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선사의 아리랑

등록일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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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선사의 아리랑

신 계 우

 

배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때였다. 쿠바에서 냉동 닭고기를 하역하고 호주에서 오렌지를 싣기로 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1항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직 시가이면 파나마 운하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아리랑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국 도선사가 조타실 갑판에 서서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당신은 미국 사람인데 어떻게 아리랑을 그렇게 잘 부릅니까?󰡓

󰡒아내가 한국 사람입니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아리랑이어서 어느새 나도 배웠지요. 나는 기분이 좋으면 이렇게 혼자서 아리랑을 부르곤 합니다. 참으로 아리랑은 세계의 명곡입니다. 부르면 부를수록 가슴에 와닿는 노래입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의 과거를 듣게 되었다.

그는 6․25가 끝난 1952년 인천에서 도선사로 근무했다. 그는 시간이 있으면 택시를 타고 서울로 가 이태원에 있는 미국인들이 모여 노는 카페나 캬바레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시간이 늦으면 서울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날도 그는 이태원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조금 취하여 호텔로 가기 위하여 카페를 나서고 있었다. 그때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미국병사 네 명이 한국 여성을 희롱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 병사들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너희는 한국을 도우러 왔지, 여성 희롱이나 하려고 왔느냐!󰡓

그의 말을 듣던 흑인 병사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너는 재미도 모르니? 우리는 여자가 그립다.󰡓

그의 3단 옆차기에 흑인 병사가 꼬꾸라졌다. 그는 인천에서 도선사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태권도를 연마해 검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흑인 병사가 나뒹굴자 나머지 미국 병사들은 허겁지겁 도망쳤다. 쓰러졌던 흑인 병사도 일어나 도망쳤다.

그의 앞에는 옷이 찢기고 상처투성이인 젊은 여자가 울고 있었다. 그는 잠바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드립니다.󰡓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녀는 스무 살 정도 되는 젊은 여자였는데 아주 미인이었다. 그는 택시를 잡아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녀는 집이 가까워지자 조심스럽께 말했다.

󰡒인사할 겸 한번 찾아뵈려고 하니 주소를 알려주십시오.󰡓

그는 자기 명함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 일이 있은 뒤, 그는 그녀를 잊고 있었는데 한 달 후에 그녀가 찾아왔다. 그의 잠바를 깨끗이 세탁하여 돌려주기 위해 왔던 것이다. 물론 그녀의 부모와 함께였다. 그는 유명한 음식점에서 그녀 부모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녀의 부모가 그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녀가 부모 말을 통역해 주었다. 그녀는 당시 서울 명문대의 영문과 3학년생 이어서 영어가 능숙했다. 이것이 그녀와 그가 교제를 시작한 인연이었다.

그녀에게 그는 참으로 큰 은인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그날 밤에 그녀에게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토요일마다 그녀가 그를 찾아왔다. 그도 서울로 와서 서울의 고궁을 거닐며 그녀와 데이트를 했다. 그렇게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아주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는 2년의 계약이 끝나 미국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 토요일, 그날도 두 사람은 서울 창경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리차드 씨, 저를 좋아하세요?󰡓

󰡒예, 나는 미숙 씨를 좋아합니다.󰡓

󰡒언제 미국으로 돌아갑니까?󰡓

󰡒아마, 3개월 후가 될 겁니다.󰡓

그날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미숙과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숙은 이미 부모에게 리차드와 결혼하겠다는 말을 해둔 상태였다. 당연히 그녀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무남독녀가 미국 남자와 결혼하겠다니 누가 허락할 것인가. 어머니가 울면서 말했다.

󰡒미숙아, 우리나라에도 좋은 사람이 많이 있다. 너를 구해준 은인이기는 하지만 하필이면 미국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말이냐?󰡓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토요일마다 그를 찾았고 그가 귀국 2개월을 남겨두고 있었을 때 결혼하자고 먼저 말했다.

󰡒리차드 씨,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와 결혼해주겠습니까?󰡓

󰡒미숙 씨가 원한다면 좋아요.󰡓

󰡒나와 결혼하려면 미국에 있는 리차드 씨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쉽게 되겠어요?󰡓

󰡒미숙 씨, 우리 부모님은 아무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전화 한 통으로 족하지요.󰡓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약속을 했지만 그녀의 부모는 시종일관 미국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 리차드는 이제 귀국을 한 달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죽어서라도 리차드를 따라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아침 식사 시간이었는데 그녀가 식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 부모가 방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약을 먹고 쓰러져 있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옮겼고 그녀는 무사히 깨어났다.

그녀 어머니가 울면서 말했다.

󰡒미숙아, 리차드와 결혼해라. 내가 졌다.󰡓

그녀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도 부모 마음을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무남독녀가 미국 사람과 결혼한다는데 어느 부모가 허락할 것이냐? 나도 이제 리차드와 결혼을 찬성한다. 리차드를 집으로 데려 오녀라.󰡓

그녀 부모는 그를 아주 정중히 맞이했다. 이제 그는 사위가 될 사람이었다. 그녀 아버지가 말했다.

󰡒리차드, 내 딸을 잘 부탁하네. 나는 죽을 때까지 하느님께 미숙이가 행복하기를 빌며 살 것이네.󰡓

미숙 어머니도 말했다.

󰡒미숙이가 한국을 떠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네. 그저 행복하게 살아주게.󰡓

결혼식은 리차드가 출국하기 일주일 전에 치러졌다.

그렇게 어렵사리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미숙은 외로울 때마다 아리랑을 불렀다. 부모를 모셔야 할 무남독녀가 부모를 버리고 미국으로 왔으니 늘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리차드는 아내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내의 기분을 읽고는 했다. 고향이 그리울 때 그녀가 부른 아리랑은 아주 슬폈다.

그는 아내가 슬픈 아리랑을 자주 부르면 아내를 한국에 보내주었다.

그가 시간이 있으면 같이 가고 시간이 없으면 아들과 아내만 한국에 보냈다.

󰡒나는 한국 선원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요. 내가 인천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도선사로 근무해서 정이 든 것도 하나의 이유고, 아내의 나라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아내는 지금 어니 있어요?󰡓

󰡒내 아내는 한국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도우려고 앞장섭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지금 한국 사람 하나가 큰 어려움이 당했는데 그를 도와야 한다며 며칠 전에 뉴욕으로 갔어요.󰡓

그는 파나마 운하 도선사로 근무하면서 파나마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미국 국적을 취득한 후라 교포를 돕는 것이 쉬웠을 것이다.

그는 조타실에서 저녁 식사를 했는데 김치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는 조리장을 시켜 약간의 김치를 비닐봉지에 담아 주었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했던 우리나라 항해사들은 한번쯤은 그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구수한 아리랑 노래를 들었을 것이다. 그는 외국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나에게 아리랑을 불러주었다.

<신강우 선장의 유쾌한 항해기>에서


ㅣ자료출처 : 해기 2006년 4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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