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의 낚시

등록일2020-07-10

조회수89

 

대양의 낚시

이준

 

-희망봉 앞바다 정박-

1978년 봄 2등 항해사 때의 일이었다. 일본 나가사키(長崎)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약 한달간에 걸친 신조선(新造船) 인수 작업을 끝마치고 화려한 진수식을 한 뒤 총톤수(Gross tonnage)120,000Ton의 Bulk Carrier(산적 화물선)인 M/V 󰡒SOUTH FORTUNE󰡓호는 나가사키 항을 뒤로한 채 뱃머리를 남으로 하여 처녀 출항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적재항(Loading Port)인 호주의 Dampier항이었다. 호주까지의 항로는 날씨가 좋아 순항을 했다고 기억된다. 오끼나와 군도와 북회귀선(北回歸線-북위 23.5도)을 통과하고 필리핀 민다나오 섬과 적도(赤道)를 통과한 후 불가사리처럼 생긴 셀레베스 섬을 끼고 돌아 호주 북서부의 Dampier항에 도착했다.

입항한 날 저녁, 그곳의 관료들과 지방 유지들을 초대하여 선상파티를 열었다. (의례적으로 처녀출항 후 첫번째 도착항구에서 선상파티를 베풂) 내 옆에 앉아 저녁식사를 하던 자태가 고왔던 호주 모 기관장의 부인은 나무 젓가락을 보고 대단히 신기한 듯 연신 훑어보고 내게 그 사용법을 물었다. 난 나무 젓가락의 사용법을 시범을 곁들여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나무 젓가락 한 세트를 선물로 주었다. 그녀는 대단히 기뻐하였고 만족해 하였다.

Dampier항에서 철광석(Iron ore)을 만선하고 양하항(Discharging Port)인 미국 Baltimore항을 향하여 출항하였다. 본선이 너무 커서 파나마 운하(Panama Canal)를 통과할 수 없었기에 인도양을 지나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돌아 미국으로 가는 항로를 택했다. 예상 항해 일수는 약 한달 남짓… 마다가스카르 섬 아래쪽이자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남쪽 끝 자락이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는 인도양의 서쪽 끝 바다 해상 위를 항해할 때 갑자기 엔진 고장이 났다.

기관실에서 엔진을 수리하는 동안 본선은 자력을 잃은 채 해풍과 해류를 따라 Pitching과 Rolling을 반복하면서 정처 없이 표류(Drifting)하고 있었다. 해상상태는 다행히 남극으로부터 오는 간헐적인 큰 파장의 너울이 있었으나 그런대로 위험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너울 이였다. 어느덧 대양에 어둠이 내리고 온사방을 둘러보아도 수평선 밖에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대양의 밤바다 위에 본선은 갑판 위의 수은등을 포함한 모든 등에 불을 밝혀놓은 채로 마치 한 조각 일엽편주 마냥 넘실대는 파도에 실려 떠 내려가고 있었다.

기관실에서 엔진 수리에 전념하고 있을 때, 타부서의 비당직자들은 갑판 위에 나와 오징어 낚시를 했다. 난 Bridge(선교)에서 내려와 갑판위로 나가 보았다. 여러 명의 선원들이 본선 좌, 우현에서 오징어를 잡느라 열중하고 있었다. 벌써 여러 마리가 잡혀져 있었다. 지금도 서툴지만 이 때만해도 난 낚시에는 문외한 이었다. 낚시 경험이라고는 없었으니… 하지만 그땐 왠지 호기심이 생겨 오징어 낚시가 하고 싶었다. 오징어는 밝은 불빛아래 불을 보고 모여든다는 사실을 이 때 비로소 알게 되었으며 오징어 잡는 낚시바늘은 수류탄 축소형 모양의 타원형 추에 뾰족하고 아주 날카로운 바늘이 많이 꽂혀있는 특이한 것임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또한 오징어는 낚시바늘에 미끼가 없어도 낚시바늘을 문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럴 즈음, 내가 드리운 낚시줄에 어떤 물체가 낚시줄을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 줄을 잡고 있는 손목에 전해져 왔다. 옆에서 낚시줄을 드리우고 서있는 거문도 출신의 조타수 김 모씨에게 상황을 얘기했더니 오징어가 낚시 바늘을 탁탁하고 건드릴 때 낚시줄을 한번 채어 보라고 한다. 가르쳐 준대로 느낌이 전해져 올 때 낚시줄을 순간적으로 채어보았다. 그랬더니 무언가 묵직한 것이 바늘에 걸렸구나 하는 확실한 감각이 손목으로 전해져 왔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줄을 잡아 당겼다. 양손으로 줄을 잡아 당겼는데 처음에서 smooth하게 잘 올라 왔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낚시줄에 tension이 느껴지며 낚시줄이 멈추어 버렸다. 아무리 세게 당겨도 꼼짝하질 않았다. 다시 옆 자리의 낚시 고수에게 물었다. 고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럴 때는 잠시 줄을 늦추었다가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어느순간 갑자기 세게 당겨보라󰡓라고 한다. 고수가 가르쳐 준 대로 낚시줄을 늦추었다가 약간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 일순간 낚시줄을 세게 당겼다. 그랬더니 낚시바늘에 걸려있던 어떤 물체가 어딘가 붙어 있다가 한쪽이 떨어지는것을 느꼈다. 또다시 낚시줄을 세게 잡아 당겼다. 그랬더니 다른 한쪽도 붙어 있던 곳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물체는 오징어였고 어딘가 찰싹 달라붙은 곳은 본선의 해면 아래에 있는 선체였었다. 오징어의 여러 발에 보면 동글란 것들이 많이 달려있는데 양쪽의 긴발로 선체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빨판의 흡인력에 의해 그 힘이 대단하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한동안 잘 올라오던 물체가 해면과 약 5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또다시 아까처럼 본선 선체에 찰싹 달라붙었다. 요령은 전과 동(同)으로 하여 끌어올렸다.

해면 위에 올라오는 물체를 본 순간 아주 커다란 오징어였음을 알게 되었다. 곧장 끌어올려 갑판 위에 던졌다. 그랬더니 말로만 들어봤던 시커먼 먹물을 확 쏟아 내곤 펄떡거렸다. 그 후에 또 한 마리를 잡아 난 그날 두 마리의 오징어를 잡았다. 근데 과연 아프리카의 오징어는 컸다. 크기가 우리나라의 큰 오징어 배는 되어 보였다.

그리곤 약 30분 후 거문도 김씨가 삶아온 내가 잡았던 그 오징어를 Bridge에서 Captain(선장)과 함께 맛있는 초장에 찍어 먹었는데 고기가 야들야들하고 쫀득쫀득한 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때의 오징어보다 더 맛있는 오징어를 먹어 보질 못했다. 약 반나절에 걸쳐 엔진수리를 완료하고 본선은 목적지를 향하여 외롭고도 긴 항해를 계속하였다.

 

◇ 자료출처 : 해기 2005년 5월호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