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승기

등록일20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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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승기

심연선

 

난 8월 1일. 인천항을 떠나 내 몸을 듬직한 프리지아호에 실은 채 설레는 가슴을 안고 동행을 시작했습니다. 멋진 선장님과 기관장님, 국장님 외 모든 분들이 각자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을 보니, 절로 마음이 놓였습니다.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인 것 같아요. 이렇게 멋진 일을 하고 계시는 남편이 있으니까요. 일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찡하게 여울지기도 했지만, 듬직하고 늠름한 모습에 다시한번 저의 모습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뛰는 모습에 저는 뭐하나 제대로 해준 것이 없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모든 분들이 책임감 있게 일 하시는 것이 제 눈에도 보일 정도니,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도록 만들더군요. 저녁 시간에 한번씩 갖는 모임때도, 의견을 주고 받으시며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시는 선장님께 또 한번의 감동을 했으며,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계속 동승만 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만, 힘이 들었던 건 약간의 뱃멀미로 몇 일간 힘쓰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엔 배의 떨림과 흔들림이 적응이 되어 가는지 아기의 자장가처럼 잠도 잘 오더군요.

 

창 밖을 내다보면 어두운 색을 띈 바다만 한없이 보입니다. 가끔씩 지나가는 배가 조그맣게 보이기도 하구요. 한번은 항해 중에 고래를 보았습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어마한 크기의 고래를...사진으로 남기지 못한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여러가지로 신기한 것들이 저를 더 상기 시켰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항해가 남았는데, 앞으로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가 되더군요. 육지가 아닌 바다위의 선상에서 생활하는 것이 힘든 일인데도 업무이후에 운동하시는 분들, 각자의 취미생활을 즐기시면서 그날의 피로를 잊고 생활의 활력을 찾으면서 지내는 모습, 자신을 CONTROL 해가면서 지내시는 여기 프리지아 분들 참으로 좋아 보였습니다.

적당한 이벤트도 준비하고, 주말에는 육상생활과 다름없이 영화관람도 하고, 저는 여기가 자꾸 좋아지려고 합니다. 한 달이 조금 아쉽겠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운 좋게도 카타르까지가 아닌 미국행으로 항해도 더 길어지고 더할 나위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미국항이 되어서 저랑 신랑은 만나오면서 가장 긴 기간을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연애 때도 매일 얼굴 볼 수 있으려나 하면 출항해 버리고 그나마 결혼 후 오랫동안 같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에 세 달정도 같이 있게 된건 처음인 것 같네요. 그 덕에 신랑 생일 날도 곁에서 축하를 해 줄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답니다.

한국을 떠나온 지 54일째. 힘든 항해와 가끔씩의 따분함으로 인해 그이에게 조금씩 짜증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힘든 건 저보다 그이 라는 걸 알면서 왜 그랬던 걸까요? 아마도 생각보다 그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이에게 투정을 부렸던 듯 싶네요. 전 동승을 시작하자마자 저 만의 조그만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입항 스케줄의 기록은 물론 신랑과 함께 해적당직을 행한 날, 주말에는 잠시나마 수영장에서 튜브타고 둥둥거리며 신나 했던 날, 우리의 기념일도 축하해 달라며 빨간 동그라미가 새겨져 있고, 추석을 맞이하여 연을 만들어 하늘에 날린 날, 새벽당직을 선 날, 그의 생일, 이 주에 읽었던 도서명 등… 해적당직을 선 날은 선수에서 그의 별자리 강좌를 듣기도 했답니다.

연애 때 그의 시골집 밤 하늘을 보면서 별자리를 배웠었는데 도시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지라 모두 잊어먹곤 했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머리 속에 새겨 두었답니다. ‘해적’이라는 말 자체가 조금 섬뜩해서 그런지 당직서는 내내 그의 옆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 했었답니다. 추석명절을 이곳 배에서 보낸 건 처음입니다.

배에서는 명절을 잊고 지내는 건 아닌가 하며 걱정 했던 일이 싹 가셨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갖가지 음식들과 추석분위기에 이끌린 모두의 웃음 띤 얼굴들, 연날리기 행사까지 행해지고...앞으로 명절 때 그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 두기로 했답니다. 어느 날 새벽4시부터 항해당직을 행하러 가는 그이를 따라 저도 브릿지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두운 새벽에 바다를 비추는 달빛은 이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동안 달빛바다를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달빛이 비춰주는 길을 따라 조심조심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하신 분은 저의 마음을 읽기 힘드실 겁니다. 다른 분들도 빨리 동승을 하셔서 달빛바다를 보시고 저의 마음을 이해해 보심이 어떠신지요? 달빛이 배 앞쪽을 비출 때 어둠 속에서 전 동심의 세계로 빠져 들었습니다. 꼭 공룡이 아주 생동감 있게 나무를 헤치고 있는 모습이 내 눈앞에 보여지는 거예요. 조금 날이 밝고 보니 그 공룡은 크레인 이였고 나무는 크레인과 맞물려있는 기둥이더군요.

배가 지나가고 나면 생기는 배 양 옆의 파도때문에 그렇게 생동감 있게 보였던 것인지...공룡이 궁금하신 분도 꼭 동승하셔서 새벽에 브릿지로 올라와 보시길 바랍니다. 아침에 장황하게 하늘에 펼쳐진 해돋이까지 보고서야 방으로 내려 왔습니다. 동승한 후 새벽에 일어난 건 처음인데 그날 너무 피곤해서 점심시간까지 잠을 자 버리고 영화 볼 기회까지 놓쳐버리고 말았답니다.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셔서 승조원들의 생명과 선박의 안전에 책임지시는 분들이 존경스럽고 감사했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브랄타’라는 곳을 들렀습니다. 거기서 저의 일은 배속에서 지브랄타를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일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사진을 보며 여기저기 자랑도 하고 싶고 그 사진을 보며 이번의 큰 경험도 가슴속에서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어서 틈틈이 찍어 두었답니다.

항해 82일째. 길고 긴 항해였습니다. 이제 이틀후면 여기서 하선해야만 합니다. 막상 내릴려니 왜 이리 아쉬운지요. 그이한테 더 잘 해 줄 수도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네요. 프리지아에 머무는 약 3개월간 즐거운 일도 많았고 저한테는 많은 도움이 된 경험이였습니다.

평소에 가까이 하지 못했던 책을 여기 와서는 25권을 읽었더군요. 직장생활에 쫓겨 자주 읽지 못했는데 얼마나 다행인줄 모릅니다. 이에 바톤을 이어 육상에 나가서도 늘 책과 가까이 하려 합니다. 그리고 '마작'이라는 게임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이 곁에서 어깨 넘어로 조금씩 봐왔었는데, 어느덧 제가 옆에서 훈수를 하고 있지 뭡니까! 꼭 한번 제대로 된 게임을 저도 해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저도 어느덧 이곳에 적응해 가며 지내는 것 같아서 여기서 지내는 내 모습이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답니다. 그냥 이대로 신랑곁에서 지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지내는 생이별을 여기분들은 일찍부터 맛보았기에 더욱 더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지낼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마치고 방으로 들어오는 그이의 어깨에 늘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힘들면서도 늘 웃음띄며 일하며 저에게는 힘든 내색한번 하지 않고 오히려 저 걱정을 해주는 그이에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동승을 시작할 때만 해도 밤새 그이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치고서는 다음날 면박을 주곤 했는데, 나중에는 코를 고는 그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낮에 얼마나 피곤에 쫓겼으면...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더군요. 틈틈이 조각을 해서 완성단계에 까지 이른 선장님의 배 일명 ‘K.프리지아’호 명명식에서 명명할 수 있는 영광과 커트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되어 또 한번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일년에 4분의 1을 여기서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두 달만 더 지나면 나이 한살 더 먹게 되더라구요. 저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크나큰 모험 이였고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올 생각입니다. 가끔씩 갖는 모임에서 자주 어울리지 못한 점이 아쉽고, 찍어놓은 맛나는 요리를 배워야지 했는데 저의 게으름으로 결국에는 그 요리의 비법을 알지 못하고 내려서 아쉽기도 하구요.

한달 계획이 생각지도 않게 세 달로 연장되는 바람에 준비물에 미흡한 점이 있었지만, 부족한 대로 더 흥미진진하고 잊지 못할 경험이 되어서 더 좋은 추억을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여기 프리지아호에서 행여나 다음에 동승을 다시 하게 된다면 하루하루가 알찬 생활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데....지난 84일 동안 절 배려해 주신 프리지아 모든분께 감사드리고 늘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 안전한 운항을 기도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주협회, 2003 선원가족 표어․수필공모 입상작)

 

◇ 자료출처 : 해기 200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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