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일지, 황천항해
신 익 교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쌓여 있어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해양국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미 선진국들은 바다를 제패함으로써 부자 나라로 발돋움했고 또한 미래의 꿈을 심어주는 국가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키케로의 말이 생각났다. 바다를 제압하는 자는 언제인가 제국마저 제압하기에 이른다.라고… 바다는 나에게 있어 영원한 안식처요 구원자이다. 아주 젊은 나이에 바다와 함께 선원 생활을 했으니 소위 말하는 뱃놈(?)이라고 할까. 여하튼 바다와 배, 선원에 대한 기억은 늘 새롭게 나를 일깨워 준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내가 <카렌타 하베스트 호(號)>라는 선명을 가진 우일상운(주) 냉동 운반선에 승선하여 칠레(CHILE) 발파레이소 항구에서 사과, 배, 포도 등의 과일을 선적하여 미국 동부 지역에 위치한 발티모아 항으로 가게 되었다. 출항한 지 꼭 7일만에 파나마 발보아 항에 닻을 내렸다. 이 곳에서 잠시 대기하다 오후 6시경쯤 되자 우리 배에 파이롯트와 라인맨이 승선했다. 바로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서다.
운하는 갑문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선체는 와이어 로프로 연결한 궤도차로 배를 끌고 계단을 넘나든다. 이 때부터 바닷물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좁은 뱃길로 산을 뚫고 계곡을 돌아 산 정상 카툰 호(湖)에서 쉬었다가 크리스토발 항을 뒤로하며 새벽 5시경에 파나마로 빠져나와 카리브해에 당도하여 에메랄드빛 심연속으로 배는 빨려들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카리브해는 자마이카, 쿠바, 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 둘러쌓인 지형일 뿐 아니라 허리케인의 본향(本鄕)이기도 한데 바로 이 곳에서 1990년 경오년 즉 말해 새해를 맞이했으니 그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 점차 밝아오는 태양 아래서 향수를 달래며 고국 산천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우리 집사람, 아들, 딸들의 얼굴이 겹쳐서 떠 오르기 때문에 마음은 벌써 한국땅에 가 있는 것이다. 선원들은 간밤의 운하 통과로 피로한 눈빛이 역력했으나 오늘이 신정이라 그런지 모두 갑판 위에 올라 쉼호흡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나는 이날 조리장이라는 직책에 어울리게 용신제(龍神祭)를 준비하면서 위패는 없었지만 그 앞에서 제사 음식을 진설한 후 선장 이하 전 선원이 예(禮)를 올리며 오로지 무사항해와 가족의 평안을 기원했다. 당직자를 제외한 나머지 선원들은 푸짐한 음식과 함께 노래 부르고 덕담과 오락회로 보내던 중 밤 10시경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고 황천항해 대비 방송이 울려퍼질 때 선체는 요동치고 파도소리가 귀청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미 있게 놀던 오락과 노래는 곧바로 중단되고 황천항해를 대비하여 만전을 기하였지만 배는 성난 사자의 울부짖음처럼 더 크게 흔들렸고 파도 역시 배를 덮을 정도로 밀려왔다. 선체는 이미 35도 상으로 기울어져 일어설 줄 모른 채 복원력을 잃고 있었다. 머리맡에 있던 구명복 역시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순간이었다. 만 2천톤급 냉동선도 그야말로 태풍 앞에서는 일엽편주에 불과했다.
선체는 물 속에 잠기어 잠수함같이 파도만 맞이할 뿐… 나는 당시 광경을 시조로 읊었다.
그런데 노련한 선장과 기관장을 위시하여 전 선원이 혼연일체가 된 단결심으로 3박 4일간의 항해 끝에 비로소 돌풍의 심장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천우신조랄까, 아니면 조상이 돌본 탓일까. 하여튼 우리 배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평소대로 항해를 계속했다. 평온을 찾은 배 안에서 위성으로 받아 볼 수 있는 TV를 통하여 보니 미국은 200년만의 한파에다 눈까지 겹쳐 온천지가 설경(雪景)으로 변해 있고 집이며 모두가 눈(雪)에 묻혀 아우성을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더 가관인 것은 갑작스런 추위로 말미암아 부두가 붕괴되고 수많은 가옥들이 전파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우리 배는 돌풍을 만난 지 일주일만에 드디어 발티모어 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입항 수속관이 우리 배가 35도 기울어진 것을 보고 크게 놀라며 어떻게 항해를 했느냐며 매우 신기한 듯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배 안에 선적한 화물들은 파손된 것이 많아 상품가치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검수원은 검수를 중단했다. 피해액은 보험으로 처리한다고 전하여 왔다. 수속을 마친 후 이 곳에 상주하는 현대선식업을 하는 김정수 회장 내외분께서 본선을 방문하여 모든 선원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김치며 불고기 파티와 노래와 춤으로 파도에 시달린 몸을 풀어내었을 뿐아니라 국제전화로 가족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하는 등 진한 모국애를 느꼈다. 03시경 회장님댁에서 나와 귀선하던 중 24시간 운영하는 수퍼마켓에 들러 생필품을 구입했다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양옆에 치워진 눈 쌓인 모습은 높은 언덕과도 같았다.
우리 일행을 초청한 김회장의 인품이 돋보였다. 2시간 넘게 고속도로로 달려간 그의 자택은 마치 성처럼 큰 저택이었다. 미국에서 맞이한 1990년 새해 새날 끝없이 펼쳐진 대설원에서 파도를 이겨낸 우리 선원들의 얼굴을 보면서 바로 우리가 바다를 개척하는 한국인이 아닌 가 되내어 보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지난 항해일지와 당시 VTR을 방영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 하는 순간이었다.
출항의 힘한 뱃길 파랑이는 카리브해
꿈틀대는 넵투누스* 기도 마음 깊어갈 때
스치는 휘파람 끝이 창문틀에 걸쳐 있고
뭉쳐진 먹구름이 별빛도 밀어내어
서북간 부는 바람 반란을 일으킨다
배 꼬리 엔진 파열음 빈 하늘을 채우고
돌풍의 사잇길로 선체는 뒤흔들리고
냉동선 뒤척이다 35도 기울어져
제 의지 상실한 듯이 일어설 줄 모르네
사과 과일상자 어수선한 통제선 위에
선수는 무릎 꿇어 삼각파도에 조아리고
선미는 숨결 고르며 기지개를 켠다
삼일의 황천항해 달빛이 문을 열어
졸린 눈 치켜 뜨고 조타실에 모인 선원
갈매기 날개짓 소리, 해조음이 실어낸다.
ㅣ자료출처 : 海바라기 2007년 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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