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등록일20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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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최동희

 

일주일이 지나고 집에 오는 어느 토요일이었다. 어느새 완연한 봄을 알리 듯 길가엔 수를 놓은 자줏빛 광대나물이나 하얀 찔레꽃이 연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나는 언덕을 올라채어 집에 다다랐다.

󰡒아부지, 실장어는 많이 잡았데요?󰡓

󰡒아따, 요새는 인자 장어도 다 가부렀는가 들도 안해야아.󰡓

󰡒그래도 계속 잡힌께 다니는거 아니데요? 얼마나 잡았는디 그런데요?󰡓

󰡒요즘 계속 한 150~200마리밖에 안 나오제. 짱어 잡는 것도 그만 해야 쓸랑갑다야.󰡓

학교 기숙사에서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잡은 장어 개수가 안부 인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말도 슬프게만 느껴진 지 오래. 이젠 실장어가 나지 않는다는 아빠의 얼굴엔 그늘이 축 졌다. 아버지는 지난겨울부터 올 본까지 실장어 잡이를 위해 바다에 나가셨다. 나도 그런 아버지를 돕기 위해 배를 타면서 고기 잡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새삼 느꼈다. 그 때 달력은 2월 하순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잠깐 몸을 씻기 위해 육지로 나오신 아버지를 따라 나는 점암 선착장으로 향했다. 점암 선착장 앞에 묶인 선외기를 타는 것부터 순탄치 않았다. 선외기 안은 온통 바닷물로 가득 차 앉을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어두운 밤바다를 가르는 선외기의 기계음은 너무 시끄러웠고, 바닷바람은 매섭고 날카로웠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은 자꾸 얼굴을 내리쳤고, 장갑도 끼지 않은 두 손은 살결이 찢어져 나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가문 든 땅이 쩍 하고 갈라지듯. 한 5분을 달렸을까? 선외기는 바다위에 떠 있는 바지선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는 뱃머리 닻줄을 오라이 말뚝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이어 빠른 동작으로 바지선에 내려 삿갓대로 이용하여 선외기를 바지선 가까이로 밀착시킨 후 줄로 묶었다. 밤이라 잘 보이지도 않은 바지선을 발로 더듬거리며 나는 바지선 안으로 들어섰다. 케케묵은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먼저 자극했다. 그리고 방 안은 실장어 잡이에 필요한 여러 물건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아버지는 바지선에 도착하자 숨 고를 틈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바다 한 가운데서는 식수를 제외한 모든 물은 바닷물을 끌어 올려 사용하게 되는데, 바닷물을 끌어 올릴 기계를 손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바지선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여 이거? 아부지 왜 이렇게 흔들린데요? 어지러운디.󰡓

󰡒저 밖에서 선외기 지나강께 그러는 거여.󰡓

선외기가 지나가면 매일 같이 흔들린다는 바지선. 이제는 차츰 익숙해져서 멀미도 하지 않고 실장어를 잡으신다지만 그전에 이런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아버지도 매일 같이 흔들리는 바지선에서의 생활처럼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는 어느새 멀미에 못 이겨 잠이 들고 말았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새벽 2시 반이 된 시간.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버지는 어느새 그물 넣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 물때가 표시된 달력을 보니 고조가 7시 10분이었다. 그물은 고조가 되기 4~5시간 전에 바다에 집어넣고, 고조 시간이 되면 그물을 모두 걷어 올린다.

󰡒어이~ 딸내미. 인나는가? 와서 그물 넣는 것 좀 보소.󰡓

󰡒지금 그물 넣는데요?󰡓

그렇다고 고래를 끄덕이시는 아버지를 보고 나는 채 뜨지 못한 눈을 연신 비비며 밖으로 나갔다. 여명이 가져다주는 회색빛 풍광은 갯내음과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파도는 이따금 몸을 부풀려 바지선을 집어 삼키기라도 할 듯 거칠게 밀어 들곤 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경운기 엔진을 돌리고 바지선 앞에 놓여진 그물을 하나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그물4개를 다 넣자 그물이 바다 위에서 넓게 퍼지더니 이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화산 풀발 후 마그마가 세어 나온 것 같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런 후 아버지는 기계를 만지시더니 바지선 앞에 메달아 두었던 한 개의 쇠파이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양 옆에 길게 세워진 도르래도 함께 움직였다. 쇠파이프의 역할은 그물을 올리고 내리기 위한 역할을 하며 스티로폼이 달린 쇠파이프는 물살이 센지 아닌지를 가늠케 하는 역할을 했다. 쇠파이프가 다 내려갔을 때 쫌 아버지는 기계를 만져 그물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4시간이 지나갔다. 시계 바늘이 고자 7시 10분을 가리키자 아버지는 내렸던 그물을 모두 모두 끌어올리셨고 다른 바지선들도 경운기 엔진을 돌리며, 어느새 아침은 밝아오고 있었다. 아버지가 대야에 털어온 실장어를 고르기 위해 나는 먼저 바가지를 준비했고 그 안에는 바닷물을 조금 담았다. 그리고 모기장으로 덮여져 있는 책상을 준비했다. 많은 양의 실장어를 모두 책상 위로 털어냈다. 손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실장어의 몸은 아주 맑고 까만 점하나가 박혀 있다. 한 마리에 천원만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오백 원의 시세가 박해도 많이 잡아야 우리 삼남매의 공부를 시킬 수 있다고 하신 아버지. 오늘 만큼은 많이 잡히길 바랄 뿐이었다. 어느새 아버지는 내 쪽으로 오셔서 실장어를 고르셨다.

󰡒딸내미. 요, 요러고 하라고. 손목 스냅을 이용하는 거제. 요, 요러고 해서 장어는 추려내고 아닌 것은 요러고 밀어불고.󰡓

󰡒아따 오늘 처음 했는디 어떻게 손목 스냅이 나온 데요?󰡓

아버지와 여러 차례 씨름을 하며 실장어를 골랐다. 시간이 지나자 고무장갑을 낀 손은 얼어 버렸는지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문둥병 환자의 살이 썩어 신체의 일부가 뚝뚝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후 2시간이 지나서야 아버지와 나는 실장어 고르는 일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 실장어 개수를 세어 팔기 위해 육지로 나왔다. 이것은 실장어를 팔기 위한, 새로운 항해를 위한 첫 출항이었다. 물결의 방향, 파도의 세기 모두 예측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손 한 뼘도 채 되지 않은 실장어의 아주 맑은 살점처럼 아버지는 오늘도 배를 몰아세운다. 봄기운을 못 이기고 새순을 잔뜩 내밀고 선 보랏빛 오동 꽃의 자식들을 생각하며.

 

ㅣ자료출처 : 海바라기 2007년 7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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