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일지, 황천항해

등록일20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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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일지, 황천항해

신 익 교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쌓여 있어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해양국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미 선진국들은 바다를 제패함으로써 부자 나라로 발돋움했고 또한 미래의 꿈을 심어주는 국가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키케로의 말이 생각났다. 󰡒바다를 제압하는 자는 언제인가 제국마저 제압하기에 이른다.󰡓라고… 바다는 나에게 있어 영원한 안식처요 구원자이다. 아주 젊은 나이에 바다와 함께 선원 생활을 했으니 소위 말하는 뱃놈(?)이라고 할까. 여하튼 바다와 배, 선원에 대한 기억은 늘 새롭게 나를 일깨워 준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내가 <카렌타 하베스트 호(號)>라는 선명을 가진 우일상운(주) 냉동 운반선에 승선하여 칠레(CHILE) 발파레이소 항구에서 사과, 배, 포도 등의 과일을 선적하여 미국 동부 지역에 위치한 발티모아 항으로 가게 되었다. 출항한 지 꼭 7일만에 파나마 발보아 항에 닻을 내렸다. 이 곳에서 잠시 대기하다 오후 6시경쯤 되자 우리 배에 파이롯트와 라인맨이 승선했다. 바로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서다.

운하는 갑문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선체는 와이어 로프로 연결한 궤도차로 배를 끌고 계단을 넘나든다. 이 때부터 바닷물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좁은 뱃길로 산을 뚫고 계곡을 돌아 산 정상 카툰 호(湖)에서 쉬었다가 크리스토발 항을 뒤로하며 새벽 5시경에 파나마로 빠져나와 카리브해에 당도하여 에메랄드빛 심연속으로 배는 빨려들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카리브해는 자마이카, 쿠바, 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 둘러쌓인 지형일 뿐 아니라 허리케인의 본향(本鄕)이기도 한데 바로 이 곳에서 1990년 경오년 즉 말해 새해를 맞이했으니 그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 점차 밝아오는 태양 아래서 향수를 달래며 고국 산천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우리 집사람, 아들, 딸들의 얼굴이 겹쳐서 떠 오르기 때문에 마음은 벌써 한국땅에 가 있는 것이다. 선원들은 간밤의 운하 통과로 피로한 눈빛이 역력했으나 오늘이 신정이라 그런지 모두 갑판 위에 올라 쉼호흡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나는 이날 조리장이라는 직책에 어울리게 용신제(龍神祭)를 준비하면서 위패는 없었지만 그 앞에서 제사 음식을 진설한 후 선장 이하 전 선원이 예(禮)를 올리며 오로지 무사항해와 가족의 평안을 기원했다. 당직자를 제외한 나머지 선원들은 푸짐한 음식과 함께 노래 부르고 덕담과 오락회로 보내던 중 밤 10시경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고 황천항해 대비 방송이 울려퍼질 때 선체는 요동치고 파도소리가 귀청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미 있게 놀던 오락과 노래는 곧바로 중단되고 황천항해를 대비하여 만전을 기하였지만 배는 성난 사자의 울부짖음처럼 더 크게 흔들렸고 파도 역시 배를 덮을 정도로 밀려왔다. 선체는 이미 35도 상으로 기울어져 일어설 줄 모른 채 복원력을 잃고 있었다. 머리맡에 있던 구명복 역시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순간이었다. 만 2천톤급 냉동선도 그야말로 태풍 앞에서는 일엽편주에 불과했다.

선체는 물 속에 잠기어 잠수함같이 파도만 맞이할 뿐… 나는 당시 광경을 시조로 읊었다.

그런데 노련한 선장과 기관장을 위시하여 전 선원이 혼연일체가 된 단결심으로 3박 4일간의 항해 끝에 비로소 돌풍의 심장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천우신조랄까, 아니면 조상이 돌본 탓일까. 하여튼 우리 배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평소대로 항해를 계속했다. 평온을 찾은 배 안에서 위성으로 받아 볼 수 있는 TV를 통하여 보니 미국은 200년만의 한파에다 눈까지 겹쳐 온천지가 설경(雪景)으로 변해 있고 집이며 모두가 눈(雪)에 묻혀 아우성을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더 가관인 것은 갑작스런 추위로 말미암아 부두가 붕괴되고 수많은 가옥들이 전파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우리 배는 돌풍을 만난 지 일주일만에 드디어 발티모어 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입항 수속관이 우리 배가 35도 기울어진 것을 보고 크게 놀라며 어떻게 항해를 했느냐며 매우 신기한 듯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배 안에 선적한 화물들은 파손된 것이 많아 상품가치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검수원은 검수를 중단했다. 피해액은 보험으로 처리한다고 전하여 왔다. 수속을 마친 후 이 곳에 상주하는 현대선식업을 하는 김정수 회장 내외분께서 본선을 방문하여 모든 선원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김치며 불고기 파티와 노래와 춤으로 파도에 시달린 몸을 풀어내었을 뿐아니라 국제전화로 가족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하는 등 진한 모국애를 느꼈다. 03시경 회장님댁에서 나와 귀선하던 중 24시간 운영하는 수퍼마켓에 들러 생필품을 구입했다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양옆에 치워진 눈 쌓인 모습은 높은 언덕과도 같았다.

우리 일행을 초청한 김회장의 인품이 돋보였다. 2시간 넘게 고속도로로 달려간 그의 자택은 마치 성처럼 큰 저택이었다. 미국에서 맞이한 1990년 새해 새날 끝없이 펼쳐진 대설원에서 파도를 이겨낸 우리 선원들의 얼굴을 보면서 바로 우리가 바다를 개척하는 한국인이 아닌 가 되내어 보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지난 항해일지와 당시 VTR을 방영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 하는 순간이었다.

 

 

출항의 힘한 뱃길 파랑이는 카리브해

꿈틀대는 넵투누스* 기도 마음 깊어갈 때

스치는 휘파람 끝이 창문틀에 걸쳐 있고

 

뭉쳐진 먹구름이 별빛도 밀어내어

서북간 부는 바람 반란을 일으킨다

배 꼬리 엔진 파열음 빈 하늘을 채우고

 

돌풍의 사잇길로 선체는 뒤흔들리고

냉동선 뒤척이다 35도 기울어져

제 의지 상실한 듯이 일어설 줄 모르네

 

사과 과일상자 어수선한 통제선 위에

선수는 무릎 꿇어 삼각파도에 조아리고

선미는 숨결 고르며 기지개를 켠다

 

삼일의 황천항해 달빛이 문을 열어

졸린 눈 치켜 뜨고 조타실에 모인 선원

갈매기 날개짓 소리, 해조음이 실어낸다.

 

ㅣ자료출처 : 海바라기 2007년 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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