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바다가 있네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바다가 있네
낮은 곳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모든 하수구 아래
바다가 있네
몸을 낮춰 낮춘 몸이 응얼응얼 모여드는
작은 물방울 버리지 못하고
천만 개 굳어진 입술들이
한밤중 몰래 버린 수상스런 말들도
지우지 못하고
빨갛게 죽어간 폐수까지 거두어
파도에 씻어내던 바다가
다시 살아나는 말들만 골라
때때로 해일을 일으켜
썩은 갯가를 휘저어 대지만
끝내는
제 살을 태우면서
금강석보다 단단한 소금 만들어
바람에 말리고 있었네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
거듭 일어나는 바다를
오늘도 나는
조심스레 지나고 있네.
* 쓴 이 : 김성식
* 작품출전 : 김성식 시전집
이 시의 원래 제목은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바다가 있네’였다고 한다. 김성식과 함께 한국의 해양문학을 견인한 소설가 천금성이 살아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이 시를 발표하기 전에 제목을 본 천금성은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이란 부분의 ‘낮은’을 ‘높은’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이 말을 들은 김성식은 제목을 ‘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바다가 있네’라고 다시 썼다. 둘은 비슷한 연배의 나이로 똑같이 긴 시간 해상생활을 했으며 선장을 지냈고 친구 사이였다.
작고한 해양시인 김성식은 많은 해양시를 발표했는데 이 시는 그중 가장 많이 읽혀지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시에는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바다사람 특유의 의지와 신념이 절제된 언어와 함께 잘 묘사되고 있다. 세상의 온갖 찌꺼기들이 모이는 곳, 그러나 금강석처럼 굳건한 생명을 되찾는 곳, 그런 바다를 그렇게 일어서고 가라앉는 바다를 ‘오늘도 조심스레’ 지나가고 있는 시인을 지금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 글, 심호섭(홈페이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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