적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 종류의 해양사고는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만약 필자가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선장이었다면 미리 예측을 하고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선원도 필자를 원망하지 않았고, 회사에서는 선원들을 위로하며 누구든 특별휴가를 보내주겠다고 하였으나 아무도 휴가를 택하지 않고 남아주었다. 필자는 선원들의 용기와 헌신에 감동하며 일생을 선원들을 보듬고 함께 가리라 다짐했다.

필자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바다에 나오는 모든 선원들 또한 그렇다. 정신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단지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바다를 오래 지킬 수 없다. 20여년간 해상생활을 하며 수많은 위기와 어려운 상황을 겪었지만, 언제나 이런 자유인들과 함께 꿋꿋하게 헤쳐 나왔다. 그들은 필자의 가족이며 친구며 동료였다. 필자는 그들의 심성을 사랑하고 그들의 용기를 존경한다.

그런 선원들과 함께 일생을 바다에서 살려던 필자의 결심은 뜻하지 않은 계기로 바뀌게 되었으나, 그래도 바다 곁을 떠나기 싫었던 필자는 도선사가 되었다. 이제 도선사 생활을 한 지도 벌써 15년 - 매일 선원들과 만나는 이 직업이 참으로 즐겁다. 국적이 어디건, 배에 오르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지는 선원들과 유쾌한 인사를 나누고, 선교에서는 선장님에게 깍듯이 거수경례를 올리고, 아무리 후배일지라도 󰡐선장님󰡑이라고 존경해 드린다. 필자가 떠나온 먼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에 올라 선원들과 선장을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큰 기쁨이며, 짧은 시간이나마 그들과 나누는 몇 마디의 대화에서 대양의 향기를 느낀다. 출항 도선을 마치고 하선하여, 먼 바다로 선수를 돌린 배를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어주는 필자의 마음은 그들과 함께 있다. 용감하게 다시 항해에 나서는 그들을 필자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들이 다시 항구로 돌아오는 날, 필자는 그들의 배를 최선을 다하여 정성껏 안전하게 부두까지 안내할 것이다.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10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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