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외취업선 승선기

등록일20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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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외취업선 승선기

김 성 재

 

-1979년 4월 20일 금요일 동지나해 항해 중

어제 저녁에는 바다상태가 나빠서 배의 레이싱이 심했다. 따라서 주기(主機)의 감속 운전이 불가피 했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좋아져 바다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에 주기운전을 정상화시켰다. 배의 요동은 심하게 몸을 피로하게 만들고 단잠을 못 이루게 한다. 아침 식사 후 기관실에 들어가 각 엔진 상태를 점검하고 올라왔다. 마음에 안정을 위해서 서예나 좀 해 볼까하고 책상머리에 앉아있다. 승선 후 어제가 시간을 가장 가치 있게 보낸 하루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모처럼 수상도 조금 쓰고, 카세트 레코다를 활용하여 영어회화 공부도 했다. 영어회화공부에 있어서도 지금까지는 그냥 막연하게 히어링만 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완전히 저절로 외워질 때까지 계속 반복하여 녹음하고 또 듣고 했다. 그랬더니 그 효과가 배가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979년 4월 19일 목요일 동지나해 항해 중

배의 요동이 심할 때는 꿈자리가 사납다. 따라서 단잠을 이루지 못했다. 배가 동지나해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실내온도가 많이 올라갔다. 그리고 배의 요동이 심해졌다. 배의 요동은 사람을 피로하게 만든다. 그리고 많은 꿈을 꾸게 한다. 요새는 승선생활은 이 배 정도로 마쳐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1979년 4월 21일 필리핀동해안 항해 중

어제 오후와 오늘 아침에는 갑판위에서 운동을 좀 했다. 요새 며칠째 단잠을 못자고 있다. 그러니 자연히 머리가 개운치 못하고 띵하다. 아침 식사 후 약 1시간정도 상념에 잠겨보았다. 아무래도 사람은 바빠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 시간을 짜임새 있게 보내기 위해서 일과표를 만들었다. 마침 지금이 일기 쓰는 시간이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1979년 4월 23일 월요일 잠보안가 항 묘박 중

새벽 3시45분에 잠보안가 내항에 묘박했다. 아침에 입항 수속관리는 나왔지만 접안은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에 한다고 한다. 조그만 배 세 척이 노를 저서 우리 배 선미 근처에 왔다. 한배에 네 댓 명씩 타고 있다. 라면을 달라고 소리친다. 또 한배는 조개껍질 산호 등을 가지고 와서 구두와 바꾸자고 소리친다. 4월 24일 화요일 잠보안가 항 부두에 접안 했다. 아침 5시 10분에 상륙해서 7시15분에 들어왔다. 부두에서 시가지까지 걸어서 갔다 왔다. 해 변가 도로가 잘 정비 되어 있고 벤치도 간간히 마련 되어 있었다. 미화20불을 필리핀 돈으로 바꿔서 기관부 선원들 술을 사주었다. 술값이 가는 곳 마다 다르고 안내하는 삼륜차 값도 차마다 달랐다.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했다.

 

-1979년 월 29일 일요일 비스리그 공장부두

어제 오후 2시45분에 비스리그 공장부두에 접안했다. 1964년도 그러니까 15년 전에 전 대한해운공사 소속 부산호로 이 항구에 입항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조그만 한 제재소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펄프공장, 제지공장 합판공장 등 많은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비스리그시도 그때는 조그만 한 마을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큰 도시로 발전 되어 있었다. 점심식사 후 상륙해서 시가지 구경을 하고 사진도 찍고 했다. 그리고 파인애플 통조림과 망고 등도 사왔다.

 

-1979년 5월 4일 금요일 탄장마니 항

아침8시에 탄장마니라는 포구 앞에 묘박했다. 보르네오의 서북단 쪽으로 흐르는 쿠아라라장 강 하구에서 22마일 정도 들어온 곳이다. 지도에도 안나와 있을 정도로 적은 항이다. 브리지에 올라가 해도에서 찾아보았다. 탄장마니라고 표시해 놓은 곳이 있었다. 그러나 배에서는 건물하나 보이지 않고 묘박중인 배만 3척 보였다. 강변이 꼭 미국 미시시피 강을 연상케 한다. 도시에 있는 건물가 같은 것은 전혀 없고 오직 묘박지만 있기 때문이다. 이묘박지 근처에 술집이라도 하나 만들면 선원을 상대로 한 장사가 될 것 같은데 그런 술집도 없다.

선원은 항해 후에는 땅을 밟아보고 싶어한다. 이곳 탄장마니에 묘박한지 꼭 5일째 된다. 그러나 아직 땅 한번 밟아보지 못했다. 선장은 이곳이 상륙금지 구역이라고 하면서 통선을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국가도 아닌데 상륙금지구역이 될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선장의 조치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선원의 처지다. 나 같은 사람은 승선이 수양의 목적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선원들 중에는 갑갑하게 느끼는 선원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5월 14일 월요일 싱가포르 셈바우항 접안 중

탄장마니에서 당초 예정했던 적하작업이 다 종료되지 않았는데도 명일 7월 14일 14시에 출항한다고 한다. 싱가포르에 짐이 많아서 이곳 짐의 일부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통신장과 주자가 교대된다. 이들 편에 한국 신문과 우편물이 올 것으로 기대된다. 배 타러 나올 때는 승선 중 시간을 선용할 생각이었는데 잘 안된다. 하기야 일주일이나 묘박하고 있으면서 땅 한번도 못 밟아보니 그러기도 하겠지만 어쩐지 지루하고 책보기 까지도 싫어 졌다. 어제 상륙해서 카세트 레코다와 카메라를 하나씩 샀다. 아주 적고 간단한 것으로 샀다. 그런데 디스카운트를 않고 사서 바가지를 썼다. 나의 쇼핑은 항상 어리석음이 따른다는 자책감이 따른다. 시내로 나갈 때와 돌아 올 때 시내버스를 타고 또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시내관광을 했다. 도시에 공간이 많고 공간에는 잔디와 나무가 무성했다. 백년대계의 도시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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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海바라기 2007년 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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