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와의 긴 항해 1

등록일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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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자와의 긴 항해 1

 

 

항해가 길어지자 우리는 한가해졌다.

나침반을 살펴보는 일과 망원경을 닦는 일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여전히 선수 갑판 위로 날치 떼가 날아다녔고, 고래는 수면 위로 물을 뿜어 대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우리는 통 말이 없었다.

밤이 되자 언어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밤에는 언어는 주로 하늘에서 들려왔고,

우리는 하늘이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끔씩 옆의 서로를 쳐다보면 눈동자에는

한 줄기 은하수가 비치었다.

 

어느 날 오후,

큰 새가 갑판 위로 날아들었다.

우리는 저 큰 새의 비상 거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사실, 새는 날개가 매우 컸다.

아무리 못해도 우리 키 만큼은 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큰 새의 날개가 마치 온 바다를 다 덮을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하여 의아해했다.

큰 새는 크게 날개짓하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멀리서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다시 멀리서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해명海鳴이었다. 매우 큰, 그렇지만 맑은 소리였다.

잠시 후, 갑자기 또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초조해졌다.

그것은 내 작은 가슴 안에서 생겨 난 매우 작은 소리였다.

 

언제나 그렇듯,

바다는 넓고

갑판은 넓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낯설게 만났다가

형제 같이 가깝게 지냈다, 지내야 했다.

별과 바람과 구름을 바라보면서.

 

 

사각형입니다. 도 가도 끝이 없는 바다에서 곡물 32,000톤을 실은 거대한 화물선이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대양에서 갑판 위의 사람들은 마냥 ‘항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항해하는 사람들은 출입항이 잦은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긴 항해와 함께 긴 정박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경력 있는 뱃사람들은 입을 모읍니다.

 

출항을 하고 육지를 못 본 지 닷새가 지났습니다. 연일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오늘도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선선한 바람이 불고 태양이 빛나며 수평선에는 듬성듬성 흰 구름이 걸려 있습니다. 항해를 하는 사람들은 아침부터 제각각 맡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갑판 위에서는 갑판에 핀 녹을 제거하느라 ‘깡깡’이 한창입니다. 4명의 갑판원들은 얼굴에 복면과 눈에는 보안경을 하고 전동 샌드페이퍼로 갑판의 녹진 부분을 깎아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깡깡 파찰음이 바다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저 밑의 기관실에서는 기관사와 기관부원들이 그 동안 손을 못 본 보일러며 발전기, 주기관의 정비와 여러 가지 보조 기기들을 손보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겁니다. 주방에서는 지금 조리사들의 손놀림이 바빠지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의 가장 높은 곳인 선교에서는 항해사가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본래는 조타수도 함께 있어야 하는데 대개 대양 항해 중에는 선교에서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갑판에 나가서 작업을 돕습니다. 그렇지만 당직을 마칠 시간이 되어서는 반드시 선교로 돌아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조타수는 본래의 근무지가 선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침 당직은 3등항해사의 당직 시간입니다. 대개의 3등항해사는 나이가 연소한 스무 살 내지 스무 다섯 살 정도이지만 가끔은 그보다 나이가 많은 3등항해사도 있습니다. 경험이 적은 3등항해사는 항해 중 어려움이 생기면 즉시 선장님에게 알리지만 그러한 일은 대개 연안항해 중에 여러 가지 교통이 복잡하여 일어나는 일이고 지금처럼 망망한 대양을 항해할 때에는 대부분 3등항해사 혼자서 항해 업무를 처리합니다.

 

푸른 수평선의 바다에 깡깡 작업 파찰음이 울려 퍼지면서 길을 가고 있습니다. 32,000톤의 화물을 실은 화물선이 하얗게 파도를 일으키며 멀리 수평선을 향하여 끝없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항해사는 뒷짐을 진 채 선교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왔다 갔다 를 반복하면서 전후좌우의 수평선을 응시합니다. 왼쪽 바다에서 갑자기 해면에서 물줄기가 분수처럼 위로 솟아오릅니다. 고래인가 봅니다. 물줄기가 큰 걸로 보아서 매우 큰 고래인 것 같습니다. 잠시 후에는 선수 갑판에서 은빛 반짝거림이 햇빛에 반사되는 유리 조각처럼 현란합니다. 은빛 반짝거림은 선수 갑판의 왼쪽 해면에서 오른쪽 해면으로 뛰어넘기를 하고 있습니다. 날치 떼입니다. 날치 떼는 오랫동안 선수에서 은빛 아치를 이루며 묘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항해사는 쌍안경을 들고 날치 떼의 비상의 아름다운 광경을 즐기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깡깡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작업하는 사람들이 쉬는 모양입니다. 그 때 어디선가에서 흰 새가 날아와서는 몇 번 퍼덕이다가 윙 브리지의 난간에 앉았습니다. 새는 날개가 매우 큽니다. 새는 그 큰 날개를 접고 가만히 앉아 선수 쪽의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새는 다시 하늘로 힘차게 날아가기 시작합니다. 새의 날개가 커서인지 새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습니다.

 

항해사는 자동조타장치의 나침의羅針儀 각도를 살펴봅니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맞춰져 있지만 그래도 혹시 오차가 있나 주기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항해사는 해도실에서 해도에 눈을 줍니다. 출항을 하기 전에 이미 해도를 면밀히 살펴보았지만 그래도 안전을 위하여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입니다.

 

서녘으로 해가 지고 있습니다. 차츰 차츰 바다는 노랗게, 붉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루 동안 하늘에는 태양이 뜨거웠고, 항해하는 사람들은 노동과 항해로 치열했으며, 이제 저녁이 되어 바다는 이 모든 것들이 마지막 남은 열정을 쏟아 붓는 것을 허락하면서 이제 더는 말고 쉬어라, 하며 아름다운 노을로 답례하고 있습니다.

 

바다에 밤이 찾아왔습니다. 별이 빛나고 바람이 불며, 항해실에서는 야간항해를 위하여 항해등을 켭니다. 항해사와 조타수는 항해실의 조망창 앞에 한 사람은 왼쪽에, 한 사람은 오른쪽에 섰습니다. 유리창 밖으로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페가수스자리, 고래자리, 안드로메다자리, 염소자리 등 성좌가 밤하늘을 수놓고 있습니다.

 

어두운 항해실 내에 두 사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항해실 벽의 항해기기들과 풍향계와 나침의, 기압계, 속도계 등의 지시등의 푸른 빛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밤바다에 두 사람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해설 : 심호섭, 시인

 

작품출전 : 시집 '해류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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