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우의 ‘월트 휘트먼 해양시’ 감상

등록일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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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의 ‘월트 휘트먼 해양시’ 감상

                                      ㅡ원제 : 탄생 200주년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O to Sail to the Sea in a Ship!

 

O to sail to the sea in a ship!

To leave this steady unendurable land,

To leave the tiresome sameness of the streets,

the sidewalks and the houses,

To leave you O you solid motionless land, and entering a ship,

To sail and sail and sail!

 

아! 배를 타고 항해했으면!

 

아! 배를 타고 항해했으면!

견딜 수 없는, 변화 없는 육지를 떠나 봤으면,

재미없고 지겨운 차도, 인도 그리고 집들을 떠나 봤으면,

아! 영영 움직일 줄 모르는 육지 그대를 떠나, 배를 타 봤으면,

항해했으면, 항해했으면, 바다를 달렸으면!

 

바다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널리 애송되고 있는 이 시행(詩行)은, 휘트먼의 시집, Leaves of Grass(풀잎)에 수록되어 있는 「A Song of Joy」의 마지막 장으로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O to have life henceforth a poem of new joys!

To dance, clap hands, exult, shout, skip, leap, roll on, float on!

To be a sailor of the world bound for all ports,

A ship itself, (see indeed these sails I spread to the sun and air,)

A swift and swelling ship full of rich words, full of joys.

 

아, 이제부터는 새롭고 기쁜 시(詩)를 살았으면!

춤추며, 손뼉 치고, 기뻐 날뛰면서, 소리치고,

껑충껑충 뛰면서, 구르고, 떠다니고,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여 보았으면,

모든 항구를 향해 달려가는 세계의 선원, 아니 배 그자체가 되었으면,

(정말로 태양과 공기를 향해서 펼치는 이 돛을 보아라,)

풍성한 말, 갖가지 기쁨으로 충만한 쾌속선이 되었으면.

 

휘트먼은 1819년 (5월 31일)에 태어나서 1892년에 서거했다. 휘트먼이 서거하기 14년 전, 1878년에 영국의 해양시인 존 메이스필드(J. Masefield)가 태어났다. Sea-Fever라는 시로 유명한 메이스필드는 그의 시집, Salt-Water Ballads(海水의 노래)에 수록되어 있는 A Wander's Song(방랑자의 노래)의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Oh, I am tired of brick and stone, the heart of me is sick,

For windy green, unquiet sea, the realm of Moby Dick;

And I'll be going, going, from the roaring of the wheels,

For a wind's in the heart of me, a fire's in my heels.

 

아, 나는 벽돌과 돌덩이는 진저리난다,

내 마음 가는 곳은 파도치는 푸른 바다, 백경(白鯨)의 나라일 뿐.

하니까 나는 가는 것이다, 마차 소릴랑 뒷전에 두고,

마음속엔 바람이 일고, 뒤꿈치엔 불붙어 있으니.

 

두 시인 모두 바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메이스필드의 시, Sea- Fever와 A Wanderer's Song은 시상(詩想)이 휘트먼과 맥을 같이 한다.

미국의 꿈, 자유와 진보를 싣고 세계로 뻗는 배들이 휘트먼의 가슴을 달리고 있다. 바다를 좋아해서, 시의 소재로 많이 사용했는데, Sea-Drift(漂海) 11편이 알려지고 있고, 「풀잎」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시인(The Poet of American Democracy)이라고 추앙받고 있는 「국민시인」(national bard), 휘트먼은, 2019년 올해 그가 탄생한 지 200주년을 맞았다. 미국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시집, Leaves of Grass(풀잎)의 출현으로 미국 시문학은 유럽 문학에서 탈출, 독립을 달성하고, 「노예의 운율(韻律)」의 족쇄(足鎖)를 끊고, 자유시(Free Verse)를 형성하게 되었다.

200년이 흐른 지금도, 미국인들이 길이고 있는 이 위대한 시인이 쓴, 링컨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한 조시(吊詩), 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지난 번 라일락꽃이 앞뜰에 피었을 때)와 O Captain! My Captain! (오! 선장이여! 나의 선장이여!) 두 편의 시가, 워싱턴에 있는 링컨기념관에 링컨의 명 연설문, Gettysburg Address (1863)와 함께 미국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미국이 낳은 국민적 대시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이 그의 생애를 통하여 바다가 좋았기에 바다에 얽매였음을 시집 「풀잎, Leaves of Grass」에서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남북전쟁에서 많은 목숨을 잃고, 신세계 합중국이 출현하고 진통을 겪었던 때인 19세기는 미국 역사상 가장 격변했던 시기요, 구세계(유럽)에 깊이 뿌리박은 젊은이들이 미국의 꿈이었던 진보와 과학기술을 등에 업고, 새로운 미국의 모습을 나타내는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인은 금세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꿈을 추구하고 신화를 낳아 왔다. 이 꿈을 신대륙을 개척하고, 과거(구세계)를 도려낸 미국인들이 추구해 왔기에 진보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꿈을 추구해 마지않았던 휘트먼, 그는 미국적인 상징 그것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미국의 시인이요, 미국 민주주의의 시인(The Poet of American Democracy)’이라고 추앙을 받고 있는 그는 민주주의의 인간 평등을 노래하고, 미국의 힘을 평민(common people) 속에서 찾는다.

휘트먼은 문단에서 평등주의자의 대표라고 일컫는다. 1819년 뉴욕 주 롱아일런드의 한촌(寒村)에 있는 웨스트 힐즈 농장의 빈농 출신으로 칠형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롱아일런드를 원주민의 말인 포모노크(Paumanok)로 부르기를 좋아했다. 4세 때에 그의 아버지가 목수로 전업해서 브루클린으로 이사했다. 그는 그곳의 공립학교에 12세까지 다녔다. 그 후 변호사와 의사의 사환, 인쇄공, 식자공으로 또는 초등학교 교사로 집안 살림을 도우면서 많은 직업을 전전, 독학으로 공부하고, 성서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애독했다.

1841년 이후에는 뉴욕의 맨해튼이나 브루클린의 많은 신문, 잡지에 관여하면서 정치 저널리스트의 길을 밟기 시작, 민주당의 기관지를 편집하게 되었으나, 정치에 대한 기대가 저버려지자 오래가지 못하고, 일정한 직업이 없는 방랑 생활을 보내게 된다.

이 방랑 시절은 미국의 자연과 사회, 그리고 목수, 석공, 선원, 노동자와 같은 미국 민주주의의 체현자(体現者)들인 일반 시민과 접촉하는 기회가 되었고, 철저한 개인주의적 평등주의의 사상을 강화한다.

 

나는 아메리카의 노래가 들린다. 그 갖가지 찬가가 들린다,

공장 노동자들이 찬가를, 저마다 자기 노래를 마음껏 힘차고 쾌활하게 부른다.

목수들은 자기 노래를 널빤지와 들보 치수를 재면서 부른다,

석수는 자기 노래를 일을 준비하면서, 또는 마치면서 부른다,

뱃사공은 자기 세계를 배 안에서 노래 부르고, 갑판선원은 기선 갑판 위에서 노래부른다,

.........

 

I hear America singing, the varied carols I hear,

Those of mechanics, each one singing his as it should be blithe and strong,

The carpenter singing his as he measures his plank or beam,

The mason singing his as he makes ready for work, or leaves off work,

The boatman singing what belongs to him in his boat, the deck-hand

singing on the steamboat deck,

.........

- I Hear America Singing에서

 

1853년경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의 논문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같은 해에 그의 수첩에 「문학적인, 또는 시적인 형식으로 타협함이 없이 나 자신의 육체적, 감정적, 도덕적, 이지적 그리고 시적(詩的)인 개성을 충실하게 언어로 표현하겠다」는 야심을 적어 두었다. 이렇게 그는 시인으로서 눈을 뜨고 시인으로 변신해 간다.

자유시형, 구어(口語) 사용, 참신한 이미지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혁명적이고 독자적인 시법(詩法)을 고안해 냈다.

휘트먼이 36세인 1855년 7월, 민주주의의 교전(敎典)이라 일컫는 시집 「Leaves of Grass, 풀잎」을 출간했다. 94면의 소책자에 「Song of Myself, 나 자신의 노래」 등, 12편을 수록했는데, 시인 스스로 활자를 골라 집어 조판하고, 자비로 출판했다. 더없이 독창적인 이 시집은 처음부터 묵살되거나 조소의 대상이 되었는데, 초절주의자(超絶主義者)들은 상통하는 점을 발견한다. 에머슨은 「이 시집은 미국이 일찍이 세계에 드리는 예지(叡智)와 기재(機才)의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나는 위대한 발자취의 일보를 내딛은 당신께 마음 깊이 인사를 드립니다.」라고 즉각 감동의 서신을 보냈다(이 편지는 미국문학사상 대단히 유명한 편지다.). 그러나 「풀잎」이 미국에서 일반 대중에게 인정을 받게 된 것은 그의 만년(晩年)의 일이다.

그는 평생 「풀잎」의 증보를 거듭하여 최후의 제9판(임종판, 1892)에는 400편 가까운 시를 수록한 큰 시집이 되었다. 영국문학의 전통에서 벗어나 운율(韻律)의 속박, 노예의 운율에서 해방된 자유시(free verse)를 쓰고, 선구적인 자유율(自由律)을 분방하게 구사했다. 신대륙 대지에서 일어서는 민중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예언이나 하는 것처럼 노래했다.

「풀잎」은 시인 휘트먼과 그의 나라 미국의 변화에 따라 여러 차례 개정되면서 증보되었다. 초판은 시집의 제목이 없었다. 제2판(1856)에는 「A Poem of Walt Whitman, an American, 미국인 월트 휘트먼의 詩」로 제자(題字)를 달았다. 시집 중의 「Song of Myself, 나 자신의 노래」는 독자적인 장편시로 자신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풀잎」을 단적으로 표현한 한 부분이다. 52절, 1340行인데, 1881년에 마지막으로 개정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이 시는 인간의 혼의 무한함과 그 혼에 의한 세계 전체에 도달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도달 방법에 차이는 있으나 에머슨의 「자연론」과 상통한다.

그러나 「풀잎」도 제3판(1860~1861)에서는 지금까지 자기 신뢰에 뿌리내린 무조건적인 사랑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고독과 죽음의 주제가 전면에 나온다. 제3판에 수록된 「Children of Adam, 아담의 아들들」과 「Calamus, 캐러머스」는 각각 남녀의 사랑과 남성 사이의 사랑을 노래한 시들인데, 「육체를 노래하고, 혼을 노래한 시인」을 자인(自認)한, 휘트먼답게 시의 주제에 성애(性愛)를 정면으로 다루어 19세기의 미국인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남북전쟁으로 아우가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휘트먼은 문병차 전선의 전방에 부임하여 전장(戰場)의 비참함을 목격한 뒤, 워싱턴 시청에 근무하면서 간호인 지원자가 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애국시 「Drum-Taps, 북소리의 울림, 1865」 53편을 썼다.(「풀잎」 제4판에 수록). 전장과 육군병원내의 모습을 노래한 전쟁시를 모은 것으로 그의 체험이 묘사되고 있다. 피아(彼我)의 구별 없이 부상병 구조에 전력을 다한 그의 평등주의의 표현이다. 「풀잎」에는 그 밖에 미국의 개척자와 유럽에서 독립한 미국정신을 찬양하고 문명의 첨단(尖端)을 가는 자의 역할을 노래한 「Pioneer! O Pioneer!, 아, 개척자여!」 등, 53편이 수록되어 있다. 속편의 시집 「Sequel to Drum-Taps, 1865~1866」에는 16대 링컨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한 「O Captain! My Captain! 아, 선장이여!」, 「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 지난번 라일락꽃이 앞뜰에 피었을 때」,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두 권의 시집에서 일찍이 사적(私的)인 개인을 노래한 시인이 공적인 대의(大義)나 사회적 이념에 눈을 돌려 「국민시인(national bard)」으로서 자기 정의(自己定義)를 내린 것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의 근저(根底)에는, 개인 차원에서든, 대국적인 국가 차원에서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휘트먼의 이와 같은 문학관(文學觀)은 「풀잎」 초판의 서문과 현실의 부패에 경고를 하면서 민주주의와 개인주의의 완성으로 미래를 걸어 보기를 주장한 산문, 「Democratic Vistas, 민주주의적 전망, 1871」에서,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자기 발로 걷고, 자기 손으로 일하고, 자신의 마음으로 말하겠다는 에머슨이 미국의 지적(知的) 독립을 선언한 것은 「미국의 학도(學徒)」 강연을 한 1837년의 일인데, 그 후 약 20년이 지난 1855년에 그것을 실행한 것이 휘트먼의 시집 「Leaves of Grass」다.

역사가 짧은 미국의 성숙감을 노래한 시집 「풀잎」은 그 이름이 뜻하고 있듯이 가장 평범한 민중을 뜻하는 것이요, 이 민중의 소리가 곧 미국의 소리인 것이다. 그의 시는 자유와 평등과 우애의 정신이 넘치고, 강인한 시인의 개성은 독자의 마음을 압도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풀잎」을 기억하고, 가필(加筆)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노래는 허식을 내동댕이치고 적나라한 개인이 자기의 팔과 힘으로 자연에 도전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나라, 젊은 미국의 민중의 노래였다.

1892년, 73세로 사랑과 해방의 시인은 미국의 꿈, 자유와 진보를 싣고 세계로 뻗는 배들이 그의 가슴을 달리면서 이 세상을 하직했다.

 

Out of the Rolling Ocean the Crowd

                                                         Walt Whitman

 

Out of the rolling ocean the crowd came a drop gently to me,

Whispering, I love you, before long I die,

I have travel'd a long way merely to look on you to touch you,

For I could not die till I once look’d on you,

For I fear'd I might afterward lose you.

 

Now we have met, we have look'd, we are safe,

Return in peace to the ocean my love,

I too am part of that ocean my love, we are not so much separated,

Behold the great rondure, the cohesion of all, how perfect!

But as for me, for you, the irresistible sea is to separate us,

As for an hour carrying us diverse, yet cannot

carry us diverse forever ;

Be not impatient - a little space - know you

I salute the air, the ocean and the land,

Every day at sundown for your dear sake, my love.

 

출렁대는 바다에서

                     역 ‧ 이재우

 

출렁대는 바다에서 물방울 하나 나에게 살며시 와서,

속삭입니다-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곧 죽을 것입니다

머나먼 길을 달려온 것은 당신을 만나 보고 만져 보기 위해서랍니다.

당신을 만나 보지 않고는 죽을 수가 없으니까요.

만나 보고서 당신을 잃을까 봐 겁이 납니다.

 

이제 우린 서로 만났어요, 서로 보았으니 안심입니다.

나의 연인, 바다에 평안히 돌아가셔요.

나도 나의 연인 바다의 한 부분이라오.

우리는 그렇게 많이 떨어져 있지는 않아요.

저 커다란 원형을 바라보아요,

모든 응집력을 보셔요, 얼마나 빈틈없는가요!

하지만 당신과 나 사이를 저 바다가 갈라놓아

막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한동안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영원할 수는 없지요.

잠시 헤어져 있는 것 조바심하지 마셔요,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해 질 녘마다 바람과 바다와 땅에게 인사를 드린답니다, 알아주세요.

연정(戀情), 우정(友情)을 읊은 시로 휘트먼의 「아담의 아들들(Children of Adam)」편에 실려 있다. 18세기의 수필가 Joseph Addison이 쓴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는데 감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A drop of water fell out of a cloud into the sea ; and,

finding itself lost in such an immensity of liquid matter,

broke out into the following reflection.

 

비 한 방울이 구름에서 바다에 떨어졌다.

그래서, 그처럼 무한한 액체에 내 몸을 잃고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터뜨렸다.

 

 

□ 쓴 이 : 이재우, 해양 칼럼니스트

 

□ 자료출전 : 《해양과 문학》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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